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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행크 아론 상’ 인기상으로 전락하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19.


메이저리그는 지난 1974년 행크 아론의 통산 홈런 기록 경신 25주년을 맞이해 1999년부터 ‘Hank Aaron Award'를 신설해 최고의 타격을 뽐낸 선수를 리그 별로 선정해 시상하기 시작했다.


매니 라미레즈(당시 44홈런 165타점)와 새미 소사(63홈런 141타점)가 그 첫 번째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점점 공신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꽤나 주목받는 개인상 중 하나가 되었다.


개인 성적 외에도 팀 성적과 포지션, 수비 능력 등을 모두 고려해 뽑는 MVP와는 달리 행크 아론 상은 오로지 최고의 ‘타격’을 선보인 선수에게 그 영광이 돌아간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사이영 상과 함께 투타를 대표하는 최고의 영예로운 상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었다.


한 때(2000년)는 기자단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하기도 했으나, 그 이후로는 후보군을 먼저 선정한 다음 팬들의 투표로 뽑는 방식으로 선정 방법을 바꾸었다. 9월 중순에 리그별로 5명씩의 후보군이 선정이 되면 시즌이 끝날 때까지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를 통하여 팬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로 최종 수상자를 가린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 시절이던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연속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고, 배리 본즈도 위대한 4년 중(2001~2004) 03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세 번 모두 수상하며 최다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2번 수상한 선수도 없다.
 

최고의 타격을 보인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라 홈런-타점에서 월등한 거포들에게 주로 주어지는 상이었지만 지난 해 데릭 지터는 최소 홈런(14개, 종전 기록은 2001년 카를로스 델가도의 41개), 최소 타점(97개, 종전 2004년 본즈 101개)으로 수상해 선정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지터에게 밀려 2년 연속 수상의 영광을 놓친 선수가 홈런(54개)-타점(137개) 1위의 데이빗 오티즈였기 때문에 그 의문은 더욱 컸다. 팬들의 투표로 뽑는 만큼 인기가 많은 지터가 선정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불거지기 시작한 ‘행크 아론 상 = 인기상’의 논란은 19일(한국시간) 올해의 후보들이 발표 되면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터의 경우 MVP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을 만큼 작년 한해 빼어난 활약을 보였기에 설득의 여지라도 있었지만, 올해는 후보군 자체가 노골적으로 인기투표를 조장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발표된 양 리그별 후보들의 이름을 한번 살펴보자.


AL :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 매글리오 오도네즈(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블라드미르 게레로(LA 엔젤스), 이치로 스즈키(시애틀 매리너스), 매니 라미레즈(보스턴 레드삭스)


NL : 프린스 필더(밀워키 브루어스), 호세 레예스(뉴욕 메츠), 치퍼 존스(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네티 레즈), 알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조금만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있는 팬들이라면 이 후보군들을 보고 의아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메리칸 리그의 경우 에이로드와 오도네즈 그리고 게레로까지는 당연한 후보 선정이다. 하지만 리그 홈런 2위 타점 4위를 달리고 있는 카를로스 페냐(템파베이 데블레이스)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데이빗 오티즈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 데 그보다 확실히 성적이 떨어지는 같은 팀의 매니 라미레즈는 행크 아론 상 후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적으로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치로 보다는 사상 처음으로 30-20-20-20(2루타-3루타-홈런-도루)를 이루어내며 올해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1번 타자로 급부상한 커티스 그랜더슨(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이 후보로 더 어울린다.
 

어차피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뽑힐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의문 부호를 그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아메리칸 리그는 양반이다. 내셔널 리그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홈런 1위인 프린스 필더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후보가 모두 자격 논란이 거론될 정도. 덕분에 필더의 무혈입성이 예상되지만 탐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보이는 푸홀스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아무리 올해 30홈런을 치며 부활했다고는 하지만 .876의 OPS(출루율+장타율)를 기록 중인 그리피가 후보라는 사실은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미겔 카브레라(플로리다 마린스)가 푸홀스에 비해 뒤지는 점이 전혀 없으며, 그리피 대신 홈런-타점에서 모두 2위를 달리고 있는 라이언 하워드(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올라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78도루를 기록한 레예스도 나름 뛰어난 활약을 보였지만 그보다는 리그 득점 1위를 달리며 30-20-30-30이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미 롤린스(필라델피아 필리스)와 30홈런-50도루가 유력한 핸리 라미레즈(플로리다 마린스)가 타율부터 시작해 대부분의 기록에서 월등히 앞서 있다.


올 시즌 첫 번째로 30-30클럽에 가입하며 유력한 MVP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데이빗 라이트(뉴욕 메츠)의 이름도 빠져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치퍼 존스가 타율 등의 비율 스탯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다지만 부상으로 빠진 경기로 인해 누적 스탯이 부족한 터라 라이트를 제치고 후보에 오를 자격은 없어 보인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개인 성적만으로는 필더와 유일하게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맷 할리데이(콜로라도 로키스)의 이름이 빠져있다는 사실. 도대체 타격 1위 타점 1위 홈런 4위에 최다 안타와 2루타 부문까지 석권할 것으로 보이는 선수가 후보에 없다면 누구를 더 거론할 수 있을까? 쿠어스 필드에서 뛰는 선수라는 점만 아니라면 필더 대신 이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주정하고 싶을 정도다.


양 리그를 합친 10명의 후보군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빅 마켓을 대표하는 선수들이거나, 선수 개인의 인기가 전국구인 스타플레이어라는 점이다.


부활의 조짐을 보이자마자 당장 리그 올스타 투표 1위를 기록한 그리피, 7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일본과 미국에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치로, 내셔널 리그를 대표하는 ‘브레이브스의 영원한 캡틴’ 치퍼 존스, 굴지의 스타 플레이어인 매니와 푸홀스, 그리고 신예 선수들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레예스까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끌어 모아 투표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면 그것은 필자의 지나친 생각일까.


물론 다른 선수들이 인기와 성적에서 모두 압도적인 에이로드를 제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셔널 리그의 경우도 올스타 투표에서 푸홀스를 눌렀던 것에서 보여지 듯 전국구 스타였던 아버지 세실 필더의 팬층을 그대로 흡수한 것으로 보이는 프린스 필더가 홈런왕 타이틀을 앞세워 무난히 수상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쟁 상대인 후보군 선정에 있어서 이렇게까지 공신력이 떨어진다면 어느 팬이 이 상에 큰 의미를 두려고 할까. 전국적으로 널리 이름을 떨치는 그리피가 그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필더를 밀어내는 어이없는 이변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