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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노장의 대명사, 제시 오로스코를 아십니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2.

무릇 스포츠선수들 중에는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에 미련없이 은퇴하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자 힘 닿는데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하는 선수가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선수가 마크 맥과이어, 농구의 마이클 조던 등이 있다면,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선수가 훌리오 프랑코, 리키 핸더슨, 제시 오로스코 등일 것이다. 이 중 우리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진 인물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한때 국내에서 할아버지 선수라 불리었던 제시 오로스코(Jesse Orosco), 그 사람이다.

메이저리그를 한 번쯤 본 야구팬들은 박찬호 선수가 LA에서 주가를 올렸던 2001년 시즌에 오로스코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2003년 시즌 후 은퇴까지 오로스코, 당시 빅리거들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57년 4월 21일생. 당시 46세).

이는 당시 나이가 어렸던 라파엘 퍼칼보다 무려 두 배이상 나이가 많았다. 또한 먼저 은퇴했던 '칼 립켄 주니어'보다도 무려 세살이나 많았다. 올해로 52세. 이제는 정말 할아버지라 불리워도 괜찮을 정도다.

이 선수의 데뷔년도는 79년, 뉴욕 메츠에서 선수 생활을 가장 많이 보냈다. 주로 중간 계투, 마무리를 오가면서도 83년도에 13승을 올리며 커리어 최다승을 기록했다. 본인의 최고의 해를 보냈던 84년에는 10승 6패 31세이브를 마크했다. 데릴 스트로베리, 드와이트 구든, 키스 헤르난데스, 게리 카터등이 맹활약하던 그 당시의 메츠에서 오로스코 또한 그 일원이었다.

86년, 메츠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는 평균자책점 2.17, 8승 6패 21세이브로 역시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당시 팀 내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타율 1위 : 키스 에르난데스, .311 
홈런 1위 : 데릴 스트로베리, 26 
타점 1위 : 데릴 스트로베리, 97 
도루 1위 : 무키 윌슨, 46 
다승 1위 : 드와이트 구든, 17 
최다세이브 : 제시 오로스코, 31 
최다 출장게임(투수조) : 제시 오로스코, 60

87년까지 메츠에서 뛰다가 이듬해인 88년, 다저스로 이적했다. 그 해 역시 중간 계투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3승 2패 9세이브)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많은 공헌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로스코 역시 88년도 월드시리즈 우승맴버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는데, 당시 오로스코는 굉장히 뛰어난 중간계투였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가을 축제와의 인연은 끝이 나고 만다. 그 이후,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아메리칸 리그로 이적하였고, 클리블랜드 3년, 밀워키에서 3년을 보내면서, 그의 이름은 점점 잊혀져 갔다. 95년부터 볼티모어에서 간간이 가을 축제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미 그는 눈에 띄지 않는 불펜요원으로 전락함과 동시에 노장들의 천국인 볼티모어에서 마저 퇴출당하게 된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그의 역할은 미미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좋은 청춘 또한 흘러가버리고 만다. 88년, 마지막 전성기를 맞았던 다저스에서 그의 나이는 32세. 30대의 모든 시간은 다 흘러가고, 99년 볼티모어를 나올 때 그는 불혹하고도 3년이라는 시한부 야구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00년 세인트루이스, 2001년 겨우겨우 자리를 잡은 다저스, 2003년의 샌디에이고까지. 정말 다른 선수들 같으면 지도자의 길을 걷고, 몸마저도 성치 못하기 쉬운 나이인 샘이다.

그런데, 오직 오로스코만은 다른 왕년의 동기들의 은퇴를 모두 뒤로 하고 홀로 뛰었다. 2000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불과 6경기 출장하여 2와 1/3이닝을 던지는데 그쳤지만, 달리고 또 달렸다.

사실, 이 선수에 대한 지금의 기록은 진짜로 찾아보기 힘들다. 최다 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의 언급은 다른, 삼진이나 안타, 홈런에 비해서 극히 미미한 주목거리지만 그는 통산 평균자책점 3.16에 87승 80패 144세이브, 그리고 피안타율은 2할 2푼대밖에 안된다. 솔직이 중간 계투는 점수를 내주면서도 팽균자책점이나 피안타율 끌어내리기가 참으로 힘든 보직이다.
 
