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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WBC 예비엔트리에 포함된 백차승, 이번에는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2. 2.

제2회 WBC의 1차 예비 엔트리가 발표된 월요일, 다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김인식 감독 등이 선정한 명단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의 백차승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10년 전에 한국 야구계에서 영구제명을 당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200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비운의 메이저리거 백차승. 그의 이름이 예비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야구와 관련된 각종 커뮤니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갑론을박이 한창인 가운데 최종 엔트리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인지에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연 백차승의 대표팀 합류는 가능할까? 현실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한다.


▶ 미국 국적인 백차승의 WBC 출장이 가능하긴 한가?

“(조국을 저버린 그를) 출장 시키는 것이 옳은가?”의 당위 문제는 일단 제쳐 두고, “미국 국적을 지닌 선수의 출장이 가능한가?”라는 현실 문제만을 고려해 본다면, “가능하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WBC는 올림픽 등의 여타의 국제대회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메이저리그에는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속해있고, 그 중에는 두 개 이상의 국적을 가진 선수들도 많다. 특히 자기 자신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부모는 중남미나 유럽인인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대회 위원회는 선수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자신이 태어난 나라 외에 부모의 출신 국가 소속으로도 대회에 출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제1회 WBC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미국을 대표하는 포수 마이크 피아자는 아버지의 나라를 따라 이탈리아 대표로 출장했고, 반대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같은 경우는 아버지의 나라 도미니카 공화국 대신 뉴욕에서 태어난 자신의 국적을 따라 미국 대표로 출장했다.


아직도 메이저리그 관련 기사에서 백차승을 언급할 때면 'Cha Seung Baek, of Korea'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국적과는 관계없이 백차승도 (뽑아만 준다면) 한국 대표로 출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 대표로 선발될 만한 실력은 있는가?

90년대 말 한국의 고교 야구계는 3명의 걸출한 동갑내기 투수들이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부산고의 백차승도 그 중 한 명이었으며,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두 명은 당시 최강이었던 신일고의 에이스 겸 4번 타자였던 봉중근(LG)과 신일고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팀으로 평가받았던 경남고의 에이스 송승준(롯데)이다.


당시 부산고는 비교적 약체였기에, 팀으로서는 다른 두 학교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만큼은 백차승이 단연 최고로 인정받았었다. 최고 구속이 시속 145~147km 정도였던 봉중근과 송승준에 비해, 그 정도의 구속을 평균으로 기록하며 최고 152km의 강속구를 구사했던 백차승은 스카우터들 사이에서 부동의 투수 랭킹 1위였다.


백차승은 동갑내기인 일본의 마쓰자카와 고교시절 국제무대에서 만나 자연스레 비교대상이 된 적이 있다. 당시 그 대회들을 보러왔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대부분 ‘당장의 완성도는 마쓰자카, 하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은 백차승’이라는 일관된 평가를 내렸었다. 박찬호의 뒤를 이을 메이저리그의 아시아 출신 에이스 후보 1순위가 바로 백차승이었던 것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시 백차승(125만)의 계약금이 봉중근(120만)이나 송승준(90만) 달러보다 많았던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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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과 송승준은 결국 메이저리거로서의 꿈을 버리고 국내로 복귀, 둘 다 올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리그에서도 좋은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한국으로 복귀할 수 없는 백차승은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올 시즌 드디어 샌디에이고에서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됐다. 라이벌들이 그토록 바랐던 꿈을 홀로 남아 이루어낸 것이다.


백차승은 올해 32경기(21선발)에 출장하여 141이닝을 던졌고 6승 10패 평균자책점 4.79를 기록했다. 크게 뛰어난 성적은 아니지만, 후반기에 4승 5패 4.30의 좀 더 좋은 성적을 보여주면서 내년 시즌 3선발로 일찌감치 낙점된 상태다.


