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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MLB최강 구질 열전(3)-케빈 브라운의 ‘싱킹 패스트 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29.

메이저리그에서 6~70년대는 흔히들 ‘투수들의 시대’였다고 평가한다. 전설적인 수많은 투수들이 등장했던 시기였고, 각종 기록들이 쏟아진 시기이기도 했다. 80년대는 그 투수들의 시대를 마감하는 무렵이었고, 90년대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타자들의 시대’가 도래한다.


90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1점대 방어율은 단 7번 나왔다. 로져 클레멘스(90년 1.93, 05년 1.87), 그렉 매덕스(94년 1.56, 95년 1.63), 페드로 마르티네즈(97년 1.90, 00년 1.74)가 모두 2번씩 달성했을 뿐 랜디 존슨이나 요한 산타나도 달성하지 못한 위대한 경지다.


나머지 1번의 주인공은 통산 211승 144패 3.28의 방어율을 남기고 2005년을 끝으로 은퇴한 케빈 브라운(96년 1.89)이다. 예전 박찬호의 팀 동료이자 메이저리를 대표하는 에이스였던 브라운의 필살기는 90마일대의 빠른 싱킹 패스트 볼. 그의 싱커를 보며 한 메이저리그 전문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륙하는 비행기가 어떻게 떠오르는가를 보여준다면, 브라운의 싱커는 어떻게 가라앉는가를 보여 준다”



▷ 성격만큼 ‘nasty’ - 브라운의 싱킹 패스트 볼


지금도 카를로스 잠브라노(시카고 컵스)나 브렛 마이어스(필라델피아 필리스)처럼 ‘성질만 죽이면 사이영상 투수’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 있다. 젊은 시절의 브라운도 그랬다. 지는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인 브라운은 경기가 풀리지 않는 날이면 덕아웃과 락커룸의 집기들을 때려 부수기가 일쑤였다.


전문가들은 그의 과도한 경쟁성향이 브라운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브라운의 재능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nasty(불쾌한, 더러운, 지저분한 등의 뜻으로 투수의 구질을 언급할 때 최고의 찬사)’한 공을 가지고 있었다.

 

98마일에 달하는 포심을 가진 브라운의 주 무기는 그 누구와의 비교도 불허하는 그만의 싱킹 패스트 볼이었다. 싱커를 던지는 투수가 꽤나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운이 싱커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이유는 그만큼 그의 싱커가 남들과 다른 독특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싱킹 패스트 볼은 투심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투심의 그립을 쥐고서 검지와 중지를 약간 더 벌리는, 흔히 말하는 반 포크 형태로 쥐고 던지면 된다. 강한 악력이 뒷받침 되어 공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선수라면 투심과 스피드 차이가 거의 없으면서도 공의 낙하가 확실하게 보이는 싱킹 패스트 볼을 구사할 수 있다.(사실 싱킹 패스트 볼에 관한 그립과 회전 방향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설이 존재한지만, 굳이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브라운은 그보다도 좀 더 특이했다. 다져스에서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던 당시 브라운의 투구하는 모습을 본 팬이라면 알 것이다. 그의 투구 폼은 ‘과연 저렇게 던져도 어깨와 팔꿈치가 상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자아낼 정도로 온 몸을 뒤트는 특이한 형태였다. 타고난 재능과 훈련이 뒷받침된 브라운만이 가능한 폼이었다.


싱킹 패스트 볼은 투심 패스트 볼 이상으로 땅볼 유도에 유리한 구질이다. 수비가 불안한 팀이라면 너무나도 많은 땅볼 때문에 에러가 양산되기도 하지만(사실 브라운도 그러한 경우의 피해자다),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하는 팀이라면 더블 플레이로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만드는 구질인 것이다.


