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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궁지에 몰린 감독의 무리한 악수 - 4일 로테이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9.


[카이져의 야구스페셜]


결국 뉴욕 양키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패했다. 오늘 경기에서의 패인은 두말할 것 없는 조 토레 감독의 용병술, 에이스 왕첸밍을 4일 만에 무리하게 등판시킨 것이 패착이었다. 왕첸밍은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기는커녕 4개째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한 채 4실점하고 강판 당했다.


대체 그는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왕첸밍을 등판시켜야만 했을까. 에이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난 오랜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에이스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5일만의 등판이 아니라 4일만의 등판이라면 패배로 직결됨을 알 수 있다. 4일 만에 등판한 에이스는 팀의 5선발만 못하다.



▷ 5인(일) 로테이션의 정착


한국 프로야구의 초창기였던 1983년, ‘너구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투수 장명부는 무려 60경기(선발등판 44회)에 등판해 36경기를 완투하는 등 무려 427.1이닝을 투구했다. 그해 장명부는 30승(28선발승)을 거두었고, 다승과 완투 그리고 투구이닝 부문에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908년 이후로 400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없었다. 300이닝을 던진 선수도 전설적인 투수인 스티브 칼튼(통산 329승, 사이영상 4회)이 1980년 마지막으로 기록한 이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100경기를 치르는 한국에서 427이닝을 던진 투수가 탄생했던 것이다.


당시 한 팀이 치르는 경기가 모두 100경기, 장명부는 당시 삼시 슈퍼스타즈의 팀 전체 이닝 중 거의 절반을 혼자서 소화했던 것이다. 같은 해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최다 투구이닝을 기록한 선수는 37경기에 등판해 293.2이닝을 던진 잭 모리스(통산 254승)다.


‘선발 로테이션’에 대한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하루걸러 하루 등판이 일반적이었던 시절의 전설로나 전해져올 법한 이야기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현대 야구에서 선발 투수를 저렇게 기용한다면 그 감독은 당장 짐을 싸야할 것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과거의 통계치를 통해 선발 투수는 등판 후 4일의 휴식을 취해야만 다음번 등판에서 최고의 기량을 다시 선보일 수 있음이 밝혀졌다. 메이저리그에서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와 이와 같은 5인 로테이션 체계가 정착되었다. 이를 본받은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성공해, 이제는 정착화 단계에 이르렀다.


이처럼 야구에 관한 기사를 보다보면, 특히나 메이저리그에 관한 기사를 보다보면 ‘5일(日) 로테이션’이니 ‘5인(人) 로테이션’이니 하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5일 로테이션과 5인 로테이션이 같은 것인 줄 알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둘 사이에는 조금의 차이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5명의 선발이 돌아가면서 등판하는 것이 5인 로테이션이다. 단 이렇게 되면 중간에 휴식일이 있거나 하면 에이스라 하더라도 5일 내지는 6일을 쉬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점을 보완하고 에이스, 또는 원투펀치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 5일 로테이션이다.


보통 에이스급 투수들에게 그러한 조치가 취해진다. 선발 등판 후 4일을 쉬고 나면, 순서상 5선발이 등판할 차례라 하더라도 그를 뒤로 돌리고 에이스를 등판시킨다. 에이스를 최대한 많은 경기에 등판시키기 위한 목적과 함께, 등판 일정의 흐름을 일정하게 잡아주는 것이 투수에게 유익하다는 이유에서다. 덕분에 5선발급 투수들의 등판일정은 항상 들쑥날쑥하며, 경기수도 훨씬 적다.



▷ 포스트 시즌에서의 무리한 모험


하지만 이러한 5일 로테이션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로 포스트 시즌이다.


한 시합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시즌 전체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봐야 하는 정규 시즌과는 달리, 포스트 시즌은 어떻게든지 이겨야만 하는 단기전이다. 에이스의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단기전은 ‘선발 투수놀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선발 투수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때문에 매년 포스트 시즌만 되면 4일 로테이션을 사용하겠다고 공언하는 감독들이 나타나곤 했다. 확실한 에이스 카드를 보유했거나 막강 원투 펀치를 보유한 팀의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볼 만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그다지 높은 편이라곤 할 수 없다.


