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은 각 팀이 유독 외국인 선수로 투수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타자는 롯데의 가르시아아 넥센의 클락 뿐, 나머지 16명은 모두 투수입니다. 그게 다 작년 KIA의 로페즈-구톰슨 콤비의 활약에 고무된 각 팀들이 투수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투수들을 대거 영입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잘하고 있는 선수들만큼이나 고전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나란히 3승을 거두고 있는 히메네스(두산)와 카도쿠라(SK)의 활약이 돋보인다면, 3패를 기록 중인 사도스키(롯데)와 데폴라(한화)도 있죠. 특히 데폴라의 경우는 마무리투수이기 때문에 그 부진이 더욱 크게 와 닿습니다.
하지만 데폴라의 이러한 부진이 본인만의 책임일까요? 경기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데폴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구위를 지녔습니다. 공도 빠르고 변화구의 위력도 나쁘지 않죠. 마무리 투수로서 적합한 투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데폴라는 지금까지 7경기에 등판해 1세이브 3패 평균자책점 5.91로 매우 부진합니다. 첫 3번의 등판에서는 3이닝을 1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완벽한 피칭을 과시했지만, 이후의 4경기에서는 7⅔이닝 동안 7실점하며 3패만 기록했습니다.
과연 이러한 데폴라의 부진이 본인 스스로의 책임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데폴라가 부진한 책임의 90% 이상은 한대화 감독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초보 감독인 한대화 감독이 선수 기용에 있어 명백한 실수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위의 표는 데폴라의 등판 일지 입니다. 3월 28일에 첫 선을 보인 데폴라는 탈삼진 2개를 잡는 위력투를 과시하며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았습니다. 비로 인해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인 4월 2일 경기와 3일 경기에서는 이틀 연속 등판하며 좋은 피칭을 선보였지요.
문제는 4일입니다. 데폴라는 이미 이틀 연속 등판한 상황입니다. 투수구는 합쳐서 26개 밖에 되지 않지만, 불펜에서의 연습 투구와 경기에 출장하는 긴장감 등을 고려하면 체력적인 부담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 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상황이니 투구수를 20개 미만으로 조절해 9회의 1이닝 정도를 던지게 하는 것 정도까지는 괜찮겠지요. 다음날이 휴식일인 월요일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한대화 감독은 선발 류현진이 7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자 곧바로 데폴라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1-1의 동점 상황에서 마무리를 등판시킨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데, 더군다나 이틀 연투한 투수를 8회부터 올리다니요.
결국 데폴라는 8회 1점을 내주고 맙니다. 여기서의 1실점은 데폴라의 책임입니다. 경기 분위기와 자신을 향한 기대치를 감안하면 어떻게든 막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대화 감독은 또 한 번의 무리수를 둡니다. 9회까지 데폴라를 던지게 만든 것이지요. 결국 데폴라는 2이닝 동안 무려 42구를 던지게 됩니다. 3일 연투에 총 투구수 68개, 이건 선수에 대한 명백한 ‘혹사’입니다.
한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데폴라 기용은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데폴라는 8일 두산과의 원정경기에서 4-3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등판해 1이닝 동안 2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고 맙니다. 3일의 휴식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데폴라에게도 아쉬움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날도 데폴라는 8회에 등판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8회를 실점 없이 막았다면, 혹은 원정이 아니라 홈경기여서 9회 수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데폴라는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겠지요.
그렇게 8일 경기에서 21구를 던진 데폴라는 다음날 롯데 전에서 14-12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 다시 한번 8회에 마운드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2⅓이닝 동안 무려 53개의 공을 던지고 내려가죠. 8회 등판하자마자 2실점하며 동점을 허용한 건 분명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러한 상식을 벗어난 기용을 계속하는 한대화 감독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이틀 동안 74개의 공을 던진 데폴라를 한 감독은 하루 휴식 후 11일 경기에서 또 다시 50구나 던지게 만듭니다. 9-5로 이기고 있던 8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한대화 감독은 아니나 다를까 데폴라를 마운드에 올리죠. 이틀 전에 연투로 74구를 던진 투수의 어깨가 정상일 리가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데폴라가 앞선 투수가 내보낸 주자를 포함해 4실점 한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잘 던지면 그게 이상한 거죠.
그렇게 동점이 되고 연장전에 돌입했는데도 한대화 감독은 데폴라를 그대로 마운드에 둡니다. 결국 10회말 만루 상황에서 홍성흔에게 끝내기 볼넷을 내주며 데폴라는 3패째를 기록하게 됩니다. 마침내 제구조차 되지 않는 한계상황에 봉착한 것이죠. 패전을 기록하긴 했지만, 그 누구도 데폴라를 비난할 순 없을 겁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한대화 감독의 구시대적인 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2이닝 마무리의 운용, 전형적인 8~90년대 스타일이죠. 지금은 이미 통하지 않는 방식이며, 그러한 마무리 투수의 운용은 선수 혹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외국인 선수니까 한 해 잘 쓰고 버릴 요량인 걸까요? 그 선수의 어깨가 망가지건 말건?
만약 데폴라를 2이닝 마무리로 운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점을 데폴라 본인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설명을 해줘야만 합니다. 이러한 투수 운용은 데폴라가 가진 야구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감독의 기용 방식을 가장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데폴라 본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2이닝 마무리로 기용할 생각이라면 연투는 시켜선 안되겠지요. 데폴라는 8일부터 11일까지의 나흘 동안 무려 124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선발투수도 그 정도 던지면 이후 5일은 쉬게 해줍니다. 저런 운용은 한대화 감독의 자질을 의심해볼 수 있게 만드는 대목이지요.
어쩌면 한대화 감독은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SK의 김성근 감독은 팀 투수들을 이런 식으로 운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투수 운용이 제대로 먹히면서 2007년 이후 4년째 SK는 정상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투수 운용이 가능하기에 김성근 감독에게 ‘야신’이란 칭호가 붙었다는 사실은 까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고효준은 2일과 3일 경기에서 연투하며 총 44구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틀을 쉰 후 6일 경기에 선발 등판해 91구를 던졌죠. 엄정욱은 4일 경기에서 26구, 이틀 쉬고 7일 경기에서는 선발 등판해 69구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3일 휴식 후인 11일 경기에 또 다시 선발 등판해 86구를 던졌습니다.
단연 압권인 것은 정우람이죠. SK가 치른 12경기 중 9경기에 등판했고, 어지간한 선발투수 뺨치는 13이닝을 소화했습니다. 하지만 실점은 단 2점, 평균자책 1.38을 마크하고 있습니다. 8일 19구, 9일 15구, 10일 35구, 이렇게 3일 연투도 곧잘 해내는 편이죠. 물론 10일 경기에서는 1실점 했지만요.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이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식을 벗어난 투수 운용’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김성근 감독이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신기하게도 그러한 투수 운용을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대화 감독이 흉내를 내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투수의 어깨가 찢어질 수도 있습니다. 데폴라가 돈 받고 한국에서 뛰는 용병이라지만, 최소한의 지킬 것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식의 투수 운용은 감독에게도, 팀에게도, 선수에게도 해가 될 뿐이니까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한화 이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