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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죽은 빅리거들의 사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3.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이들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것도 ‘살아 있기 때문에’ 보아야 하는 ‘안타까운 점’ 중에 하나다. 안타까운 죽음 앞에 많은 눈물을 흘리고,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빈소를 찾아가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유명을 달리한 야구선수들 앞에 끊임없는 경의를 표하는 것도 ‘야구 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들은 또한 ‘살아 있는 전설’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래서 더 많은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조 디마지오가 1999년에 85세를 끝으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전미 대륙이 들썩거렸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이제야 마릴린(마릴린 먼로)을 볼 수 있겠군”이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기며, 이 시대 마지막 순정파임을 증명해 보였다.

‘휴스턴의 아들들’, 데릴 카일/켄 캐미니티의 사망

디마지오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 천수를 다 한 야구선수 중 하나였다. 어찌 보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천수를 누리고 간, 복된 삶을 살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 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선수들도 있어 안타까움을 더 한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전미 대륙에서는 급작스러운 비보로 많은 야구팬들과 동료들이 슬픔에 잠겨야 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기둥 투수, 데릴 카일이 서른 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원정 호텔방에서 심장계통의 이상으로 돌연사한 그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90년대를 수놓았던 스타들 중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체인지업에, 존 스몰츠가 슬라이더에, 케빈 브라운이 싱커에, 히데오 노모가 포크볼에, 랜디 존슨이 패스트볼에 빼어남을 자랑했다고 한다면, ‘명품 커브’는 단연 데릴 카일의 몫이었다. 그의 커브를 볼 수없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휴스턴, 콜로라도,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12시즌 동안 133승 119패, 평균자책 4.12를 기록한 그는 살아있었다면 200승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죽음 앞에 토니 라루사 감독을 포함하여 크렉 비지오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옛 동료를 추모했다. 또 하나의 별이었던 카일은 그렇게 시즌 중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카일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이가 바로 켄 캐미니티다. 약물 사건 등으로 선수 은퇴 시점을 불운하게 보냈던 그는 죽기 직전 모습이 뉴욕 지역신문에 소개되면서 야구팬들에게 많은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캐미니티와 같은 이웃에 살았던 롭 실바는 ‘그는 우울했고 신경이 날카로웠지만, 인생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했다’며 캐미니티를 떠올렸다. 캐미니티는 평소 실바에게 역시 마약으로 같은 문제를 일으켰던 아들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실바는 그 약속을 지키기위해 노력했다. 사망을 눈앞에 두었던 지난 2004년 10월 11일, 캐미니티는 실바와 만나자고 전화를 했고, 둘은 잠시 산책하다 택시를 탔다. 캐미니티는 기사에게 '단지 드라이브를 좀 하고 싶다'고 말한 뒤 한동안 운행을 즐겼다고 한다.

실바는 ‘그의 문제는 코카인이었으며 항상 그 문제를 극복하기위해 힘겨운 자신과의 투쟁을 이어왔다’며 덧붙였다. 택시에서 내린 후 그들은 역시 서로 안면이 있던 실바의 친구 앙헬 곤잘레스의 아파트로 향했다. 곤잘레스의 숙소에서 3명은 NFL 뉴욕 제츠의 경기를 보기로 했고, 캐미니티는 방송을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로 향했다.

5분여가 지난 후 화장실에서 나온 캐미니티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가슴을 문지르며 ‘느낌이 좋지 않다’ 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걷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곤잘레스는 캐미니티를 침대에 눕히고, 실바는 급히 응급센터에 전화해 구조진이 도착했지만, 그들로부터 듣게 된 말은 사망했다는 확정선고였다. 이것이 캐미니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난 198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캐미니티는 96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해 타율 0.326, 40홈런, 130타점의 성적으로 리그 MVP에 선정됐고 95년부터 3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말년이 불운했던 그였지만, 사망한 그에게 팬들은 안타까움이 담긴 추모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것이 리그 MVP를 차지했던 영웅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였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라이들과 아덴하트

하지만 캐미니티가 사망한 이후 정확히 2년이 지난 시점에 또 다른 사망사고가 전 세계 야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뉴욕 양키스의 5선발로 짭짤한 활약을 했던 코리 라이들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캐미니티가 2004년 10월 11일에 사망한데 이어 정확히 2년 후인 2006년 10월 11일에 라이들마저 숨을 거둔 것이다.

라이들은 하늘을 좋아했다. 그래서 개인 소유의 전용기도 소유할 만큼, 비행(飛行)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날도 전용기를 타고 하늘을 날던 중 고층 아파트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바람에 사고를 당해야 했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 여섯에 당한 불운이었다.

그의 사고로 양키스는 선발 마운드 구축을 다시 해야 하는 어려움에 빠졌다. 4점대 평균자책점으로 10승 이상 거둘 수 있는 5선발 요원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팀과 가족들에게 미안함만을 남겨둔 채 그가 좋아하는 하늘에서, 조용히 눈을 감아야 했던 라이들이었다. 한때 ‘오클랜드의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기도 했던 그는 프로 통산 9년간 82승 72패, 평균자책 4.57을 기록했다.

그의 사후에도 조쉬 행콕(세인트루이스)이 음주 운전으로, 조 케네디(토론토)가 심장 마비로 2007년을 끝으로 불의의 객이 됐다. 이 외에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유망주, 닉 아덴하트(LA 에인절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선수로서 한창인 나이에 그라운드가 아닌 하늘나라로 가야 했던 그들의 기구한 운명 앞에 남은 이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런데 하늘나라로 간 야구선수들 중에는 해외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야구선수들 중에서도 최영조(전 해태), 김정수, 심재원, 이길환, 김용운(이상 전 MBC), 김상진(전 해태), 박동희(전 롯데), 박정혁(전 LG), 김영신(전 OB) 등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먼저 가신 야구 선수들과 야구계에 몸담았던 많은 선배들의 명복을 기원한다.

[유진=http://mlbspecial.net]

※ 위 포스트는 위클리 이닝(inning.co.kr)에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