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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에이로드 약물 파동을 향한 팬들의 반응 유형 분석

by 카이져 김홍석 2009. 2. 10.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com)>의
알렉스 로드리게스(이하 에이로드)의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에 대한 보도가 있은 후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 반응이 안타까움으로 나타나든지, 아니면 고소하다는 식으로 드러나든지 간에, 충격의 종류와는 관계없이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메이저리그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슈퍼스타의 스캔들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팬들의 반응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건, 아니면 멀리 떨어진 한국 땅에서건 야구팬들의 발길이 잦은 커뮤니티에는 가지각색의 의견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시즌 중에 비해 이슈 거리가 적은 스토브리그 기간이라 다소 조용했던 게시판이 갑작스레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논할 것 없이 누리꾼들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반응은 일정한 몇 가지 정형성을 보이고 있다.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팬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1. 경악 - “나 이제 메이저리그 안 볼래!”

이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된 일부 팬들은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두 번 다시 메이저리그를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들도 있다.


“에이로드만은 다를 줄 알았다”는 팬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본즈의 얼룩진 기록을 지워줄 깨끗한 선수’라고 생각했던 에이로드가 있었기에 지난 몇 년간의 실망을 참고 견뎌온 일부 야구팬들은 실망을 넘어 절망에 빠져버린 듯하다.


정정당당한 승부야말로 스포츠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2. 비난 - “에이로드의 기록에 별(*)표를 달아야 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에이로드를 비난하는 야구팬들이다. 특히 ‘손치기 사건’과 ‘마돈나와의 스캔들’ 등으로 인해 그의 도덕성에 의문을 가져왔던 사람들, 그리고 숙명적으로 그와 라이벌이 되어 비교되어 왔던 몇몇 선수들의 일부 팬들은 ‘잘 걸렸다’는 듯이 ‘에이로드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다.


실망스러운 사건이기에 이러한 반응이 가장 일반적이고,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번 보도가 ‘혐의’가 있음을 밝힌 것일 뿐, ‘사실’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모든 메이저리거의 85%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스테로이드 전도사’로 자청하는 호세 칸세코의 말이다. 칸세코가 에이로드를 대상으로 했던 발언을 예로 들며 ‘이미 알고 있었던 일 아니냐’라고 비난하는 팬들은 언젠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팬들이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되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는 것인지 심히 궁금하다. 지금은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3. 물 타기 -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선수 없다!”

에이로드의 팬들 가운데 일부, 그리고 어떤 일이든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려는 팬들은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굳이 들춰내려면 베이브 루스와 행크 아론도 예외일 수 없다”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라는 선수의 팬층이 워낙에 두텁기 때문에, 이러한 물타기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루스에 대한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고, 아론 역시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각성제의 일종인 암페타민을 사용했음을 시인한 바 있다. 80년대에는 선수들이 뒷주머니에 넣어 놓은 코카인이 부서지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헤드퍼스트 슬라이딩만 했다는 웃지 못 할 사연을 털어 놓은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이로드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혐의’에 불과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역시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꼭 법적인 처벌은 아니라 하더라도, 프로 선수에게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바로 팬들의 외면 혹은 손가락질이 아니던가.


4. 자포자기 혹은 무관심 - “그래서 어쩌라고?”

2007년 12월, 메이저리그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미첼 보고서’가 발표된 순간 모든 기대를 접어버린 팬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미 1년 전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그러한 부분에 대한 면역이 생겨버린 팬들에게는 알렉스 로드리게스라는 또 한 명의 슈퍼스타가 금단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고 해서 특별히 더 실망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주범도 없고 그 근원도 짐작키 어려운 현 시점에서 굳이 ‘마녀사냥’식으로 이름이 드러난 선수들을 몰아가봤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과거의 죄일 뿐, 정식 규정으로 도핑 검사와 처벌이 생겨난 이후에는 그러한 부정행위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스테로이드가 메이저리그를 잠식했건 말건 간에, 자신은 여전히 메이저리그를 좋아하고 즐기겠다는 생각, 더 나아가 ‘아쉽지만 과거의 잘못은 용서해줄 것이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팬들이다.


어쩌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야구계에서 팬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태도가 가장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단, 그것이 단순한 ‘현실도피’라면 매우 곤란하다.


▶ “일단 조금만 기다려보자”
이것은 필자의 생각이다. 당장은 어떠한 ‘사실’도 드러나지 않았다. <SI.com>을 통해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취재를 해본 결과 4곳의 취재원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이 말하길 ‘에이로드가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하더라”


<SI.com>은 ‘~카더라 통신’의 형태를 빌어 ‘에이로드의 스테로이드 사용’이라는 혐의를 보도했을 뿐이다. 즉, 그 기사가 ‘에이로드가 도핑 검사 결과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을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후에 있을 에이로드의 대응과 추가로 밝혀질 지도 모르는 ‘증거(혹은 증인)’가 나타날 때까지는 팬들이 조금만 참고 그 반응을 유보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미 우리는 ‘루머’로 인해 일부 연예인이나 공인이 죽음까지 선택한 것을 목도한 전례가 있다. 에이로드를 향한 비난이든 변명이든 혹은 용서든, 그 모든 것은 ‘에이로드의 스테로이드 사용’이 ‘진실’로 드러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일단은 조금만 기다려보자.


// 김홍석(http://yagootimes.com/)

(PS. 오늘 아침에 공개하려고 어제 오후에 미리 써둔 글인데 그 사이에 에이로드가 스테로이드 사용을 시인했군요. 덕분에 야구타임스에는 올리지 못하겠고, 일단 블로그를 통해 공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