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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배리 본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7. 22.
드디어 때가 왔다.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신기록을 노리고 있는 배리 본즈는 현지 시간으로 지난 7월 19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개의 홈런을 작렬시키며 통산 753호를 기록, 행크 아론의 기록에 단 2개만을 남겨두게 되었고, 3개만 더 치면 드디어 33년 만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본즈의 팬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을 테지만, 스테로이드 관련 의혹으로 그에게 실망한 이들은 결코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마침 본즈의 소속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원정경기를 마지막으로 7월 23일(한국시간 24일)부터 홈 7연전에 돌입한다. 22일 경기에서 한꺼번에 3홈런을 치지 않는 한 신기록 도전은 홈경기로 미루어지게 될 전망이다.


물론 현재 본즈의 홈런 페이스(84경기 19홈런)를 바탕으로 단순히 계산해보면, 신기록 달성은 이번의 홈 7연전이 아니라 이후에 있을 원정 6연전 중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고, 어쩌면 그 이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홈런 타자가 그러하듯 본즈도 몰아치기에 능한 선수고, 야유가 아닌 축하와 환호 속에서 홈런 신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홈 7연전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홈 7연전의 두 번째 날인 24일은 본즈의 생일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생일에 756호를 쏘아 올리는 드라마를 보여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홈런 신기록을 순수하게 축하해 줄 수 없는, 또는 축하해 줄 마음이 없는 많은 이들은 피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고 있다.


밀워키 출신인 버드 셀릭 커미셔너가 이번 밀워키 원정경기에서는 어쩔 수 없을 얼굴을 내밀고 경기장에 앉아있지만, 과연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가서 본즈의 경기를 따라다닐 지는 의문이다. 셀릭의 태도가 여론의 도마 위에서 질타 당하고 있지만, 본인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그의 모습에 연민까지 느낀다.



▷ 인종 차별?

1974년 4월 8일 행크 아론은 자신이 출장한 시즌 3번째 경기에서 드디어 역사적인 715홈런을 기록하게 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소수 인종 차별 주의자들로부터 숱한 협박과 비난을 받아왔지만, 대다수의 메이저리그 팬들은 아론의 홈런 신기록 갱신을 바라고 있었고, 또한 축하해주었다.


본즈도 얼마 전 혹시나 모를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를 늘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아론이 느낀 생명의 위협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1963년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했고, 5년 후인 68년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프랭크 케네디가 암살자들의 표적이 되어 유명을 달리했다. 1980년에는 비틀즈의 존 레넌이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당시는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과격파에 의해서 실제로 아론이 암살당할 가능성은 너무나도 높았던 것이다.


그런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아론은 신기록을 쏘아 올렸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이 위협받는 환경 속에서 많은 갈등을 하고, 한 때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팬들의 격려와 위로 속에서 그는 역경을 딛고 베이브 루스를 넘어섰다. 그런 아론이기에 약물 의혹에 빠져 있는 지금의 본즈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까. 아론은 계속된 인터뷰에서 자신은 본즈의 홈런 신기록에 관심이 없음을 거듭해서 언급하고 있고, 심지어 본즈를 모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론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본즈의 홈런 신기록 달성을 순수하게 축하해주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바로 스테로이드 때문이다. 본즈는 계속해서 인종차별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자신의 상황을 아론과 동일시하고 싶어 하지만, 이것은 술에 물 타듯 일의 핵심을 흐려놓으려는 의도일 뿐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본즈가 처한 상황은 아론과 다르지 않다. 홈런 신기록을 앞두고도 모든 이들의 축하와 환영만을 바랄 수는 없는 입장에 처해있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론의 경우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색적인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을 뿐 대부분의 이성적인 빅리그 팬들은 그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지만, 본즈는 이전에 아론을 옹호했던 이성적인 팬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본즈를 비난하고 그의 잘못을 추궁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연방 대법원의 조사까지.


