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사나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드디어 메이저리그에서의 500번째 홈런을 기록했다. 그의 500번째 홈런을 기념하며 [MLB.COM]에서 제공한 사진과 함께 그 여정을 살펴본다.
1993년 6월 1일 신인 드래프트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에이로드는 교교 최우수 선수로 뽑힌다. 고교 졸업반 시절 33게임에서 .505의 타율에 9홈런 36타점을 기록한 그는 대학 최고 투수인 대런 드라이포트와 함께 드래프트 1위를 다투고 있었다(결국 에이로드가 1라운드 1픽으로 뽑힌다).
1994년 7월 8일 18세의 나이로 에이로드는 빅리그에 첫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그 해는 17경기에서 .204의 초라한 타율을 기록하며 홈런 없이 2개의 타점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95년에도 48경기를 뛰지만 타율 .232 5홈런 19타점에 그치고 만다. 너무 어린 나이에 올라온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미 트리플 A에서 88경기 만에 21홈런 66타점을 올리며 .340/.393/.624의 괴물 같은 스탯을 기록 중인 선수를 빅리그 무대에 세우지 않을 수는 없었다.
1996년 20살의 나이로 드디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에이로드, 여전히 리그에 그보다 어린 선수는 한 명도 없었지만, 이미 65경기를 뛴 그는 신인왕 자격을 상실한 상태였다. 사진은 4월 18일 빅리그 데뷔 이후 첫 번째 만루 홈런을 때리는 장면이다. 이것을 시작해 에이로드가 현재까지 기록한 만루 홈런은 모두 15개다.
유격수로서 30홈런을 돌파한 5번째 선수가 된 에이로드는 신인왕 대신 시즌 MVP에 도전한다. 146경기에서 215개의 안타를 때리며 .358/.414/.631 54더블 36홈런 123타점 141득점 15도루의 엄청난 성적을 기록, 타격-2루타-득점-토탈베이스 등에서 리그 1위에 오른다. 하지만 MVP 투표에서는 아쉽게 역대 최저 포인트차(290-287)로 후안 곤잘래스에 이어 2위에 그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1997년 23홈런 84타점으로 조금은 주춤했던 에이로드는 이듬 해 42홈런 124타점 46도루를 기록하며 호세 칸세코-배리 본즈에 이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3번째로 40홈런-40도루를 달성한다. 또한 그가 기록한 42홈런은 아메리칸 리그 유격수 홈런 신기록이었다.
1999년 에이로드는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한 달을 넘게 쉬고 5월 중순이 되서야 복귀한다. 하지만 복귀 후 127경기 만에 42홈런을 치는 괴력을 발휘, 팬들로 하여금 유격수 최초 50홈런에 대한 꿈을 키우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꿈은 2년 후에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2000년의 에이로드는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선구안까지 한층 나아지는 모습(100볼넷)을 보이며 .316/.420/.606 41홈런 132타점 134득점의 호성적으로 타격 전부분에서 최상위권에 랭크된다. 타점왕에 오른 에드가 마르티네즈와 함께 팀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 시킨 에이로드는,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에 당한 부상으로 15일자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14경기를 결장하는 바람에 MVP의 꿈은 또다시 접어야만 했다(3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디비즌 시리즈를 승리로 장식한 시애틀은 리그 챔피언십에서 뉴욕 양키스와 맞붙는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에이로드는 그 진가를 발휘한다. 6경기에서 2홈런 5타점 .409/.480/.773의 엄청난 성적으로 양키스를 침몰 직전까지 몰고 갔지만, 당시의 양키스는 지금과는 달리 진정한 ‘거함’이었다. 결국 양키스는 시애틀을 넘고 이후 메츠까지 격파하며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하지만, 그 3년의 포스트 시즌 시리즈에서 양키스가 고전한다는 느낌을 준 팀은 에이로드가 이끈 시애틀이 유일했다.
에이로드는 돈 욕심이 그리 많은 선수는 아니었다. 6년간의 선수 생활동안 받은 연봉은 다 합쳐서 약 1100만 달러 정도, 지터가 5년차였던 2000년에 1000만 달러를 받았고, 박찬호가 6년차였던 2001년에 990만 달러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매우 적은 액수였다. 그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우승을 원한다던 에이로드는 10년간 2억 5200만 달러라는 북미 스포츠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터뜨리며 텍사스 유니폼을 입는다. 에이로드의 양 옆의 인물들이 그에게 엄청난 거액을 안겨준 장본인들이다. 오른쪽이 레인저스 구단주인 톰 힉스, 왼쪽은 악명 높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다.
투수들의 구장으로 이름 높은 시애틀의 세이프코 필드에서 벗어나,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타자 친화적 구장인 알링턴 볼 파크(지금의 아메리퀘스트 필드)에서 뛰게 된 에이로드는 물 만난 물고기와 같았다. 2001년에는 52홈런, 2002년에는 57홈런으로 유격수 최다 홈런 기록(종전 어니 뱅크스의 47개)을 연이어 경신하며 2년 연속 홈런왕에 오른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타자로의 성장이었다.
2003년 4월 2일 당시 애너하임 엔젤스의 라몬 오티즈로부터 자신의 통산 300홈런을 기록한다. 당연히 역대 최연소 기록(27세 249일)이었다. 47홈런을 때리며 3년 연속 홈런왕에 오른 에이로드는 지난 4년 중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MVP에 오른다. 포스트 시즌 진출 팀의 선수 중에는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였다. 달갑지 않은 이유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념할만한 첫 번째 수상이었을 것이다.