그는 빠른 직구와 결정구인 슬라이더, 그리고 커브와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직구의 평균 스피드가 시속 91.3마일(147km)에 달하며 슬라이더의 속도도 평균 85.8마일(138km)이나 된다.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으며, 제대로 긁히면 140km가 넘는 예리한 슬라이더가 포수 미트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백차승 만큼의 스피드와 제구력(43볼넷)을 겸비한 선발 투수는 KIA의 윤석민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능력치만 놓고 본다면 최종 엔트리에 뽑힐만한 실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내년 시즌 WBC 본선 대회가 열리는 구장 가운데 하나인 샌디에이고의 PETCO파크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점은 백차승만이 지니고 있는 큰 장점이다.


▶ 이제는 꼬인 매듭을 풀어 보는 것은 어떨까?

대회 출장이 가능하고 대표로 뽑힐만한 실력도 충분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일은 그런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백차승의 대표 합류는 불가능하다. 바로 팬들의 용서와 인정이다.


개인적으로는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선발 위원들이 큰 결단을 했다고 본다. 한 번쯤은 ‘백차승의 원죄’를 공론화 시켜서 뒤엉킨 매듭을 풀 필요가 있다. 그 결과가 백차승이라는 아직은 ‘젊은’ 투수를 향한 한국 야구계와 팬들의 ‘용서’가 되던, 아니면 ‘완전한 추방’이 되던 간에, 지금처럼 이도저도 아닌 상황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8년 아시아 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태업(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자진강판)을 벌였다는 이유로 백차승이 영구제명을 당한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아직도 속사정이 완전히 밝혀지지 그 사건의 내막은 이제 와서 다시 풀어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메이저리그 말고는 달리 아무런 길이 없었던 백차승은 99년 출국 이후, 단 한 번도 귀국하지 않았기에 병역법 위반자로 명시되기도 했었고, 2005년 미국 시민권자인 현재의 부인과 결혼하면서 한국 국적의 포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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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백차승(28 )이 3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후 경기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이야기 하던 중, 지난 올림픽 야구 경기를 보며 가슴이 벅차고 뿌듯하였다며, 당시의 감격을 떠 올리며 눈시울이 붉혔습니다.”


위는 Daum 스포츠 해외야구 카테고리에서 <홍순국의 MLBphotographer.com>을 연재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전문 사진기자 홍순국 기자가 올림픽이 끝난 후 백차승을 만나고 나서 쓴 기사의 내용이다. 한국을 떠나 있고, 다른 국적을 가지긴 했지만 그 속은 여전히 한국인임을 느낄 수 있다.


10대 시절의 실수(또는 오해)는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앗아갔고, 20대 중반에 내린 하나의 결정은 자신이 태어난 조국마저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만약 내년 WBC에서 대표로 뛰게 되더라도, 백차승의 국적은 여전히 미국이다. 그것까지 돌이키기에는 병역 문제를 비롯하여 그 동안 쌓여버린 문제가 너무나도 크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백차승에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속죄의 의미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쯤 허락해도 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을 되돌려 원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에 저지른 잘못은 용서할 수도 그리고 용서받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속죄의 기회’를 주자는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의견도 비난받을 일만은 아닌 듯하다.


선수 선발은 위원회의 고유권한이지만, 백차승의 선발만큼은 야구팬들이 그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기 전까지의 여론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그 여론은 지금부터 야구팬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아직은 단정지을 수 없다. 다만, 10년 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너무나도 복잡하고 민감하게 뒤엉키는 바람에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던 실타래가 이번에는 속 시원히 풀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볼 뿐이다.


[사진출처 : 홍순국의 MLBphotographer.com]


// 김홍석(http://mlbspecial.net/)



(PS. 김인식 감독님께서 나름대로 큰 맘 먹고 결단하신 듯 해서, 악플이 달릴 것을 각오하고 백차승에게 기회를 주자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봤습니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르는 것이고, 용서라는 것이 없다면 세상은 지옥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