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9년째를 맞이하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만 36세 이상의 선수가 규정 타석을 채운 것은 총 29번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외국인 선수의 기록을 제외하면 21번으로 줄어듭니다. 그 기록에 한 번이라도 발을 디딘 선수는 모두 총 14명, 이처럼 36세 이상의 나이로는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여 규정 타석을 채운다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3할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고작 4명에 불과합니다. ‘양신’ 양준혁이 2번(06,07) 기록했고, 프로원년의 백인천(MBC)과 2007년의 최동수(LG), 2008년의 전준호(히어로즈)가 한 번씩 ‘36세 이상 3할 타자’ 반열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천재라 불리는 이종범조차 36세가 된 이후 4시즌 동안 기록한 최고 타율은 .273에 불과합니다.
부상을 당하지 않고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3할 타율을 기록한다는 것. 이것이 만 36세가 넘은 선수들에게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지를 위의 기록들은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
KIA 타이거즈의 이종범
그리고, LG 트윈스의 이병규
이들은 각 팀을 대표하는 프렌차이즈 선수이자 셋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급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이미 선수로서의 황혼기를 바라보는 노장이라는 공통점도 있지요. 69년생인 양준혁은 올해로 만 41세, 이종범은 70년생이고 가장 어린 74년생 이병규도 올해로 만 36세가 됩니다.
양준혁은 올해 팀 후배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 사자 3인방’이라 불리던 박석민, 최형우, 채태인이 훌륭하게 성장하면서 그들과 포지션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지요. 아직 후보로 밀리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최형우-채태인과 함께 출장시간을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종범은 올 시즌 조금은 ‘특별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지난해까지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통산 3할 타율이 깨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지요. 작년까지 이종범은 정확히 .2998의 타율로 반올림한 3할 타율을 기록 중이었습니다. 올해 3할 이상 치지 않는 한 그의 3할 타율은 깨질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이야 모두가 이종범의 위대함을 기억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3~40년 후에 기록으로 이종범을 만나볼 후대의 팬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병규는 일본에서의 실패를 뒤로하고 4년 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연봉도 5억원이나 받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가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몸값에 걸맞는 활약을 해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같은 처지였던 이종범은 국내로 돌아왔을 때 만 31세의 한창나이였지만 이병규는 36세, 그가 사상 5번째 ‘36세 이상 3할 타자’가 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의문입니다.
팬으로서 저러한 선수가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수들의 몰락을 지켜보거나 쓸쓸히 은퇴하는 뒷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때론 서글픈 일이지요. 지난 겨울만 하더라도 송진우와 전준호, 김동수, 정민철 등이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위의 세 명이 그 다음 차례가 되지 말란 법이 없기에 지켜보는 팬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더욱 큽니다.
저도 한 때는 젊고 어린 선수들을 좋아했습니다. 메이저리그를 접한 이후로는 ‘유망주’라는 것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나이를 먹고 베테랑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고 지켜보던 저 역시도 세월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로는 조금 달라지더군요.
“나이와 명성, 그리고 과거의 업적과 관계없이 제아무리 베테랑이라 하더라도 실력 없고 성적 나쁘면 연봉을 삭감하고 주전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나이 많은 노장 선수들이 좀 더 잘해주길 바라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입니다. 예전에는 어린 선수들이 실력으로 선배들을 제치고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면, 지금은 그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는 굳건한 선배들의 모습이 더욱 멋있게 느껴집니다.
양준혁과 이종범은 냉정하게 봤을 때 팀의 제 10번 타자입니다. 주전으로 출장하는 회수도 많지만 성적과 가능성만을 놓고 최상의 베스트 멤버를 구성한다면 베스트 나인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입니다. 이병규 역시 지금은 출장시간을 보장받고 있지만, 팀 내의 쟁쟁한 외야 요원들을 놓고 봤을 때 언제든 ‘제4의 외야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셋 모두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잘하는 모습을 더욱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준혁이 당당히 3할 타율과 20개 이상의 홈런포를 가동하기를, 이종범이 통산 3할 타율을 지켜내며 30개 이상의 도루를 달성해주길, 이병규가 3할 타율과 더불어 두 자릿수 홈런-도루를 기록하게 되길 내심 기대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가 조금 놀라곤 합니다.
이들 3명을 비롯한 8개 구단의 모든 베테랑 선수들이 선전하는 올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이상,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30줄에 접어들어 노총각이 되어가고 있는 한 청년의 신세한탄이었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