물론 인종 차별적인 요소로 인해 본즈가 더 심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 여론 조사에서도 백인보다 흑인이 더 높은 비율로 본즈의 기록 달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은 인종 차별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스테로이드로 인해 시작된 문제다. 인종 차별을 논하기에 앞서 이 부분이 먼저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의혹

인종 차별은 문제의 초점이 아님이 분명하고, 그것으로 본즈의 신기록 문제를 규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본즈가 처한 처지가 그 스스로 차별 받는다고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문제의 시작은 스테로이드였지만, 이후 본즈가 인종 차별 이야기까지 꺼낼 만큼 본즈가 ‘특별대우’를 받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을 달성할 당시인 1998년 마크 맥과이어는 올림픽 금지약물인 ‘안드로’라는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고, 언론도 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면죄부를 받았다. 물론 은퇴 이후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까지 받게 되면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일단 낙방하고 말았지만, 어쨌든 62호 홈런을 때리던 당시의 맥과이어는 분명 영웅 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함께 홈런 퍼레이드를 벌였던 새미 소사 역시도 많은 약물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소사 역시 갑자기 벌크 업에 성공한 상태였고, 이전 그의 성적을 생각해 본다면 그 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소사 역시도 당시에는 별 탈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당시 메이저리그에 정말 필요했던 것은 1994년 파업의 여파를 몰아내고 다시금 메이저리그에 ‘흥행을 가져다줄 스타’였기 때문이다.


인종 문제와 관계없이 맥과이어와 소사는 ‘빅리그의 부흥’이라는 감춰진 슬로건 하에 언론에 의해서 철저하게 보호되고, 그 어두운 면이 감춰졌다. 반대로 본즈는 모든 면에서 발가벗겨진 상황이다. 오히려 언론이 그들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본즈를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금 빅리그는 10년 전과 달리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본즈가 아니더라도 흥행을 이어가게 해줄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희생양을 하나 만들어 이슈화 하는 것이 언론사의 입장에서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배리 본즈가 그렇게 찍힌 대표적인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모든 초점은 스테로이드 복용 여부와 관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즈 관련 기사를 보면 그가 간간히 언급하는 인종 문제가 더 많이 부각되고 있고, 그의 언행을 문제 삼아 아직까지는 의혹에 그치고 있는 스테로이드 문제를 기정사실화하며 비난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흥행의 1등 공신으로 어쩔 수 없이 면죄부에 그 이름을 올려주어야 했던 맥과이어와 소사와는 달리, 많은 안티 팬이 존재하는 본즈는 ‘살생부’에 그 이름이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 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너무나도 다른 시각 속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참으로 껄끄럽기만 하다.


이것을 인종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분명 비약이지만, 같은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을 위한 면죄부’를 발부했던 언론이 자신들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고 본즈만 닦달하는 것은 더 이상 보고 있기 역겹다.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는 본즈가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 언론은 본즈를 몰아갈 자격이 있는가

베이브 루스가 코르크 방망이를 사용했다는 것은 모두가 쉬쉬하는 숨은 진실에 가깝다. 하지만 당시에는 코르크 방망이에 대한 제재가 없었고, 메이저리그를 북미 최고의 스포츠로 만든 1등 공신이기 때문인지 지금에 와서도 그 점을 문제 삼는 이는 거의 없다.


지난해 금지약물에 포함되긴 했지만, 이미 7~80년 동안 덕 아웃에 놓인 채로 공공연하게 사용되어 왔다던 암페타민(집중력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각성제의 일종)의 의혹에서는 행크 아론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아론 역시 그 점에 대해 추궁 받지 않는다.


루스를 비롯해 아론과 맥과이어가 언론으로부터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메이저리그의 흥행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론의 홈런 신기록은 팬들로 하여금 월남전의 아픔을 잊게 만들었고, 맥과이어는 떠나간 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 모았다.


