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에 열린 제1회 WBC는 나름대로의 인기를 얻으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참가한 선수들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메이저리그는 물론,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전년도에 45일 이상 부상자 명단(DL)에 오른 선수는 구단의 허락이 있어야만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정해놓았다.
지난해 초반 2달 이상을 결장한 추신수도 그 규정에 묶여 있는 선수 가운데 하나다. 아무리 자신이 원하고 국가가 필요로 한다 하더라도,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OK"해야만 이번 WBC에 출장할 수 있는 것이다.
클리블랜드는 굳이 추신수의 대표팀 합류를 허락할 필요가 없다. 아니 상식적이라면 허락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몸을 만들고 그 성과를 시험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할 3월에 전력을 다해 100%의 기량을 끌어내야 하는 국제대회에 출장한다는 것은 그 만큼 부상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팔꿈치 수술과 그로 인한 재활 등으로 1년 가까이 고생했던 추신수는 그러한 부상의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그의 출장을 막는다 하더라도 클리블랜드가 비난 받을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제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 올해 인디언스의 시즌 계획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 멤버 가운데 한 명이 아니던가. 한국 팬들에게 욕을 듣건 말건 추신수라는 주요 전력을 최대한 아끼고 보호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는 추신수의 WBC 출장을 허락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굳이 그들이 우리나라 대표팀을 신경써줄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추신수는 이미 클리블랜드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당연히 그의 WBC 출장과 관련된 내용도 기사화 되었고, 그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 인디언스가 추신수의 대표팀 합류를 허락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추신수의 병역 문제를 언급하면서 시작되는 이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클리블랜드 구단과 지역 언론의 관심사는 추신수의 대표 출전이 아니라, 이를 통한 그의 병역 혜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루트를 통한 것인지는 몰라도, 추신수와 그의 족쇄나 다름없는 병역 문제에 관련하여 그들은 꽤나 많은 것을 조사한 것 같다. 한국의 성인 남성은 30세가 되기 전에 24~28개월의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한국 야구 대표팀은 지난 1회 WBC의 4강 진출에 대한 부상으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는 것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핵심적인 내용,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는 성적과는 관계없이 병역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인디언스는 추신수가 병역 의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인디언스의 단장(GM) 마크 샤피로는 “우리는 그것(병역 의무)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디언스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들은 이번 WBC를 통해 추신수가 병역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또는 기대)한다는 뜻이다.
인디언스와 샤피로 단장은 지난 WBC에서 한국 대표팀이 병역 혜택을 받은 것은 처음부터 약속된 것이 아니라 4강 진출 후 주어진 ‘특별한 포상’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러한 일이 반복되리라 기대(또는 확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 WBC 대표팀 합류 허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추신수와 한국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지만, 추신수에게 한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그러니 대회의 결과와 관계없이 그에게 병역 혜택을 허락하라’
라는 최후통첩 말이다.
조금 앞서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번 WBC를 통해 추신수가 병역 혜택을 얻지 못한다면, 인디언스 측은 추신수에게 한국 국적을 포기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사실 추신수 본인에게도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추신수에게 메이저리거로서의 선수 생명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일부 팬들은 추신수가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 취득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단과 언론 그리고 에이전트의 수완이라면 추신수의 미국 국적 취득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샤피로 단장이 "We're confident it won't be an issue"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최후의 방법으로 그러한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다행(??)히 이번 대표팀 엔트리에 올라간 선수들 가운데 병역 미필자는 추신수를 비롯해 박기혁과 최정까지 세 명이 전부다. 혹시라도 향후 대표팀이 거두게 될 성과에 따라 병역 혜택을 준다 하더라도 그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나 그 대상 가운데 한 명이 ‘앞날이 기대되는 메이저리거’ 추신수라면 상당수의 야구팬들은 오히려 동의한다는 뜻을 나타낼 지도 모른다.
클리블랜드는 추신수를 대표팀 합류를 허락해주는 호의(?)를 배푸는 대가로 그에게 병역 혜택을 허락하기를 노골적으로 바라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당사자인 추신수 본인도 내심 기대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추신수라는 전도유망한 선수의 앞날을 위해 또 다시 특례를 적용해 병역 혜택을 허락해야 하는 것일까? 처음부터 ‘이번에는 없다’라고 공언했던 것을 다시 뒤집어도 되는 것일까?
3월에 열리는 제2회 WBC는 이승엽, 박찬호, 김동주의 불참 외에도 추신수의 병역 혜택이라는 또 하나의 숙제를 안고 있다. 복잡하게 뒤얽힌 각각의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는 결말은 과연 무엇일까...?
[사진 출처 : 홍순국의 MLBphotographer.com]
// 김홍석(http://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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