통산 땅볼/플라이볼(GB/FB) 비율이 2.62에 달할 정도로 내야 땅볼 유도가 많았던 브라운은 통산 328번의 병살타를 유도했다. 1.14의 GB/FB비율을 보이는 대표적인 플라이볼 투수 커트 쉴링의 191번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다. 브라운(3.28)과 쉴링(3.46)의 통산 방어율 차이는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월드시리즈 청부사


91시즌이 종료된 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데뷔해 전설적인 놀란 라이언과 함께 선수 생활을 하고 있던 젊은 시절의 케빈 브라운은, 팀 프런트에 의해 오프시즌 기간 동안 스포츠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사소한 실투에 의기소침해 하던 이 악명 높은 완벽주의자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1992년 265.2이닝을 던지면서 3.32의 방어율을 기록, 21승을 거두며 리그 다승왕에 오른다. 이 21승은 레인저스 구단 역사상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최근 30년간 최고 기록이었다. 이후 볼티모어를 거쳐 내셔널리그로 넘어온 브라운은 플로리다 마린스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신생팀에 둥지를 튼 브라운은 96년 1.89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팀 타선의 지원 부족으로 17승에 그치는 바람에 방어율의 압도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24승의 존 스몰츠(2.94)에게 사이영상을 내줘야 했지만, 이를 계기로 브라운은 빅리그 특급 에이스로 평가받게 된다.


브라운을 보고 꿈을 가지게 된 구단은 오프 시즌 기간 동안 선수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고, 강한 동료들과 함께한 브라운은 97년 마린스의 첫 번째 우승의 주역이 된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한 98년 예상을 깨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월드시리즈로 진출시킨 브라운은 단숨에 ‘월드시리즈 청부사’라는 명예로운 별칭으로 불리게 된다.


더욱이 98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는 이후 최고의 라이벌이 되어 경쟁해야 했던 랜디 존슨과의 맞대결이었다. 랜디도 8이닝 9피안타 2실점 9삼진으로 비교적 호투했지만, 브라운은 8이닝 동안 16개의 삼진을 잡는 등 2피안타 무실점으로 ‘킬러-B’ 휴스턴 타선을 완벽하게 제압한다.


FA가 된 이듬해 7년간 1억 500만 달러라는 역사상 최고액으로 LA 다져스 유니폼을 입은 케빈 브라운은 그 전성기를 이어간다. 지구 라이벌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서로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던 랜디 존슨과의 맞대결은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흥행카드였다. 명승부들이 속출했고, 두 투수의 눈부신 호투에 팬들은 무한한 사랑과 찬사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결국 브라운의 어깨는 무리한 투구폼을 이겨내지 못했고, 부상에 신음하던 브라운은 ‘돈 값을 못한다’ 라는 평가를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3년 14승 방어율 2.39로 다시금 부활하기도 했지만, 이듬해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된 후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2005년 쓸쓸히 은퇴하고 만다. 그다지 보여준 것이 없어 그를 응원하던 팬들도 없던 뉴욕에서의 쓸쓸한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 비운의 에이스


브라운은 정말 운이 없는 투수다. 그가 사이영상을 한 번도 타지 못한 것은 순전히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브라운의 전성기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의 5년, 굳이 포함시키자면 2003년까지의 6년이다.


이 6년 동안 브라운은 200게임에 선발 등판해 1420이닝(게임당 7.1이닝)을 던지며 2.50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거둔 승수는 고작(?) 96승에 불과하다. 그 기간 동안 브라운이 몸 담았던 플로리다와 샌디에이고 그리고 LA 다져스의 타선은 브라운만 나오면 너무 안심을 했는지 물방망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6년 동안 브라운은 매년 최소 25회 이상을 기록하는 등 160번이나 퀄리티 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의 수준급의 피칭을 선보였다. 그의 96승 중 92승은 이 중에 나온 것이다. 나머지 4승은 5이닝 1실점 승이 한번, 그리고 3번은 7이닝 4실점 승리였다. 쉽게 말해 ‘타선의 지원’으로 거둔 승리는 단 3번 밖에 없었단 말이다.

 

그가 승을 거두기 위해 필요한 방어율은 1.61이었다. 54경기에서 2.52의 방어율을 기록하고도 승패 없이 물러나야 했으며, 평균 4.49의 방어율을 보인 50경기에서는 패배만을 맛봐야했다.


무실점으로 막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한 경우가 9번, 1점을 내줘서 승패 없이 물러가거나 패한 적이 무려 26번, 2실점이나(?) 하는 바람에 승리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경우가 또한 24번이다.


