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롯데가 홍성흔 대신 정성훈을 영입했었다면?

by 카이져 김홍석 2010. 4. 25.

롯데 자이언츠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수비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수비가 불안한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고착화된 포지션에 있습니다. 수비 포지션이 유동적이지 못하고 빼도 박도 못하게 고정화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홍성흔의 영입입니다.

 

홍성흔이 뭔가를 잘못해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처음부터 그의 영입 자체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뿐이죠.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야구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지명타자의 특정 선수 고정화이기 때문입니다.

 

지명타자는 실로 그 활용방법이 다양한 특수 보직(?)입니다. 수비에 문제가 있는 선수를 지명타자로 기용할 수도 있고, 가벼운 부상으로 수비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선수들을 일시적으로 기용할 수도 있지요. 특히 2~3개의 포지션을 4~5명의 선수가 경합하고 있다면, 최근의 컨디션에 따라 돌아가며 기용할 때도 지명타자 자리를 돌아가며 써먹을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바로 이 지명타자 자리를 가장 잘 활용한 팀이 바로 삼성과 SK. 삼성은 작년에 양준혁-진갑용-현재윤은 지명타자와 포수 자리에 돌아가며 기용하는 변칙기용으로 꽤나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올해는 양준혁과 최형우 등을 그런 식으로 기용하고 있지요. SK 역시 김재현과 이호준을 중심으로 매 경기마다 다른 라인업을 선보일 수 있도록 지명타자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실제로 작년과 올해, 지명타자 자리가 단 한 명에게 고정된 팀은 롯데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레 포지션의 고착화를 가져오게 되지요. 지명타자 자리에 여러 명의 선수를 돌아가며 기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수비 보완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성흔이 항상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 인해 로이스터 감독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모든 선수는 수비 포지션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지명타자로 주로 출장한다 하더라도 유사시에는 그라운드로 나가 수비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수비력이 떨어지는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롯데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홍성흔이 다른 포지션에서의 수비를 할 수 없는 이상, 더블 스위치를 비롯해 지명타자를 활용한 모든 작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지요. 쉽게 말해 팀으로서의 운용의 묘 100% 살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롯데는 올 시즌 박종윤이라는 좋은 선수를 키워냈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지요. 박종윤은 1루수니까요. 그를 기용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이대호가 3루를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명타자 자리가 비었거나, 유동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대호를 지명타자로 기용하는 방식으로 간단히 해결이 되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이대로라면 김민성이 성장한다던가 해서 3루수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때는 박종윤이 주전 라인업에서 빠져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 것입니다.

 

김주찬은 8개 구단의 중견수 가운데 단연 최악의 수비력을 지닌 선수입니다. 사실 좌익수로 출장한다 하더라도 그다지 믿음이 가는 선수는 아니지요. 좌익수 손아섭은 그라운드에서 수비를 한다는 것 자체로 재앙이나 다름 없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팀의 1,2번 타자로서 롯데 타선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들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둘 중 최근 컨디션이 좋은 선수는 좌익수로, 나머지 한 명은 지명타자로 기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홍성흔이 그 자리를 항상 차지하고 있는 한, 둘은 무조건 그라운드에 나와 있어야 합니다. 그래가지고야 타격에서 얻는 것 이상으로 수비에서 잃는 것이 많아지지요.

 

재작년 겨울, 롯데가 홍성흔을 영입했을 때 꽤나 많은 팬들은 롯데 프런트의 결정에 반발했습니다. 사실 야구를 좀 볼 줄 안다는 팬들이 원한 것은 홍성흔이 아니라 좋은 3루 수비가 가능한 정성훈이었으니까요.

 

그때 홍성흔이 아닌 정성훈을 롯데가 잡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지금 현재 롯데의 3루는 붙박이로 정성훈의 차지가 되어 있겠지요. 그랬다면 3루 수비가 불안하다는 말도 나오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이대호는 붙박이 1루수로서 수비 부담을 덜어버리고 타격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롯데의 내야수비는 문제가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이대호는 1루수와 지명타자를 번갈아가며 출장했을 테고, 김주찬 역시 좌익수-1루수-지명타자 등 다양하게 기용되었을 겁니다. 손아섭(-지명)과 박종윤(1-지명)도 마찬가지였겠지요. 3개의 포지션을 4명의 선수가 돌아가며 기용되는 것입니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졌다거나 하면 이대호가 3루로 가고, 김주찬이 중견수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요.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도 그런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선수 기용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한 작전구사가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멀티 포지셔닝이 가능한 이런 유동성만 갖출 수 있었더라도, 타격에서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수비 안정을 위해 중견수는 이승화로 고정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홍성흔은 작년과 올해 매우 뛰어난 타격을 보여주며 롯데 팬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가 타격으로 인해 얻는 것 이상의 손해가 포지션의 고착화로 인해 생기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홍성흔은 분명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이지만, 롯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정성훈은 홍성흔에 비해 훨씬 타격 성적이 떨어지지만, 롯데라는 팀 내에서의 활용도와 그로 인한 파생효과는 홍성흔보다 더욱 긍정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홍성흔이 포수만 볼 수 있었더라도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한 모양이더군요.

 

지난 3년 동안 저 정도의 높은 비율로 지명타자 포지션에만 치중하여 출장하는 선수는 홍성흔이 유일합니다. 타자가 수비수로 출장할 수 없다는 것은 선수로서도, 팀으로서도 매우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그것은 좋은 타격 성적으로 인한 긍정적인 요인과는 별개로 고려해야 할 요인입니다. 사실 야구선수가 수비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어떠한 비난과 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수치스런 것이니까요.

 

정작 수비를 하러 그라운드에 나가는 이대호는 욕을 먹지만, 그럴만한 실력도 없어서 아예 그라운드에 나가지 않는 홍성흔은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습니다. 홍성흔에게는 무한한 갈채가 쏟아지는데, 오히려 본의 아니게 3루 수비를 나름 열심히 하는 이대호는 욕을 먹는 지금의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요. 사실 홍성흔은 불안한 수비에 대한 일정 부분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지명타자는 MVP가 될 수 없다는 속설이 존재합니다. 수비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타격이 좋아도 결국 반쪽 짜리 선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홍성흔은 바로 그 반쪽 짜리 선수입니다. 물론 그 반쪽이 너무나 훌륭하긴 하지만, 그만큼 나머지 반쪽은 심각하게 형편없지요. 홍성흔은 롯데에서 가장 수비를 못하는 선수이며, 롯데 수비 불안의 가장 큰 책임을 가장 크게 느껴야 하는 선수입니다.

 

롯데가 재작년 겨울에 정성훈을 영입했다면 지금쯤 이대호는 팀에게 플러스 요인만 가져다 주는 선수로 기억되며 팀의 영웅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성훈으로 인한 수비에서의 시너지효과가 홍성흔으로 인한 타격에서의 시너지효과보다 훨씬 그 파장이 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팬들이 홍성흔의 타율(작년)과 타점(올해)에 열광하고 있을 때, 그를 지명타자로만 기용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코칭 스태프와 로이스터 감독의 머리 속은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