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실제의 박태환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인해 오래 전에 병역 혜택을 받았다. 위의 가정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상상’일 뿐이다.
문제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 위의 예에서 펠프스가 주관한 대회와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다. 상상 속에서 펠프스가 주관한 시합이 국제수영연맹과는 전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상금을 걸고 주최한 ‘이벤트 전’이듯이, WBC도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국제야구연맹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주관한 ‘이벤트 전’이다.
우리나라 야구 대표팀의 선전으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드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평소 우리나라에 관심도 없던 베네수엘라와 쿠바 등 북중미 국가들이 WBC를 통해 우리나라를 새롭게 보게 됐다. 평판도 칭찬 일색이다. ‘놀랍다’, ‘대단하다’는 내용의 외국 언론의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회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WBC는 처음부터 ‘돈’을 위해 계획되었고, ‘돈’을 위해 치러지고 있으며, ‘돈’이 걸려 있는 대회다. WBC는 공신력을 지닌 국제대회가 아닌 하나의 이벤트 전이었으며, 그 이면에는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라는 주최 측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다.
선수들은 대회에 출장한 대가로 상당한 액수의 상금을 받는다. 이 대회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스포츠인’으로서 ‘스포츠의 제전’에 참가하여 기량을 뽐내는 시합이 아니다. ‘프로 선수’답게 ‘상금’을 걸고 치르는 ‘이벤트 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해서 병역 혜택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1회 대회 때도 여론을 몰아가며 4강 진출에 따른 병역 혜택이 주어졌지만, 그런 촌극이 또 다시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
나 역시도 우리나라 대표팀의 결승 진출이 너무나도 기쁘다. 우승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선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가 보기 좋고, 그들의 플레이에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넘어가서는 ‘원칙이 없는 나라’가 될 뿐이다. 어디까지나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며,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이벤트 전의 결과로 병역 혜택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넌센스다.
이번 대회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혹은 축구의 월드컵처럼 세계에서 공인받고 있는 연맹이 주최하는 대회였다면, 병역 혜택을 적극 찬성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WBC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PGA의 골프 대회 가운데는 미국과 영국이 각각의 대표를 구성해서 기량을 겨루는 대회가 있다. 본질상 WBC는 그 대회와 다르지 않다. WBC에 출장한 각 국의 대표선수들은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상금’이 걸린 대회에 출장한 ‘프로선수’들인 것이다.
차라리 해외 프로리그에서 예전의 박찬호나 박세리 정도의 기량을 뽐낸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자고 건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WBC는 그런 성격도 아니다.
굳이 이번 대회에서 병역 혜택을 주지 않더라도, 내년 말이면 모두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선수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이라는 또 다른 성과로 말이다.
열 번 다시 생각하고, 백 번 다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WBC에서 우승을 했다고 해서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말도 안된다. 맞는 건 맞는 거고, 아닌 건 아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