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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어이없는... 그러나 예견된.... BK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16.


김병현 마저도 지명양도 선수로 공시되고 말았다. 우려했던 일 중 최악의 결과가 나타나고 만 것이다. 박찬호와 서재응에 이어 그나마 아직까지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졌던 김병현까지, 현재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없다.


사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은 아니다. 아무리 부진하다 하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를 0.1이닝만에 강판시키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4실점을 했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신인급 투수가 아니라면 보통은 좀 더 지켜보는 편이다.

 

그 경기를 지켜보면서 느꼈던 위화감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겼다. 밥 멜빈 감독은 김병현을 불펜으로 보낼 수도 있다고 했지만, 포스트 시즌을 놓고 경쟁하는 팀이 당장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를 셋업맨으로 기용할 리는 없다.


특히나 애리조나 불펜은 주로 패전처리로 기용되는 에드가 곤잘래스(5.45)를 제외하고는 덕 슬래튼(2.37), 토니 페냐(2.41), 브랜든 라이언(2.82), 후안 크루즈(3.15) 등이 나름대로 상당한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즉, 김병현에게는 세 가지 길 밖에 없었다. 이대로 선발진에 잔류하거나, 아니면 패전처리용 투수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방출이었다. 이러한 예측은 이미 김병현의 경기가 끝난 직후 현지에서도 나온 예상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지명양도 조치가 전혀 예상을 못한 것처럼, 완전 뒤통수를 맞은 듯 보도하고 있지만 이미 현지에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시기는 너무나 의외다. 필자 역시도 한 번의 선발 등판 기회는 더 줄 것으로 생각했다. 패전 처리용 롱맨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불펜으로 내려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만약 다음번 선발 등판에서 또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때는 애리조나에서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하지만 갈 길이 급했던 것일까. 애리조나는 미련 없이 하루 만에 김병현을 지명양도 조치하고 말았다. 게다가 김병현의 일본행을 기대한다느니, 처음부터 그와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느니, 등의 멘트를 언론에 흘리며 김병현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을 너무나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병현이 처음부터 애리조나로 간 것부터 조금 이상한 점이 있기는 했다. 플로리다야 단돈 10만 달러도 아까워서 벌벌 떠는 팀이니, 어차피 내년에 함께 하지 못할 그를 미리 포기한 것이지만, 사실 애리조나는 김병현이 절실히 필요한 팀이 아니었다.


에이스 브랜든 웹을 비롯한 베테랑 리반 에르난 데스와 덕 데이비스가 나름대로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고, 새내기 기대주인 미카 오윙스와 유스메이로 페팃도 선발 투수로서 낙제점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최근 김병현의 기세가 괜찮은 편이었기에 확실히 포스트 시즌을 노리기 위해서 그를 잡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음이 이번에 알려졌다. 애리조나는 혹시나 지구 라이벌 팀인 LA 다져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김병현을 데려갈까 두려워 그를 잡았다는 후문이다.


사실 이런 식의 트레이드가 처음은 아니다. 자신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체 전력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만, 상대방의 전력 보강을 미리 견제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종종 그러한 방법이 사용되곤 한다.


특히나 양대 큰손이 모여 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는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항상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다. 지난 2002년에는 양 팀의 눈치싸움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선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저 그런 투수가 되어버린 시애틀 매리너스의 제프 위버가 그러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1999년 데뷔해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던 위버는 2002년 전반기 17경기에서 6승 8패 방어율 3.18의 매우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팀이 약해서 패가 더 많았을 뿐 완봉승도 3번이나 기록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선발진에 구멍이 난 레드삭스가 위버를 노린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양키스가 위버를 트레이드 해오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양키스 선발진이었다. 로져 클레멘스, 마이크 무시나, 앤디 페티트, 데이빗 웰스, 올랜도 에르난데스의 안정된 선발진을 보유하고 있던 양키스는 사실상 위버가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엔 이들이 부상 등으로 로테이션에서 빠졌을 때나 위버를 선발로 등판시켰을 뿐, 결국은 그를 셋업맨으로 기용하고 말았다. 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선수를 말이다.


비난 여론이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일파만파로 퍼졌다. 라이벌 팀에 가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한 팀의 에이스급 투수를 데려가 셋업맨으로 기용한다는 것은 팬들이 용납할 수 없는 처사였던 것이다.


김병현도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위버와 유사한 경우다. 실제로는 다져스와 파드리스가 그를 원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애리조나는 그 가능성조차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덕분에 플로리다의 좋은 팀 동료들 속에서 모처럼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던 김병현은 설 곳을 잃어버렸다.


일각에서는 플로리다로의 복귀를 점치기도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의 잔여 연봉이 부담스러워 조건 없이 풀어주었던 플로리다가 다시 그를 데려올 가능성은 없다. 가능성이 있다면, 김병현이 자신의 남은 연봉을 포기한 후 매우 적은 연봉으로 말린스 측과 다시 계약을 맺는 방법 밖에 없다.


지명양도 조치 된 김병현은 열흘 동안 웨이버 상태가 된다. 이 기간 중 원하는 팀이 있으면 그를 데려갈 수 있고, 원하는 팀이 나타나지 않는 다면 김병현은 선택을 해야 한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든지(이 경우 나머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아니면 잔여 연봉을 포기하고 FA가 되는 것이다.


김병현이 플로리다로 복귀하기 위해선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FA 신분으로 다시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애리조나 측에서 연봉 보조를 해주면서 그를 말린스로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지명양도 조치까지 취한 마당에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이래저래 김병현이 처한 상황은 그의 데뷔 이후 최악이다. 선발을 고집하며 팀의 프런트와 마찰을 일으킬 때도, 팀 선수들과의 불화 때문에 트레이드 될 때도 그의 실력만큼은 의심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두 경기에서 무너지며, 그 실력에도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앞으로 김병현의 행보는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난처한 상황이다. 기대를 걸 수 있다면 그의 에이전트가 그 이름도 유명한 ‘단장들의 공포’ 스캇 보라스 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