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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2008시즌 박찬호의 상황별 기록 분석 및 결산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2. 1.


2008년의 박찬호는 ‘절반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목표로 했던 풀타임 선발 투수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구원투수로서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하며 나름대로의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올해 박찬호는 5번의 선발 등판을 포함, 54경기에 등판해 95.1이닝을 소화했고 4승 4패 2세이브 탈삼진 79개 평균자책점 3.40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팀의 필요에 따라서 선발과 중간을 오갔고, 컨디션에 따라 구위가 좋을 때는 이기는 경기에서의 핵심 셋업맨으로, 나쁠 때는 패전처리용 롱릴리프로 기용되기도 했다.


1년의 계약을 마치고 FA가 된 박찬호는 동일한 시점의 지난해보다는 훨씬 더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2009년에 뛸 팀을 찾고 있다.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선발 보장’이다. 자신의 꿈을 찾아 끝없이 도전하는 73년생 박찬호의 최종 행선지는 국내 야구팬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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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야구스페셜’에서는 2008시즌 박찬호의 투구 내용을 상황별로 정리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야구에 관한 다양한 데이터가 제공되는 메이저리그의 특성상, 이것을 살펴보면 박찬호의 장점과 단점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 상황별 성적(1) - 다저스타디움은 박찬호를 위한 구장?

박찬호는 구장에 따른 성적의 편차가 큰 투수 가운데 한 명이다. 특히 다저스타디움은 ‘박찬호를 위한 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원정경기에서는 평범한 수준의 투수(NL 전체 평균자책점 4.54)에 불과한 박찬호는 홈인 다저스타디움에서는 펄펄 날아다녔다. 비단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박찬호의 다저스타디움에서의 통산성적(684이닝 45승 25패 평균자책점 2.96)은 그 외의 구장에서의 성적(1162이닝 72승 67패 평균자책점 5.12)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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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은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잘 살리기만 한다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과거 2001년까지 다저스에서 뛰면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박찬호는 투수에게 불리한 구장을 사용하는 텍사스로 이적한 후 부상과 부진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다. 현재도 일부 팬들이 여전히 박찬호가 다저스에 남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또한 박찬호는 5경기 밖에 되지 않지만 선발 등판했을 때, 구원투수로 출장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은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선발을 간절히 원했던 만큼, 매 경기마다 탄성을 자아낼 정도의 좋은 피칭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저 정도의 성적을 보여준 선수를 왜 계속해서 선발로 기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


박찬호가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편에 속하는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반기와 후반기의 성적 차이도 이와 같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선발 투수로의 활약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에는 신인 클레이튼 커쇼가 선발로 고정되고 베테랑 그렉 매덕스의 영입으로 인해 로테이션 합류의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였다. 노장 축에 속하는 박찬호의 체력 문제일 수도 있으나, 구속에서의 저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반기의 부진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답 받지 못한 상황이 가져다주는 상실감이 부진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세이브 상황에서의 투구내용과 성적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등판 때보다 많이 나빴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과거 WBC나 올림픽 예선 등에서 마무리 투수로 좋은 활약을 펼쳤던 그이기에 ‘박찬호는 원래 중압감에 약한 투수다’라고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2008시즌만을 놓고 봤을 때는 중요한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구원투수로서 수준급이라고 평가하기도 무리가 있다.


구원투수로서 기록한 3.84의 평균자책점은 일견 뛰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60이닝 이상을 소화한 내셔널리그의 구원투수 50명 가운데 31위에 불과하며, 41위에 올라 있는 1.46이라는 높은 WHIP은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애를 태우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2008년의 박찬호는 리그에서 평균 정도 수준의 구원투수였다고 할 수 있다. 선발투수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 상황별 성적(2) - 좌타자를 극복하라!

항상 박찬호의 약점을 지적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좌타자 공포증’에 관한 것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타자에게는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좌타자만 만나면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기 일쑤였던 것. 무려 3할 대의 피안타율을 기록했으며, 이는 자신의 통산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271)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메이저리그를 통틀어서 4할 대의 출루율을 기록한 선수가 단 10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선발로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좌타자를 상대로 기록된 저 높은 피출루율은 반드시 개선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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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투수로서의 경험이 부족해서인지는 몰라도 등판 후 처음으로 맞이한 타자에게도 약한 모습을 노출했다. 장타를 쉽게 허용하면서 시작부터 경기를 어렵게 끌고 가는 모습을 자주 살펴볼 수 있었다.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실점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역시 구원투수로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연관되는 부분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올 시즌 박찬호는 부담이 없을 때는 잘 던졌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나 승부처에서는 나쁜 피칭을 선보였다는 증거가 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점수가 4점차 이상일 때는 상대 타자들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압도하지만, 4점차 이내의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동점일 때의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은 매우 나쁘다.


2아웃 득점권 상황에서는 2할 대 초반의 매우 낮은 피안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피출루율을 살펴보면 정면승부보다는 도망가는 피칭을 선택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올해 박찬호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팬이라면 2아웃 상황에서 볼넷을 허용한 후 주자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 교체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을 것이다. ‘Late & Close’란 7회 이후 1점차 이내의 승부이거나 동점 주자가 출루해 있는 상황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클러치 상황’이라 불리는 중요한 시점에서 박찬호는 3할 대의 피안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역시 그는 구원투수 체질이 아니다.


▶ 부활의 가장 큰 원인은? - 회복된 공의 스피드

구원투수로서 뚜렷하게 성공했다고 보기도 힘들고, 선발로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을 ‘성공적인 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박찬호의 회복된 구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성기 시절의 박찬호는 시속 90마일대 중후반의 포심 패스트볼과 90마일대 초반에 형성되는 위력적인 투심, 그리고 예리한 커브와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던 투수였다. 결정구는 변화구였지만, 그것이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빠른 직구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한 후 허리 부상을 당하면서 그는 구속을 상실해 버렸다. 92마일 이상을 유지하던 직구 평균 구속이 90마일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부진이 절정에 이르렀던 2005년에는 89.3마일, 샌디에이고에서 부활의 기미를 보였던 2006년에도 직구의 평균 스피드는 89.5마일에 불과했다.(1마일은 1.6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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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직구 스피드가 올해 완전히 회복되었다. 전체 투구의 51.3%에 해당하는 박찬호의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는 92.6마일(149km)이었다. 90마일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꾸준한 속도를 유지했고, 최고 시속 97마일에 달하는 위력적인 포심을 구사했다. 81~82마일 사이에 형성되던 슬라이더(28.8%)도 올해는 평균 스피드가 84.5마일로 올라갔고, 커브도 속도가 붙으면서 예리함을 되찾았다. 내년에도 이와 같은 구속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선발 투수로서의 성공 가능성도 충분할 것이다.


이런 저런 상황을 종합해서 굳이 결론을 내리자면, 내년 시즌 박찬호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다저스에 남아서 선발 투수로 활약하면 된다는 명쾌한(?)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역시나 데이터는 참고사항에 불과할 뿐, 가장 확실한 답은 박찬호가 겨우내 흘리는 땀 속에 담겨 있으며, 팬들은 그가 쓰고 있는 답이 ‘정답’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출처 : 홍순국의 MLBphotographer.com]


//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