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일단락됐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 45인 예비 엔트리 중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선수가 있었다. 그렇다.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백차승, 바로 그였다.
그러나 WBC 특성상 선수가 현재의 국적(Current Country)으로 참가할 수도 있고, 조국(Native Country)으로 참가할 수 있어 그를 선발한다고 해도 규정상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많은 팬들이 그의 선발을 반대했다. 스스로 국적을 포기한 그가 과연 한국인의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일컬어 '제2의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라고도 한다.
▶ 한국인의 '외국' 인식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적 문제가 나올 경우 이민가는 사람들이나 국적을 바꾸는 사람들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한다. 무엇 때문일까? 그 근본적인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원복 교수가 ‘완전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본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 우리나라’편 책을 읽어 보면 한국이 반도에 자리잡고 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반도(半島)란 대륙에서 뻗어나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을 일컫는데, 그러다보니 반도는 대륙에서 바다로, 섬으로 뻗어나가는 다리 역할을 하고 반대로 섬에서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과거 로마제국 같은 강대한 세력이 자리잡았던 이탈리아 반도는 아무도 감히 집적거릴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모든 유럽의 강국들이 서로 차지하려 드는 바람에 1860년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1500년간 전란에 시달려야 했다. 그만큼 반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중국 대륙과 섬나라 일본 사시에 있는 한반도는 온갖 대륙의 강자들의 침략은 물론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침략, 심지어 해적들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외적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던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끊임없는 침략, 침략자들의 살육과 약탈에 시달려야 했던 반도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제든 외적과 맞서 싸울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내야 하는 피곤한 삶의 연속이었다.
외적의 침략이 잦으면 그만큼 이민족과의 접촉이 많아지고, 자연 이민족과 피가 섞일 가능성도 훨씬 높아지는데 수천년간 이러한 이민족과 결합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민족의 순수한 혈통이 끊어지고 결국 민족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되므로 민족의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해 피가 섞이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는 배타적 민족성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2천 년 가까이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려온 발칸 반도의 국가들이 지금까지도 철저한 민족 국가로 남아 서로 뒤섞이지 않은 사실을 보아도 반도 사람들의 배타성은 민족 보존을 위한 생존 본능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끝없는 외적의 침입에 시달려야 했던 반도 국가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내 것’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지상 과제였으며,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로 ‘충(忠)’ 이었던 것이다.
▶ 지충필지충(知忠必知中)
'충‘을 알려면 반드시 中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말씀이다. ‘中’이 지닌 진정한 의미는 천하의 커다란 근본(中者天下之大本)이며, 공정하고 올바르며 사사로운 이해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 즉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을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모든 이에게 올바르고 공정한 것을 중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이에게 올바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나 혼자에게만 올바른 것이 아니라 모든 이(우리 사회)가 옳다고 ‘정해 놓은 것’으로 이것을 부정하거나 바꾸거나 변질시키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한 번 정한 가치에 대한 융통성 없는 순종과 ‘그렇다’, ‘아니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가정은 화목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한국인들이 ‘올바르다’고 인정하는 바이므로 이를 부정하거나 거스르는 행동은 한국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공동체가 인정한 가치는 고집스럽게 지키는 정신. 그래서 마음이나 태도를 이리저리 바꾸는 것을 죄악시하는 한국인의 정서도 모두 忠이라는 한 글자로 읽어 낼 수 있는 독특한 한국인의 국민성인 샘이다.
▶ 백차승, 제 2의 '스티브 유'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즉 백차승 문제도 국적 따위를 바꾸는 태도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올바르지 않은 정서’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특성상 군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야구선수이기를 떠나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써 자질 문제까지 대두가 된 샘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또 하나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천재 골프소녀 미셀 위가 그렇다. 부모 모두가 한국인인 그녀는 어떻게, 용캐도 한국인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지닐 수 있다. 그런데 해답은 간단하다. 그녀는 애초 한국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일 뿐이다. 따라서 그녀를 한국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언론의 힘일 뿐이며, 현명한 시청자들은 그녀를 미국인으로 바라보고 한 명의 골프인으로써 경외감을 보내는 정도이다. 그녀가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언론사의 충분한 관심거리를 끄는 행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관능적인 몸매나 뛰어난 외모도 그렇지만, 성대결이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어떻게든 ‘금남’의 벽을 뚫으려는 의도가 그들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성이기에 뒤따르지 않은 ‘군대문제’도 전혀 문제될 것 없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한국인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지켜야 하며,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을 죄악시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인이건 개인이건 자신이 뱉은 말은 확실히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스티브는 한국 가수로써의 명예를 걸고 2년간의 공익근무를 확실히 마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한지 하루만에 국적을 바꾸어 버렸다. 차라리 아무 소리 없이 사라져갔다면 한국 가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까지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라이온스 김응룡 사장은 삼성 감독 시절에 ‘트로이 오니어리’와 ‘노장진’이 거의 동시에 팀을 이탈하자 둘에 대한 처벌을 달리 했다. 모 신문사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 “오니어리는 말하고 갔잖아!!” 즉, 당시 노장진은 말 없이 팀을 이탈하여 외국인 선수보다 더 많은 벌금을 물고 난 이후 롯데로 트레이드되기에 이르렀고, 오니어리는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는 이유를 말하고 미국행을 선택했기에 경미한 처벌에 그쳤던 것이다.
즉, 스티브와 백차승이 나란히 거론되지만 엄밀히 다르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스티브는 말 하고도 안 지킴으로써 공개적으로 한국인임을 포기했기에 역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케이스이지만, 백차승은 그야말로 말 없이, 그 누구의 주목을 받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국적을 바꿨느니 어쨌느니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즉, 백차승은 성별이 남자인 것(즉 군문제)만 제외하면 미셸 위와 동급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샘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마이너리거였을 때에는 최희섭때와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더니, 그가 빅리거가 되고 나서야 병역문제가 어쨌느니 저쨌느니 하는 소리가 나온 것이다. 즉 그를 논란의 대상으로 불러낸 것은 언론사였고(스티브 유는 스스로를 논란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백차승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는 원치 않게 병역 문제 기피에 대한 해명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미국인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가라데의 달인 최배달 선생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나의 스승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설령 나를 해치려는 사람도 ‘반면선생(反面先生)’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즉, 저런 사람들이 있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빛나는 샘이다. 백차승 같은 선수가 있기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한국계 일본 프로야구 선수 히야마(한국명 황진환)를 포함하여 재일동포 장훈씨 같은 분이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 분야에서의 국적 포기는 양상을 달리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야구 유망주들이 태평양을 건널 때 쓰레기보다 더한 KBO는 그들을 보호해 줄 시스탬은 구축하지 않은 채 오히려 더 심한 압박을 가했고(예 : 해외 진출 후 국내 복귀시 2년간 자격 정지. 위헌결정 이후 조항 삭제), 2006년도 아시안게임 당시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에도 미국 선진야구를 배워 온 그들을 완전히 외면한 채 국내 선수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로만 국가대표를 배정한 경우도 있었다(당시 일본,대만에 패배).
재일동포 야구선수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고향은 현해탄' 이라고 말이다. 일본 내에서는 조센징 소리에 마음아파하고, 국내에서는 쪽발이 소리에 등떠밀리기 때문이다. 같은 처지에 놓인 미국에 진출한 선수들, 특히 아버지의 나라로 오고 싶어하는 재미교포 2세와 같은 선수들이 '우리 고향은 태평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사진 = 백차승 (C) 홍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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