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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애증의 보스턴 레드삭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26.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팀을 예전부터 참 싫어했던 사람입니다.


30개 팀 중 가장 싫은 팀 하나를 꼽으라면 미네소타 트윈스와 함께 저울질 할 팀이 바로 보스턴이지요.(그런데 얼마 전에 Daum에 올린 칼럼의 리플을 보니 저를 ‘보스턴빠’라고 하신 분이 계시더군요. 살짝 당황했습니다.^^;)


특히 90년대 말의 보스턴은 정말 싫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시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시장 경제 논리를 처음으로 무너뜨린 팀은 뉴욕 양키스가 아니라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다져스, 이 두 팀이었죠. 게다가 이 두 팀은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도 그 성과를 제대로 내지도 못했었습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페이롤 1위인 양키스를 비난하기 일쑤였지만, 정작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최소한의 성과는 꼬박 꼬박 얻어내는 양키스에 비해, 2~5위권의 페이롤을 가지고도 툭하면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곤 했었죠.


그 두 팀이야 말로 ‘야구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소리를 듣기에 적합한 팀이었습니다.(‘악의 제국’이라는 말도 보스턴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손가락질 하는 경우였죠)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라는 투수는 저 역시도 참으로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2000년도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었죠. 당시 보스턴 감독인 지미 윌리암스는 페드로가 2경기 연속 3홈런을 허용하자, 특별한 부상도 없는 그를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부상자 명단에 올려버립니다. 그리고 올스타전을 보이콧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당시 페드로가 29경기만 선발 등판했던 것은 저런 감독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죠. 역대 최고의 조정 방어율 시즌이든 뭐든, 페드로 급의 투수를 저 정도로 관리해준다면 그런 성적 거두지 못할 이유가 없죠.


때문에 전 그 해의 페드로의 성적은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옆 동네의 랜디가 거둔 성적이 훨씬 ‘위대’해 보였습니다.(이런 점 때문에 심술이 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페드로 같이 ‘관리’ 받은 투수가 매덕스나 로켓 그리고 랜디처럼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던 투수들과 비교 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을 홈으로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그린 몬스터의 존재 때문에 보스턴 소속 타자들은 손해를 본다”라는 시각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그린 몬스터 때문에 홈런이 2루타로 변신하는 회수보다 외야 플라이가 2루타가 되는 경우가 더 많죠. 결국 그린 몬스터는 타자들의 타율과 장타율 향상에 도움을 줍니다.)


물론 이런 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최고 라이벌로 꼽히던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존재 때문에 빚어진 저의 ‘꽁’한 마음 때문이지만요^^;


어쨌든, ‘팀’을 바라봄에 있어서 ‘좋음’과 ‘싫음’이라는 요소를 배제하는 편인 저에게 보스턴은 몇 안 되는 ‘감정’이 실린 팀이었습니다. 그것도 나쁜 감정이...


하지만 언젠가부터 보스턴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테오 엡스타인이라는 GM과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등장하고 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씩 예전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시작했죠.


특히 2004년 극적으로 양키스를 누르고 난 뒤 월드시리즈 챔프까지 먹은 후의 보스턴은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던졌습니다.


그들을 오래도록 짓누르고 있던 ‘저주’와 ‘피해의식’에서 벗어난 보스턴은 진정한 강팀으로 변화했죠. 물론 지난해에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나 싶기도 했지만 올해 잘 극복해 내더군요.


지금 보스턴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투수 4인방(매덕스, 할라데이, 모리스) 중 한 명인 베켓이 에이스로 뛰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괜히 보스턴으로 가서 망하고 있다”라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올해 강팀의 확실한 에이스로 성장한 베켓의 모습을 보니 놀랍더군요. 게다가 포스트 시즌에서의 그 엄청난 피칭까지.


어제와 오늘 월드시리즈 1,2차전 경기를 모두 생중계로 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베켓의 도미넌트한 강함이, 오늘은 보스턴이라는 팀이 가지고 있는 저력을 느낄 수 있는 한판이었습니다.


이제 보스턴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정한 강팀’의 반열에 올라선 모습이더군요. 팀 캐미스트리 부분에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보였고요. 매니 라미레즈와 데이빗 오티즈라는 다이나믹 ‘유머’ 듀오와 신인 개그맨 조나단 파펠본의 존재는 더 없는 축복입니다.


지금 보스턴의 벤치를 보고 있노라면, 예전의 어두침침했던 팀 분위기는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니까요.


뭐, 그렇다고는 해도 앞으로도 제가 보스턴을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제가 좋아하는 보스턴은 셀틱스입니다. 가넷-피어스-알렌 무적 3각 편대 파이팅!!) 하지만 예전과 같이 삐딱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될 일도 없을 것 같네요.


월드시리즈 1,2차전은 보스턴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아직은 5경기가 남아 있습니다. 콜로라도도 이대로 물러설 것 같지는 않고 말이죠. 적어도 6차전 이상은 간다고 봤는데, 모레 3차전을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애증의 팀인 보스턴, 지난 2004년에는 차가운 얼굴로 그들의 우승을 지켜봤던 저이지만, 만약 이번에도 그들이 우승한다면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베켓이 MVP를 탈 것으로 보이기에 더 그런 것이겠지만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