물론 제시 오로스코는, 메이저리그의 대기록을 하나 갖고 있다. 바로 역대 최다 경기 출장 기록(1,252경기)이다. 2위는 2007년에 은퇴한 마이크 스탠튼(1,178경기). 1, 2위와의 차이가 큰 만큼, 향후에도 그의 최다출장 기록을 경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데니스 에커슬리가 1,071경기 출장으로 4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 중에서 제시 오로스코는 어찌보면, 정말 힘들 수 있는 이 기록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야말로 마운드의 '철인'. 오로스코가 에커슬리의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깼던 때는 무려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9년, 볼티모어의 팬들은 모처럼 립켄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에 이은 또 하나의 신화를 축하해 주었다. 볼티모어의 팬들은 그 옛날, 이제는 부질 없어진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메츠와 다저스때의 멋진 스플리터를 보여주던 오로스코의 모습을 아직까지 잊지 않았다. 오로스코가 최다 출장 기록을 깼던 등판일 날, 관중들은 모두 '제시~'를 외치면서 박수를 외치면서 축하해주었다. 선발이 아닌 중간 계투로서 이렇게 팬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았던 선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간 계투라는 새로운 자신만의 길을 개척, 결국 자신의 길을 만들고 닦아서 성공한 케이스다' 라는 신문 기사도 이맘때쯤에 나왔었다. 이 해까지 오로스코는 65게임에 출장해서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했다.

2002 시즌에도 56 게임에 등판하여 원 포인트 릴리프로써 27 이닝, 3.0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주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던 오로스코는 이후 2003 시즌 양키스의 부름을 받기도 했지만, 얼마 안가서 다시 방출되었고, 이후 샌디애이고에 입단하면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그의 2003 시즌 성적표는 65경기 출전, 33.2 이닝, 평균자책점 7.75였다.

혹자는 "이제 정말로 은퇴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2004 시즌에도 뛸 생각으로 애리조나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야구에 대한 '미련'이 상당히 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2004년 스프링캠프에서 재기의 몸부림을 외치기 전에 깔끔하게 물러났다. 그가 2004년도에 뛰었다 해도 그의 나이 이미 40대 중반을 넘어선 47세. 나이 숫자만 놓고 보아도 대단하다는 평을 내릴 만하다.

그렇지만, 그의 기록면이나 실제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볼 때, 그는 결코 다른 투수들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단지 그의 투혼만 놓고 볼 때도 그에게 돌아와야 할 찬사는 너무도 많다고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메이저리그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오로스코 역시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들어갈 만한 자격은 기록을 봤을 때, 부족할 것 처럼 보이더라도 어느 정도 '왕년의 영웅'정도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축에는 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또 그런 자격이 있다고도 본다.

일단 최고 출장 기록에, 통산 기록중에서 9이닝당 삼진수는 약 8개, 1할대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던 적도 무려 5시즌, 25시즌동안 4점대 이상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적은 불과 5시즌이다.

올해로 135년째의 해를 맞는 메이저리그. 은퇴 직전까지도(2004 오프시즌) 자신에게 오지 않는 시선에도 아랑 곳 없이 묵묵히 오늘도 게토레이를 들이키고 아들 뻘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고 동료에게 용기를 날마다 주는 최고참으로서의 그의 일정들.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

제시 오로스코.
은퇴 당시, 데니스 에커슬리는 보스턴의 뒷문을 거의 도와주지 못한 채 쓸쓸히 은퇴했지만, 오로스코 그만큼은 과거의 활약을 생각하면서, '화려한 마지막 황혼기'를 장식해서 살아있는 신화로 야구팬들 앞에 영원히 남아주길 바란다.

// 유진(http://mlbspecial.net)

※ 본 고는 위클리 이닝(inning.co.kr)에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