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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찬밥신세인 1이닝 마무리(리치 고시지 vs 리 스미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 10.


리치 고시지가 9번째 도전 만에 결국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미국야구기자협회(BWAA)로부터 85.8%의 득표율을 얻은 고시지는 25명의 후보자들 중에 유일하게 75% 이상을 기록하며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다. 이로써 지난해 71.2%로 아깝게 고배를 마셨던 고시지는 역대 구원 투수 출신으로는 5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비운의 투수 버트 블라일레븐은 61.9%로 다시 한 번 고배를 마셨으며, 23.6%의 득표를 얻은 마크 맥과이어 역시도 지난해(23.5%)에 비해 나아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이들 외에도 또 한명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바로 지난해 트레버 호프만(524세이브)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 보유자였던 리 스미스(통산 478세이브)다. 6번째 도전이었던 스미스는 43.3%의 지지율을 얻어 입성 기준치인 75%에 한참 밑돌았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단 한번도 50% 이상의 지지를 얻은 적이 없다.


물론 리치 고시지는 명예의 전당에 오를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고시지는 23년간의 선수 생활동안 통산 1002경기에 등판해 3.01의 방어율과 124승 107패 310세이브의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이미 명예의 전당에 오른 데니스 에커슬리(197승 390세이브 3.50), 롤리 핑거스(114승 341세이브 2.90)와 함께 통산 100승-30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한 3명의 선수 중 한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미스 역시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18년의 선수생활 동안 1022경기에 등판한 스미스는 71승 92패 478세이브 3.03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얼핏 보면 스미스의 기록이 고시지나 핑거스에 비해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지나 핑거스는 되고 스미스는 안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스미스는 그들과 달리 1이닝 마무리 시대의 투수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구원투수로서의 등판만 따져보자면 고시지는 965경기에서 1556이닝을 던졌지만, 1017경기를 등판한 스미스가 소화한 이닝은 1252이닝에 불과하다. 경기당 고시지는 1.61이닝을 스미스는 1.23이닝을 던졌다. 이 차이가 두 선수에 대한 평가를 결정적으로 엇갈리게 만드는 이유다.


메이저리그에서 본격적인 1이닝 마무리 시대를 개척한 사람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루사 감독이다. 라루사 감독은 이미 선발 투수로서 151승을 거두고 있던 데니스 에커슬리를 팀의 마무리로 돌렸고, 1988년부터 에커슬리는 본격적인 1이닝 마무리로서 성공시대를 열어갔다.


리 스미스도 처음으로 마무리 투수가 되었던 80년대 초반에는 매년 100이닝 이상을 투구했으나, 차츰 줄어들더니 80년대 후반부터 1이닝 클로저로서의 입지를 굳혀갔다. 그가 3년 연속 40세이브 이상을 거두며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도 1991년부터의 3년 동안이었다. 바로 이 점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기자들에게 마이너스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7회든 8회든 가리지 않고 팀의 위기상황이 되면 마운드에 등판해 그 경기 끝까지 팀의 승리를 지켰던 이전 세대 투수들과 비교해, 세이브 상황이 되는 9회에만 등판해 서너명의 타자를 처리하고 세이브를 챙긴 선수들의 평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 기자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점은 현재의 구원 투수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1이닝 마무리 시대가 완전하게 정착된 후 데뷔해 경기당 평균 1.07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치고 있는 트레버 호프만도 이러한 점 때문에 일부 팬과 전문가들에게 평가 절하되고 있다. 마리아노 리베라(1.16)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로 각각 41살과 39살이 된 호프만과 리베라 역시도 은퇴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스미스의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는 향후 이들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을 것인지, 만약 오르게 된다면 몇 번의 도전 만에 오르게 될 것인지도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미스에게도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시지도 처음 5년간은 40%대 초반의 지지율에 머물렀다. 6년째에 접어들어서야 겨우 55.2%의 득표율을 기록하더니 64.6%와 지난해 71.2%를 거쳐 이번에 드디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앞으로 9번의 기회가 더 있는 스미스에게도 충분한 희망이 있다.


10년 이상이나 한 부문의 최고 기록 보유자로 그 자리를 지켰던 리 스미스, 앞으로 그에게도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기쁨이 허락될 수 있을까. 스미스의 입성 여부는 매년 초초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본인뿐만 아니라, 현재 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모든 마무리 투수들의 공통 관심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