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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와 호세 리마, 그 치열했던 맞대결의 추억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 5.

1999년 10월 2일 휴스턴 에스트로스의 홈구장 에스트로돔의 마운드에는 앞날이 창창한 두 명의 젊은 투수들이 팬들의 뇌리 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치열한 투수전을 펼쳤다.


이 경기 전까지 신시네티 레즈와 공동 지구 1위에 올라 있었던 휴스턴은 일찌감치 20승 고지에 오른 27살의 호세 리마를 선발 투수로 내보냈다. 20승 달성 이후 3연패에 빠져있었던 리마 개인의 입장으로 보나,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신시네티를 밀어내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야 하는 팀의 입장으로 보나 이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중요한 시합이었다.


휴스턴과 시즌의 마지막 3연전을 치르고 있던 LA 다저스가 꺼내든 선발 카드는 다름 아닌 26살의 박찬호였다. 당시 박찬호는 전반기(5승 7패 방어율 6.52)의 극심한 부진을 털어내고 후반기(8승 4패 3.96) 들어 제 컨디션을 찾으며 이날 경기 전까지 파죽지세로 7연승을 이어오던 참이었다.


경기의 중요도나 비슷한 연령대인 두 투수의 라이벌 설정 등으로 인해 경기는 전국으로 중계되었고, 두 명의 투수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멋진 투수전을 펼쳤다.


5회까지는 두 팀 모두 무득점, 승부의 추는 6회 말에 터진 크렉 비지오의 솔로 홈런으로 인해 휴스턴 쪽으로 기운다. 박찬호는 7회까지 5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결국 7.2이닝을 무실점(8탈삼진)으로 다저스 타선을 봉쇄한 리마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21승째를 챙긴 리마에게 초점이 맞춰진 경기였지만, 박찬호 역시도 전국의 팬들 앞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준 멋진 투수전이었다. 휴스턴은 이날 경기에서 패한 신시네티에게 한 경기 차로 앞서갈 수 있었고, 최종전에서도 승리해 내셔널 리그 중부지구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다저스타디움과 더불어 ‘투수들의 천국’으로 불렸던 에스트로돔 대신 쿠어스 필드에 필적할 정도로 타자에게 유리한 앤론 필드(현 미닛 메이드 파크)가 개장됨과 더불어 리마는 몰락했고, 박찬호 역시도 FA 계약을 통해 텍사스로 이적한 이후 전성기 시절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 말았다.


두 투수는 6년 후인 2005년 6월 4일에 각각 캔자스시티와 텍사스 소속으로 한 번 더 맞대결을 펼친다. 이 시합의 결과는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째를 거둔 박찬호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패배한 리마(3.2이닝 7피안타 5실점) 만큼이나 승리한 박찬호(5이닝 11피안타 6실점)도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아쉬운 경기였다. 두 투수에게서는 더 이상 6년 전의 구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세월이 조금 더 지나, 36살의 노장이 된 호세 리마가 KIA 타이거즈와 정식으로 입단 계약을 맺으며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 서게 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멕시칸 리그와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좋은 투구를 선보여 타이거즈 프런트의 눈도장을 받았던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20승을 거둔 경력이 있는 리마의 영입에 많은 한국 야구 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35살의 박찬호는 아직도 꿈을 쫒아 전진하고 있다. 친정팀인 다저스의 초청선수 신분으로 3월의 스프링캠프를 준비하는 박찬호도 쉽지 않은 앞으로의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기대 받는 젊은 에이스로 주목받던 두 명의 투수 호세 리마와 박찬호. 지금은 세월이 지나 전성기 시절의 위력을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히 간직한 이들. 이제는 베테랑이 되어버린 리마와 박찬호가 자신들 앞에 놓인 새로운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