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의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들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그 구단의 행동에 의해 팬들의 수준까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응원하는 구단이 대내외적으로 자랑스러운 일을 했을 경우에는 팬들도 뿌듯함을 느끼지만, 반대로 옳지 못한 일을 했을 때는 팬들 역시 부끄러움을 함께 느낍니다.
그러니 당연히 팬들로서는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만큼은 좋은 이미지의 구단이 되길 바라게 됩니다. 어디서든 “내가 OOO의 팬이다”라고 자신 있게 밝힐 수 있는 그런 자랑스러운 구단이 되어주길 바라는 거죠.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오프시즌 중에도 몇몇 구단의 프런트들이 그런 달갑지 못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네요.
우승 직후 코칭스태프 선임 및 선수단과의 재계약 과정에서 수많은 잡음을 일으킨 KIA, 지난해 장원삼 파동 때는 앞장서서 반대하며 생난리를 치더니 결국 뒷거래라도 하는 냥 절차를 무시하고 돈을 찔러주고 선수들을 빼내오려다 걸려서 개망신을 당한 LG와 두산. 그리고 이번에 재계약 문제로 이대호에게 상처를 주고, 연봉조정까지 간 이정훈에게는 괘씸죄를 적용해 전지훈련과 관련해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준 롯데가 그랬습니다.
특히 롯데의 경우는 툭 하면 수백만 부산-경남의 야구팬들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을 일삼아 팬들의 뚜껑을 열리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가장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팬들의 마음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구단이기도 합니다.
팀 내 고과 1위의 선수에게 연봉 삭감을 요구하다가 언론과 팬들에게 뭇매를 맞았죠. 결국 이대호의 올 시즌 연봉은 3억90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3000만원이 올랐지만, 끝내 4억원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쪼잔함을 만방에 알렸습니다. 팀 내 최고 선수의 연봉은 결국 구단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걸까요?
게다가 이번에 전지훈련과 관련해 이정훈에게 취한 롯데의 행동거지는 팬들을 너무나도 실망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단과의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연봉조정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전지훈련 멤버에서 제외하는 추태를 보인 것도 그렇고, 합류를 허락하면서도 그 내용을 출발 당일 본인에게 통보한 것도 말도 안 되는 짓이죠. 우선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전 이정훈의 연봉에 관해서는 오히려 구단이 제시한 7200만원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난해 3600만원의 연봉을 받았던 이정훈은 처음에 구단이 제시한 6600만원에 반발해 8000만원을 주장하며 KBO에 연봉조정 신청을 냈지요. 그 후 롯데는 7200만원으로 금액을 올렸고, 결국 이정훈은 연봉조정에서 패했습니다.
지난해 이정훈은 57경기에 등판해 74⅓이닝을 소화하며 1승 3패 9홀드 8세이브 평균자책 3.03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훌륭한 성적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닝수보다 더 많은 77개의 안타(피안타율 .283)를 허용했고, WHIP(이닝당 안타+볼넷 허용율)도 1.41로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정훈과 더불어 롯데의 불펜 에이스 역할을 양분했던 임경완의 WHIP은 1.17입니다.
평균자책점만 놓고 보면 이정훈의 피칭은 매우 훌륭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앞선 투수가 남겨 놓은 40명의 주자 가운데 무려 18명(45%)이 홈을 밟도록 허락했지요. 8개 구단 전체 평균이 30%안팎이고, 임경완이 39명의 주자 가운데 고작 6명(15.4%)의 득점만 허용했다는 점과 비교할 때 이 부분은 심각한 마이너스 요인이 됩니다. 자신의 평균자책점은 낮을지 몰라도, 팀 전체의 실점을 막지는 못했다는 것이죠. 위기 상황에 등판하는 불펜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롯데도 그런 점을 감안하여 처음에 이정훈에게 6600만원을 제시했을 겁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100% 인상된 7200만원이라면 지난해 이정훈의 활약상으로 비추어봐서 결코 적은 인상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전에 이정훈의 연봉이 큰 폭으로 삭감된 적이 있으며, 올해 만33세가 되는 그의 적지 않은 나이가 안타깝긴 하지만 ‘동정’으로 연봉을 많이 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연봉조정 신청을 불사한 이정훈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이정훈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롯데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단순히 ‘부자 구단이 고작 800만원이 아까워서 선수의 기를 죽이냐’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단, 이정훈의 전지훈련 참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연봉조정 신청을 내는 것은 엄연한 선수의 권리입니다. 서로간의 입장이 다르다보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것인데, 그걸 두고 괘씸하다며 당초 전지훈련 멤버에서 제외한 것은 코미디나 다름없는 치기 어린 행동이었죠. 엄마가 사탕 안 사준다고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떼를 쓰는 어린 아이도 아니고 그게 무슨 짓인지...
선수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마치 일반 회사에서 월차 꼬박꼬박 쓴다고 인사고과를 깎는 것과 마찬가지죠. 만약 이정훈이 이대호급의 슈퍼스타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대우했을까요?
이정훈은 25일 오후 8시에 사이판으로 출국해 전지훈련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그 출국 통보를 받은 것이 당일 오후 1시경이었다죠. 사직구장에서 참가 통보를 받은 후 4시에 김해공항을 통해 인천으로 출발, 그리고 8시에 인천에서 사이판으로 출국. 이런 루트를 통해 이정훈은 가까스로 전지훈련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격이죠.
연봉조정 결과는 21일에 나왔고, 구단과의 계약은 22일에 완료되었습니다. 그 후 이틀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아무 말이 없던 롯데가 부랴부랴 이정훈의 전훈 참가를 허락한 배경에는 모금운동에 돌입한 팬들의 강한 반발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팬들이 일방적으로 이정훈의 편에 서자 당황했던 것이 아닐까요?
롯데는 과거 박정태를 비롯한 프렌차이즈 스타의 트레이드를 시도하다 팬들에게 완전히 외면당한 기억이 있는 구단입니다. 두 차례의 정수근 관련 사고에서 보여준 그들의 ‘발 빼기식 날치기 처리’도 보기 흉했지요. 그런데도 그들의 어린아이 같은 일 처리 과정은 여전히 나아지지가 않는군요.
‘좀 더 선진화된 구단’은 바로 ‘좀 더 상식이 통하는 구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나라의 8개 구단은 이토록 상식이 통하지 않는 팀들이 많은 걸까요? 선수와 구단의 관계는 ‘대결구도’가 아니라 ‘상생관계’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팬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좀 알아줬으면 싶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롯데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