2004년 2월 17일 양키스로 전격 트레이드 된 에이로드는 그 때부터 핀스프라이트(양키스 유니폼)를 입게 된다. 저 때만 해도 데릭 지터와의 관계는 좋았고, 에이로드는 친구인 지터를 위해 기꺼이 유격수 자리를 양보하고 3루를 지키게 된다. 67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연봉 보조를 텍사스로부터 약속 받은 양키스는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에이로드 같은 특급 스타는 역시 뉴욕 같은 대도시에 어울린다는 평가도 많았다. 하지만 선장 기질이 다분한 선수가 셋(지터, 에이로드, 지암비)이나 모이면 팀이 산으로 갈 수 밖에 없음을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2004년 팀이 바뀌었어도 슈퍼스타답지 않은 특유의 성실한 플레이는 여전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타격에서의 부진이 찾아오며 6년 동안 이어오던 연속 40홈런의 행진을 중단하게 된다. 그 동안 자제하던 도루(28개)까지 더 많이 시도하며 부진을 만회하려고 노력했으나, 36홈런 106타점 그리고 .512라는 장타율은 전혀 에이로드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3할 2푼의 타율에 3홈런 8타점 11득점을 기록하며 제몫을 톡톡히 했지만, 보스턴과의 챔피언십에서 보여준 ‘손치기 사건’으로 스타일을 완전 구겼고, 결국 3연승 뒤 4연패 하면서 보스턴의 한을 풀어주는 제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만다.
새로운 각오로 맞이한 2005시즌도 출발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4월 26일 에이로드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다. LA 엔젤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발 바톨로 콜론으로부터 1회 그랜드 슬램, 3회 투런, 4회 스리런 홈런을 빼앗았고, 이 후 1타점 적시 안타까지 포함해 무려 10타점을 혼자서 만들어 낸다. 양키스 선수로서 무려 69년 만에 탄생한 진기록이었다.(현역 선수로는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지난 99년에 10타점을 기록한 적이 있다.)
10타점 경기로 완전히 페이스를 끌어올린 에이로드는 6월 8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역대 40번째로 400홈런의 주인공이 된다. 만 30세 생일을 아직도 49일이나 남겨 놓은 시점이었다.
48홈런으로 조 디마지오가 가지고 있던 팀내 오른손 타자 최대 홈런 기록을 경신한 에이로드는 양키스를 포스트 시즌으로 이끈 1등 공신이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에는 떳떳하게 자신의 2번째 MVP를 수상한다. 30대의 첫 출발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디비즌 시리즈에서 에이로드는 .133의 빈타에 허덕인다. 득점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에이로드를 2번 타순에 배치한 조 토레 감독의 작전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간다.
2006시즌 개막전에서 배리 지토를 상대로 그랜드 슬램을 뽑아낼 때만 하더라도 새로운 시즌도 밝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중반 이후부터 원인 모를 부진에 시달렸고, 또다시 2004년처럼 그 답지 않은 성적(35홈런 121타점 .290/.392/.523)으로 시즌을 마감한다. 게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디비즌 시리즈에서 14타수 1안타의 극빈한 타격을 보이며 팀의 패배에 일조했고, 그 모든 책임을 한 몸에 덮어쓴다. 이번만큼은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일각에서는 에이로드도 지미 폭스처럼 일찍 전성기를 마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왔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 유일한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알버트 푸홀스는 4년 연속 .330이상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통산 250홈런을 달성(26세 258일), 에이로드가 가지고 있던 역대 최연소 250홈런 기록(26세 277일)을 갈아치운다.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15파운드를 감량하는 등 철지부심하며 2007년을 준비한 에이로드는 작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처음 15경기 만에 12개의 홈런을 때리는 등 4월에만 14홈런 34타점을 기록하며 작년에 알버트 푸홀스가 세운 4월 최다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룬다.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9회말 2아웃 만루에서의 끝내기 그랜드 슬램, 열흘 뒤 또 다시 끝내기 3점 홈런을 날리는 등 개인 성적과 영양가 면에서도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시 찾아온다.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2루수를 향해 팔꿈치를 들이밀며 슬라이딩을 한데 이어, 토론토와의 경기에서는 주루 플레이 도중 고함을 지르며 수비를 방해, 비난 여론이 다시 들끓게 만들었고, 스트립 바에 출입하는 사진이 보도되며 도덕성까지도 의심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의 좋은 성적과는 달리 팀은 연패를 거듭하며 지구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이 이상 답답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6월 들어 반격이 시작되었다. 팀의 선발 투수들이 부상에서 복귀하고 타선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에이로드 혼자 분전하던 팀에 활력이 돌아왔다. 아직까지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시즌 초의 암울함은 떨쳐버린 상황, 2달여 남은 시즌의 성적에 따라 포스트 시즌 진출도 가능하다.
499홈런 이후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드디어 역대 22번째로 500호 홈런을 기록한 에이로드, 종전 지미 폭스의 기록(32세 338일)을 거의 1년 가까이 단축시키며 최연소 500홈런(32세 9일)을 기록했다. 종전 2위인 윌리 메이스(34세 116일 최종 660개)를 비롯해 행크 애런(755), 베이브 루스(714), 새미 소사, 켄 그리피 주니어보다도 2년 이상 빠른 페이스다. 조만간 통산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가 될 배리 본즈(37세 297일)와는 그 차이가 거의 6년에 달한다.
아직도 에이로드에게는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큰 과제가 남아있다. 시즌 후 FA를 선언할 지 여부는 지금 당장 생각할 필요도, 신경 쓸 여유도 없다. 자신이 최고의 선수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주인공이 되어 기적과 같은 대역전극의 드라마를 그려나가야 한다. 그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때, 그는 3번째 MVP의 영광과 함께 라이벌들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