저 59번의 기회 중 절반, 아니 3분의 1만 승리를 챙겼다 하더라도 랜디 존슨의 사이영상 4회 연속 수상을 저지당했을 것이 틀림없다. 비슷한 기간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랜디가 97년부터 2002년까지 6년간 202번의 선발 등판하여 2.58의 방어율로 거둔 승수는 120승이었다.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도 17승에 그쳤던 선수가 브라운이다. 감히 그 누가 그 앞에서 ‘승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팀 타선에 대한 불평을 할 수 있겠는가?



▷ 다른 길을 택한 후계자들, 사라진 마구


현재 빅리그 최고의 싱커볼 투수는 AL에서는 작년 다승왕에 이어 올해도 15승을 거두며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로 발돋움한 왕 첸밍, NL에서는 작년 사이영상 수상자이며 올해 3경기 연속 완봉승 등 42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갔던 브렌든 웹이다.(팀 헛슨과 브래드 페니도 수준급의 싱커를 구사한다)


통산 3.73의 GB/FB 비율을 자랑하는 브렌든 웹이나 2.89를 마크하고 있는 왕 첸밍 모두 훌륭한 싱커볼 투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에서 브라운의 모습을 추억하기는 힘들다. 말로 설명하긴 힘이 들지만, 쉽게 말해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브라운은 90마일대 후반의 포심과 날카로운 싱킹 패스트볼을 사용하여 상대 타자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의 파워피처였다. 스피드건에 93마일까지 찍히는 완 첸밍의 싱킹 패스트 볼도, 큰 낙차를 자랑하는 웹의 싱커도 브라운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브라운의 후계자가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멋진 최고의 후계자가 있었다. 그것도 둘씩이나. 2001년과 2002년만 해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지구상에 90마일대의 싱킹 패스트 볼을 완전하게 제구 할 수 있는 투수는 세 명이 있었다. 브라운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의 맷 모리스, 그리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 로이 할라데이다.


할라데이의 경우는 워낙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그의 구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계획이다. 어쨌든 2002년 2.98의 방어율로 19승을 거둘 당시 할라데이의 주 무기는 싱킹 패스트 볼이었다.

 

1997년 98마일의 강속구와 94마일의 싱킹 패스트 볼로 무장한 23살의 젊은 투수가 등장한다. 33게임 217이닝을 던지며 12승을 거둔 맷 모리스는 케빈 브라운을 연상시키는 그 위력적인 싱커로 당장 ‘리틀 브라운’ 이라는 별명을 얻는다.(그의 GB/FB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은 위력적인 포심으로 인한 플라이 볼 유도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형적인 패스트 볼 피처였다)


99년 토미 존 수술 이후 오랜 재활 기간을 거치고 다시 선발로 복귀한 2001년, 그는 여전히 위력적인 싱킹 패스트 볼을 선보이며 메이저리그의 에이스급 투수로 발돋움 한다. 22승에 3.16의 방어율, 특히 그 해 디비전 시리즈 1, 5차전에 커트 쉴링과 연속으로 맞대결을 펼치며 보여준 화려한 투수전은, 김병현 때문에 그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팬들에게도 인상적인 기억을 남겼다.(7이닝 1실점, 8이닝 1실점한 모리스는 쉴링의 완봉과 1실점 완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이듬해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고 만다. 재활시절 그에게 큰 도움을 주며 그에게 멋진 커브를 가르쳐 준 당시 카디널스의 에이스 대럴 카일(커브편의 주인공이 될 선수다)이 사망한 것이다. 그를 인생의 조언자겸 최고의 친구로 여기고 있던 모리스는 2주 동안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슬퍼했고, 이후 투구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고 만다. 카일에게 물려받은 커브로 메이저리그를 재패하겠노라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 변신과정이 부상으로 물들며 매끄럽지 못했고, 또 다시 어깨 수술을 받은 모리스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구위를 보일 수가 없었다. 이제 94마일의 싱킹 패스트 볼은 모리스에게 환상이나 마찬가지. 지금의 모리스는 빅리그에서 직구 구사비율이 4번째로 낮은(작년 45.3%) 편이고, 70마일 후반대의 커브(28.6%-전체 1위)에 의존하지 않고는 빅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이제 브라운과 같은 싱커를 보기란 쉽지 않다. 로이 할라데이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브라운의 모습을 재현해 줄 수 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케빈 브라운,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무적의 구위를 뽐내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