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국가대표팀을 구성할 때 항상 거론했던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로서 투-타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이들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더 많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국위선양을 했다. 그렇다. 바로 박찬호(36,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이승엽(33, 요미우리 자이언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의 국가대표 합류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드림팀 Ⅰ’을 출범시켰던 우리나라는 당시 한국인 빅리거로는 최초로 15승을 거둔 박찬호를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물론 박찬호는 전에도 청소년 국가대표팀으로서 자주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프로선수로서 정식으로 세계무대에 나타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박찬호의 전천후 활약에 힘입어 국가대표팀은 연일 콜드게임승을 거두며 비교적 쉽게 아시안게임 야구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국가대표 구성시 본인의 참가 의사와는 상관없이 늘 한국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이승엽의 국제무대 등장은 이보다 조금 더 늦은 2000년도였다. 당시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주전 1루수로 선발되었던 이승엽은 일본과의 일전에서 고비 때마다 마쓰자카를 상대로 홈런과 2루타를 기록하며 ‘국민타자’로서의 위용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후 박찬호와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구성시 본인의 참가 의사와는 상관없이 늘 한국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0년이 지나도 ‘박찬호-이승엽’
그리고 이들이 동시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던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도 둘은 여전히 슈퍼스타였다. 대회 홈런왕/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한 이승엽,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방어율 0’을 기록한 박찬호 모두 2006년 시즌을 앞두고 좋은 출발을 선보였다. 특히, 박찬호는 풀타임 빅리거로서 센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자리를 잡아갔고, 이승엽은 일본 무대 진출 이후 첫 4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동경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작년 베이징 올림픽은 방콕 아시안게임 폐막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국가대표 구성에 어려움을 토로했던 한국 야구 위원회는 여전히 박찬호, 이승엽을 염두에 둔 멤버들을 구상했다.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가 올림픽 휴식기간을 갖는 것을 틈탄 이승엽은 자진 참가의 형태로 올림픽 무대에 합류했다. 다만 같은 위치에 놓였던 박찬호는 빅리그 일정 특성상(올림픽 진행중에도 일정한 휴식기간 없이 정규시즌 진행) 참가가 어려웠다. 어쨌든 10년이 지나도 늘 박찬호-이승엽이었다.
두 베테랑을 놓아 준 김인식 국가대표팀 감독
그런데 문제는 2009 WBC에서도 다시 한 번 박찬호-이승엽의 이름이 오르내린데 있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WBC와 같은 세계 대회에서는 둘의 합류가 필수적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또 박찬호-이승엽이냐? 이제는 제발 이 둘을 가만히 두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며 ‘대표팀 세대교체’를 역설하기도 했다.
양측 입장 모두 맞는 말이었다. 올림픽과는 달리 WBC는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참가하는 대회다. 따라서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베테랑들의 참가가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러한 베테랑들에 의지하여 국가대표팀을 구성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박찬호와 이승엽을 그 누구보다도 원했던 것인 바로 김인식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애제자들이기도 했던 두 선수의 고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은 두 선수를 놓아주며, 이렇다 할 베테랑 없이 국가대표팀을 구성했다.
실제로 국가대표팀 최종 엔트리 중에서 만 30세를 넘긴 선수는 단 네 명에 불과하다. 박경완(37), 손민한(34), 임창용(33), 정대현(31)이 그들인데, 1회 WBC 엔트리 멤버와 비교해도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당시 30대 선수 총 14명).
베테랑 한 명이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김인식 감독은 아무 말 없이 애제자 둘을 놔주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박)찬호하고 (이)승엽이를 그냥 놔 뒀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끝까지 둘을 감쌌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결단이 새 영웅의 탄생을 만들어
그러나 젊은 선수들이 가득한 국가대표팀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이들이 많았다. 즉, 젊은 선수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가 이번 ‘김인식호’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맡기는 김인식 감독의 신념은 또 다른 뉴 히어로(New Hero)의 등장으로 나타났다. 바로 봉중근과 김태균을 주축으로 한 젊은 선수들이 그들이었다.
김태균은 두말 할 것 없는, 작년 정규시즌 홈런왕이다. 몸쪽, 바깥쪽, 변화구, 빠른 볼을 가리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잡식성 타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김태균의 ‘본성’은 WBC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만전에서 선제 2타점 적시타로 대회 첫 타점을 신고한 김태균은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좌측 담장 넘기는 140m짜리 대형 홈런까지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다시 만난 일본과의 순위 결정전에서는 결승 타점을 비롯하여 2안타를 기록하며, 무라타 슈이치와의 4번 타자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이러한 김태균의 등장은 ‘포스트 이승엽’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국가대표팀에 큰 성과였다.
대만/일본전에서 호투하며, ‘방어율 0’을 기록하고 있는 봉중근은 ‘한국의 요한 산타나’라고 불리는 두뇌파 투수다. 신시네티 레즈를 마지막으로 미국야구 생활을 정리한 봉중근은 국내 유턴 이후 첫 해에 부진의 늪에 빠져야 했지만, 2년차인 작년부터 다시 새롭게 태어나며,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그의 장점은 ‘두뇌피칭’에 능하다는 것이다. 좀처럼 타자들의 노림수에 걸리지 않는다. 또한 신경전에도 능하다. 실제로 일본과의 순위 결정전에 선발 등판한 봉중근은 플레이볼 선언 이후 주심에게 ‘가벼운 어필’을 시작하며 선두 타자로 나온 이치로의 신경을 건드리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출신 봉중근. 그가 박찬호가 없는 공백을 충분히 메워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활약은 1라운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2라운드에서 더욱 빛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기에 더욱 돋보인다.
이 외에 대만전에서 만루 홈런을 신고한 이진영, ‘무심 타법’의 달인 김현수, 중국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윤석민, 불펜의 핵심 맴버 정현욱 등도 국가대표팀에서 발견한 ‘보물’들이다.
확실한 것은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이러한 결단이 새 영웅을 만드는 장(場)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가 1회 WBC에서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김동주가 빠진 공백을 이범호가, 박한이-박재홍이 빠진 공백을 이진영-박용택이 훌륭하게 메우며,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리기도 했다.
‘터지지 않은’ 선수들의 선전이 더 기대되는 2라운드
공교롭게도 봉중근과 김태균은 WBC 1회 대회 참가 멤버이면서도 당시에는 박찬호, 서재응, 이승엽, 최희섭 등에 밀려 ‘조연’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이들이 주연으로 나서며, 그 동안 숨겨 왔던 자신들의 재주를 마음껏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 못지않게 WBC 2라운드에서는 ‘아직 터지지 않은’ 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대만/일본전에 ‘잠깐’ 나섰지만, 자신의 재주를 모두 드러내지 못한 류현진을 포함하여 ‘권토중래’를 꿈꾸는 김광현, 올림픽에서 만점 활약을 펼친 이용규, 고영민 등이 바로 그 대상이다. 이들 중 한 명이라도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노림수에 걸려든다면 또 다른 ‘스타 탄생’이 이루어지는 장(場)이 마련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유진(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