만약 맥과이어가 없었다면, 그래서 73홈런을 때린 본즈의 2001년이 메이저리그 부흥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본즈가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을까? 한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미국 현지의 각 언론사에서 본즈를 비난하는 칼럼을 보면 하나같이 원인 모를 거부감이 느껴진다. 아직도 밤비노(베이브 루스의 별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루스와 아론, 맥과이어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회피하면서 본즈를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배리 본즈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동료와 융화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기자들에게 한 마디씩 툭툭 쏘아주기 일쑤고 생각 없는 인터뷰로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푸대접 받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본즈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난의 글을 써대는 것 또한 옳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무리 본즈가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숱한 악행을 저질렀던 타이 캅, 사냥 연습을 한답시고 펜웨이 파크에서 총질을 해댄 테드 윌리엄스보다는 낫지 않은가 말이다.


어디까지나 문제의 초점은 스테로이드 복용여부이고, 본즈는 이에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 잘못을 했다면 응당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과오는 덮어둔 채, 본즈가 모든 문제의 원흉인 듯 마녀사냥 식으로 한 선수를 몰아가는 언론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석연치 않은 의혹을 남긴다.



▷ 결국 상처 입는 것은 팬들이다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근육 강화제를 복용한 이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에 무리가 갔고, 최근의 경향과 비교해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본즈와 동갑인 ‘스테로이드 전도사’ 호세 칸세코는 36살이 되자 각종 부상에 시달리면서 예전과 같은 기량을 뽐낼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마크 맥과이어도 37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부상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듬해 은퇴를 결심했다. 스테로이드의 힘을 빌어 마이크 피아자의 MVP를 빼앗은 켄 케미니티 역시도 35살 이후로 부진을 거듭하다 38살이던 2001년 은퇴를 했고,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해 2004년 사망하고 말았다.(이 케미니티의 사망이 스테로이드 관련 조사에 기름을 부은 겪이 되었다)


이와 비교해 봤을 때 다음 주 43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본즈는 여전히 건강하게 뛰고 있다. 22시즌을 맞이해 홈런 신기록을 갈아치우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도, 본즈는 기록 달성을 위해 그 캐리어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팀의 최고 중심타자로서의 위용을 뽐내며, 그 강력함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재밌게도 이 건강함이 스테로이드 복용을 확신하는 이들과 부정하는 이들, 양쪽 모두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스테로이드를 한다고 해서 누구나 본즈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본즈를 옹호하는 편에서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본즈는 스테로이드를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될 수 있었다.”라는 말과 같다. 남들과 달리 위험 요소를 모두 재거하고 자신에게 최대의 효과를 내게끔 사용했다 하더라도 잘못은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그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기 이전에도 이미 빅리그 최고의 타자였고, 그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간(1999년~2003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지정된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약물 의혹과 관계없는 올해 당장의 성적도 놀랍기만 하다. 약물로 이루어진 업적을 경계하고 시각을 달리해서 봐야함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즈의 선수생활 전체를 부정하거나 인간 배리 본즈를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인 듯 취급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나름대로 본즈의 입장에서 정리를 해보았지만, 역시나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그만큼 이번 스테로이드 파문이 몰고 온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이상적인 아버지’였던 맥과이어, 최초의 40-40 달성자 호세 칸세코, ‘타점 기계’ 후안 곤잘래스 등 추억을 만들어준 많은 선수들이 강제로 팬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다.


본즈 말고도 더 많은 스타급 선수들이 관련 되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 공정하지 못한 태도로 사건에 접근해 편향된 시각만을 보여주는 언론. 결국 본즈의 홈런 신기록 달성이라는 이 환영받지 못할 잔치에서 상처 받고 힘들어 하는 것은 팬들이 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씁쓸하고 안타까운 스테로이드 파동, 하루 빨리 속 시원한 결말이 나길 바랄 뿐이다.


본즈의 홈런 신기록을 축하해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신기록이 달성되는 당일이 되어봐야 모두의 솔직한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가 하루 빨리 그 기록을 다시 경신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