이번 디비즌 시리즈에도 시카고 컵스의 루 피넬라 감독이 3명의 선발 투수로 시리즈를 치르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실행했을 경우 카를로스 잠브라노는 1차전 등판 후 3일만 쉬고 4차전에 등판해야 한다. 클리블랜드의 에릭 웨지 감독도 3차전까지 1승 2패로 밀리는 상황이라면 4차전에 에이스 C.C. 싸바시아를 등판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루 피넬라 감독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4차전에 에이스 카를로스 잠브라노를 등판시키기 위해 1차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던 그를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했다. 결국 이것이 패인이 되어 1차전을 내줬고, 3차전까지 연달아 패하면서 잠브라노는 4차전 마운드에 오르지도 못하게 되었다. 클리블랜드 역시 2승 1패로 앞서던 상황이라 4차전에 싸바시아를 등판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진 뉴욕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은 상황이 달랐다. 결국 그는 에이스 왕첸밍을 4차전에 등판시키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만약 양키스가 1승 2패의 상황이라 4차전에 싸바시아가 등판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 과거에 있었던 4일 만의 등판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과연 4일 만에 등판한 에이스급 투수들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을까? 과거의 결과를 돌아보고 판단하건데, 그 대답은 No라고 확신할 수 있다.


1999년부터 작년까지의 포스트 시즌에서 무려 34번이나 그러한 사례가 있었지만 팀이 승리한 것은 9번에 불과하다. 선발투수가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것도 겨우 8번, 그 중에서도 팀의 승리는 3번뿐이었다. 이들이 모두 각 팀의 에이스급 투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놀라운 수치다.


평균 투구 이닝은 4.2이닝이 채 안되고 방어율은 6.32에 달한다. 이번 왕첸밍의 경우까지 포함하면 무려 9승 26패의 절대적인 열세. 팀의 5선발을 등판시키느니 못한 결과다.


물론 걔 중에는 2003년도의 자쉬 베켓처럼 완봉승을 거둔 선수도 있다. 플로리다 마린스가 월드시리즈 챔프에 오르던 당시 베켓이 월드시리즈 MVP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패하긴 했지만 3차전에 등판해 7.1이닝 2실점 10탈삼진(108구)의 위력적인 투구를 보이고 나서 4일 후인 6차전에 다시 등판해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5피안타 9탈삼진(107구)의 완봉 쇼를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의 경우는 형편없이 무너져 내린 투수들이 더 많았다. 4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온 선수들이 10명이나 된다. 1999년 뉴욕 메츠의 알 라이터 같은 경우는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한 채 5실점하고 강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다만, 최근에 들어서는 포스트 시즌을 대비한 4일 로테이션도 나름대로의 계획에 따라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선보이며, 그 성공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지고 있다. 2004년 이후 있었던 7번의 사례에서는 2004년 뉴욕 양키스의 케빈 브라운(1.1이닝 5실점)만 무너졌을 뿐, 나머지 투수들은 모두 5이닝 이상을 버티며 나름대로 호투했다.


데릭 로우의 경우는 2004년 리그 챔피언십에서 4차전 등판 후 3일 만에 치러진 7차전에 등판해 6이닝 1피안타 1실점으로 양키스 타선을 틀어막는 멋진 모습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7경기에서 승리는 단 2번뿐, 나머지 5번은 모두 패했다. ‘나름대로의 호투’였을 뿐, 포스트 시즌에서 승리를 가져올 만큼의 강력한 투구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 야구에서 4일 로테이션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는 투수는 7이닝을 80개 정도의 투구 수로 막아낼 수 있는 그렉 매덕스와 같은 타입의 투수가 아니고서는 곤란하다. 지금은 체력적인 문제와 구위의 저하 때문에 그런 무리한 기용을 피하고 있지만, 젊은 시절의 매덕스는 3일 이하의 휴식을 취하고 선발 등판한 40경기에서 7번을 완투하는 등 23승 7패 방어율 2.55의 빼어난 성적을 과시했다. 이는 5일 만에 등판한 경기의 통상성적(471경기 225승 146패 3.09)보다 훨씬 뛰어난 기록.


하지만 이제는 매덕스 본인도 이와 같은 투구는 불가능하며, 현 메이저리그에 그와 같은 능력을 지닌 또 다른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시즌만 되면 감독들이 선호하는 에이스의 4일 로테이션. 과연 이것이 옳은 결정일까? 이에 집작하다가 무너지고만 시카고 컵스와 루 피넬라 감독과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을 보면서, 야구가 기록경기임을 잘 아는 그들이 왜 자꾸만 과거의 통계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고집을 내세우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에이스급 투수라 하더라도 4일 만에 등판시키는 것은, 감독의 어리석은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9이닝 완봉승을 보여준 베켓은 칭송받아 영웅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만 그를 4일 만에 등판시킨 감독의 결정은 결과를 떠나 결코 칭찬받을 행동이 아니다. 단지 결과가 좋았을 뿐, 어리석은 판단에 불과한 것이다.


포스트 시즌에서의 패배를 불러오는 에이스의 4일 로테이션, 과연 에릭 웨지 감독은 리그 챔프전에서 싸바시아를 4일만에 등판시키는 무리수를 감행할까? 만약 그렇다면 승리는 보스턴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