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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야구천재’ 이종범의 화려한 부활, 그리고 오심...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0. 17.

주자 없을 때는 3할을 치지만 주자만 나가면 2할3푼으로 타율이 뚝 떨어지는 영양가 없는 타자. 6개의 홈런은 모두 솔로 홈런이고, 득점권 타율도 고작 .228에 불과한 40세 노장. 클러치 상황(7회 이후 동점 혹은 역전 주자가 나갔을 때)에서도 68타수 16안타(.235)에 그친 시즌 타율 .273의 그저 그런 타자.

그의 이름값을 감안하지 않고 40세의 노장인 이종범의 올 시즌 성적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위와 같습니다. 정신적인 기여도는 높을지 몰라도, 실제적인 타격의 측면에서 이종범의 팀 기여도는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었죠.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여전히 탁월했지만, 찬스를 해결하는 능력만큼은 평균 이하였습니다. 번번이 찬스를 무산시키기 일쑤였죠.

하지만 그런 이종범이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두 번의 결정적인 적시타를 때려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이름값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해태 왕조의 마지막 적통인 그의 존재감을 절대로 쉽게 봐선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증명해낸 것이죠.

한 때 타이거즈 팬만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야구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야구천재’가 12년 만에 한국 시리즈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그 장면은 더 없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종범을 6번 타순에 배치한 조범현 감독의 작전은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습니다. 오래 쉬었기 때문인지 타자들의 전체적인 컨디션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참을성’을 무기로 많은 볼넷을 얻어 찬스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찬스의 해결사는 바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었습니다.

1-2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의 6회 2타점 역전 적시타, 그리고 3-3의 동점이던 8회의 결승타까지.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야구팬들은 일순간 12년 전의 추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조범현 감독이 이 점은 알고 있었을까요?


올 시즌 이종범은 6번으로 출장한 8경기에서 고작 29타수 5안타, 타율 .172의 매우 빈약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타점은 하나도 없었고, 득점도 고작 하나. 올해 1번부터 9번까지 다양한 타순을 모두 소화한 이종범이지만, 유일하게 .265이하의 타율을 기록한 타순이 바로 6번이었습니다. 게다가 올 시즌 SK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의 타율도 고작 2할(55타수 11안타)에 불과했죠.

이러한 데이터만 놓고 본다면 조범현 감독이 이종범을 6번 타순에 배치한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무얼 믿고 23홈런의 나지완을 스타팅에서 제외하고 이종범을 6번에 넣은 것일까요? 조범현 감독의 ‘감’과 이종범을 향한 ‘신뢰’라는 말 외에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SK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올 시즌 최악의 득점권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6번 타자 이종범은 두 개의 결정적인 적시타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야구의 묘미겠지요. ‘야구천재’라는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종범다운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죠. 몇 년 동안 비교적 조용히 자신의 위치만 지키던 선수가 큰 무대에 복귀하자마자 이처럼 진한 존재감을 나타내다니 정말로 굉장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그는 ‘스타’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것을 갖추고 있는 선수입니다.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과거 그의 전성기 시절부터 시작해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을 비추고 있을 때면, 이종범은 평소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존재를 유감없이 뽐내곤 했습니다. 전성기는 단 5~6년에 불과했음에도, 그의 별명에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그나저나 1차전 경기에서 심판의 명백한 오심이라는 옥에 티가 또 다시 발생하고 말았네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종범의 위장스퀴즈를 볼로 판정한 것일까요? 더더욱 포스트시즌은 6심제이죠. 그리고 당시 이종범의 스퀴즈 동작은 주심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의 심판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봤을 텐데 말이죠.

결과적으로 1-1이 되었어야 할 카운트가 2볼이 되었고, 이종범은 1-2가 된 후 4구째를 받아쳐서 결승타점을 기록했습니다. 2구째가 제대로 스트라이크로 판정되어 2-1 상황이 되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많은 전문가와 해설자들은 우리나라 심판의 수준이 메이저리그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고들 말합니다.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수준에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메이저리그에서도 현재 포스트시즌 중에 행해진 몇 개의 오심 덕분에 매우 시끄러운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네요.


하필이면 이러한 명승부와 슈퍼스타의 부활 경기에 오심이 끼어들어 그 의미를 퇴색시켜버리는지 짜증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 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2-1이었더라도 이종범이 쳤을 거라고 믿어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차라리 그게 속 편하니까요. 하지만 찜찜한 기분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군요.


[사진=KIA 타이거즈]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