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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타격왕 밀어주기, 한국 야구계에 테드 윌리암스는 없었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9. 9. 26.

25일 롯데와 LG의 경기에서 벌어진 ‘타격왕 밀어주기’ 사건 때문에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박용택과 홍성흔은 시즌 막판까지 수준 높은 타율 1위 경쟁을 펼치며 팬들을 흥분시켰지만, 마지막 맞대결에서 LG가 보여준 ‘만행’은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롯데를 비롯한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홍성흔에게 거의 고의사구나 다름없는 4개의 볼넷을 연달아 내준 김재박 감독과 LG의 투수진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고 있다. 타율이 역전 되자마자 보란 듯이 최근 2경기에 모두 출장하지 않고 있으며, 26일 경기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알 수 없는 박용택도 마찬가지다.

LG팬들은 “다른 팀은 그런 상황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롯데라고 달랐을 것 같으냐”라고 반론을 펼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결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의 감독 출신인 로이스터 감독은 상대팀의 타이틀 경쟁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낸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5일 경기에서 홍성흔이 타석에 들어서면 롯데와 LG, 양 쪽 관중석에서는 모두 야유가 쏟아졌다. 롯데 팬들은 홍성흔을 계속해서 볼넷으로 거르는 LG 벤치를 향해서, 그리고 LG 팬들은 홍성흔이 안타 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야유를 쏟아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였다면 양 쪽의 팬들이 한 마음으로 LG 코칭스태프를 향해 야유를 쏟아냈을 것이다. 그것이 메이저리그다. 그 곳에서는 아무리 홈팬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응원하는 팀이 ‘부끄러운 짓’을 하면 더욱 호되게 꾸짖고 더욱 심한 야유를 퍼붓는다. 상대팀의 타이틀 경쟁 타자에게 고의사구나 지시하는 감독을 옹호하는 팬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이 야구 본고장이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다.

1941년 시즌 시지막 날의 더블헤더를 앞두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벤치에서는 감독과 선수가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조 크로닌 감독과 논쟁을 벌이고 있던 주인공은 전날까지 .3996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테드 윌리암스였다.

테드의 타율은 ‘모’ 단위에서의 반올림으로 4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이에 크로닌 감독은 테드의 더블헤더의 출장을 만류했다. 하지만 ‘자존심 덩어리’인 테드는 끝내 감독의 권유를 뿌리치고 경기에 출장, 2경기에 모두 나서 8타수 6안타를 때려내며 타율을 .406으로 끌어 올리고 당당한 4할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이 그들의 역사상 ‘마지막 4할 타율’의 대기록을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하게 느낄 수 있는 이유다. 과연 훗날 팬들이 박용택의 2009년 타율 1위의 기록을 마냥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1984년 이만수의 ‘타격 3관왕’이 홍문종의 고의 사구로 인해 그 빛을 잃어버린 것처럼, 역대 4번째로 높은 타율로 1위에 오른 박용택의 기록도 매년 호사가들에 의해 회자되며 비웃음거리로 남을 것이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과거에는 타이틀 밀어주기가 있었다. 지금부터 1세기 전인 1910년 아메리칸리그 타율 부문 경쟁은 전설적인 타격왕들인 타이 콥(디트로이트)과 냅 라조이(클리블랜드)의 경쟁이었다. 최종일을 앞둔 상황에서 .383의 콥이 .376의 라조이에 비교적 큰 차이로 앞서 있었기에 역전의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와 시즌 마지막 날 더블헤더를 치를 예정이었던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볼티모어)의 잭 오코너 감독이 콥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오코너 감독은 내야수들을 모두 외야 선상에서 깊숙이 수비하도록 지시를 했고, 라조이는 그것을 이용해 6개의 번트 안타를 비롯한 8타수 8안타를 기록했다.

오코너 감독의 도움으로 라조이는 타율을 .384까지 끌어 올렸지만, 끝내는 콥에게 7모 차이로 뒤지며 타격왕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그 후로 7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과거의 기록을 정리하던 과정에서 콥의 기록에 안타 2개가 잘못 추가된 것이 밝혀지면서 그제서야 라조이는 그 해 타율 1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라조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부끄러운 기록’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그의 뒤를 따라 다녔다. 기록의 순수성도 그렇지만, 라조이가 끼어듦으로 인해 당시 9년 연속 타격왕(1907~15년)에 올랐던 콥의 기록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초창기에 그러한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면서 그들만의 룰을 만들어나갔고,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자산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억지스러운 타이틀 밀어주기는 홈팬들을 경기장에서 떠나게 만드는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2009년 한국 프로야구에 70년 전의 테드 윌리암스같은 선수는 없었다. 감독의 수준은 100년 전의 수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홍문종의 고의사구 사건이 일어난 지 2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 야구에는 “비난은 짧고, 기록은 영원하다”는 말이 격언처럼 통용되는 모양이다.

역대 최고의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 뭐하는가. KBO의 행정은 항상 오락가락 하기만 하고,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심판의 오심 문제는 불신의 벽을 쌓았다. 또한 일부 관중들의 추태로 인한 문제도 시즌 내내 끊이질 않았고, 특정 팀을 둘러싼 팬들 사이에 갈등의 골도 깊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준 타이틀 밀어주기라는 추태는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말았다.

현장 감독과 선수들의 의식수준이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똑같다면 그것은 크나큰 문제다. 과연 한국 프로야구는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축제가 되어야 할 한 시즌의 마무리를 이처럼 찜찜한 기분으로 맞이하게 한 장본인들을 팬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사진=LG 트윈스]

// 카이져 김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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