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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수호신’ 김병현을 꿈꾸며...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 22.

여전히 김병현에게는 최고의 마무리가 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남아있다!!

김병현을 처음 본 것은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때였다. 준결승이던 중국전에서 4회에 등판한 그의 모습은 신선하면서도 뭔가 어색했다. 언더스로우에 가까운 사이드암. 키는 아무리 크게 봐줘도 178정도?(실제는 175정도) 게다가 투수치고 상당히 마른 몸을 선수였다. 해설자의 말을 들어보니 79년생으로 당시 만 19세, 공고롭게도 나와 동갑이었고 그 덕인지 이상하게 호감이 갔다. 약간 찡그린 듯한 그 특유의 표정까지도 말이다.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쉬운 상대인 중국이니까 그냥 주력 투수들을 아끼기 위해 등판시킨 거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웬걸! 6이닝 동안 8연속 삼진을 포함해 무려 12개의 삼진을 잡으며 퍼펙트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가. 140대 중후반을 왔다 갔다 하는 무브먼트 뛰어난 직구와 커브인지 슬라이더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변화구. 한수 아래인 중국 타자들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경기로 인해 김병현은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다음해 2월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25만불에 입단계약을 맺게 된다. 박찬호(120만)와 서재응(135만)을 크게 넘어선 금액임은 물론, 당시만 해도 투수로서 메이져리그 역대 3위(전체는 15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입단 당시부터 약간의 테스트 기간을 거친 후 트리플 A에서 뛰게 될 것이라는 확답까지 받아놓은 상황. 이정도면 충분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몇 년 후면 박찬호와 함께 메이져리그에서 뛰는 또 한명의 선수를 보게 되리라는 기대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병현의 행보는 그러한 우리들의 예상조차 뛰어넘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계약 이후 100일이 채 되지 않아 그는 우리를 다시 한 번 크게 놀라게 한다. 순식간에 마이너리그를 평정한 그는 갑자기 빅리그로 콜-업되었고, 뉴욕 메츠와의 5월 29일 경기에 9회말 8:7로 한점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여 승리를 지켜낸 것이다.


첫 등판에 첫 세이브 기록.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화제 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었다. 그 뒤 김병현의 행보야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으니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여러 가지 드라마틱한 사건의 연속이었고, 또한 팬들에게 여러 가지 흥밋거리를 제공한 최고의 뉴스메이커이자 약간은 엉뚱한(?) 트러블메이커이기도 했으니까.


현재 FA 신분인 김병현의 거취는 여전히 많은 팬들의 관심거리다. 2008년의 유일한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될 지도 모르는 그가 어느 팀으로 가게 될지, 그리고 계약 조건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될 것인지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김병현의 계약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계약 조건 만큼이나 팬들이 무엇보다 궁금해 하는 것은 그의 보직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마무리로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던 선수가 바로 김병현이다. 하지만 그는 선발투수라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 보장된 성공의 자리를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대로 달렸다면 어쩌면 명예의 전당까지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길을 제쳐두고 자신의 꿈을 위해 달린 것이다.


선발로서의 처음 시작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03시즌 애리조나에서의 7번의 선발 등판에서 김병현은 꽤나 좋은 성적을 거둔다. 전부 5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43이닝을 던졌고 3.56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물론 그 7경기에서 김병현이 마운드에 있는 동안 디백스타선이 뽑아준 점수는 단 8점이었고 7경기 중 무려 4번이나 팀이 무득점이었기에 1승 5패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다지 나쁜 출발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이후 보스턴과 콜로라도 그리고 지난해 플로리다에서 보여준 그의 선발투수로서의 성적은 자신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할 만큼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셋업맨이나 마무리로 등판시키면 태업에 가까운 투구를 하면서까지 선발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김병현이, 마무리로서 ‘A’ 클래스였던 그가, 선발투수로서는 5선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김병현은 마무리로서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190센티가 넘는 투수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 그러한 선발 투수 다음으로 등판하게 될 이 키 작은 사이드암 파워피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애리조나 시절 207cm에 스리쿼터 모션의 좌완 랜디 존슨, 195센티의 우완 정통파 커트 쉴링과 대결을 하다가 갑자기 175센티의 언더스로우에 가까운 사이드암 투수 김병현을 상대해야 했던 상대 타자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라.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 않았을까? 저 높은 곳에서 내리 꽂히던 공이 이제야 좀 익숙해지나 했더니, 갑자기 아래쪽에서 공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을 때 그 심정은? 구위라도 만만하면 말도 안한다. 아래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150킬로에 가까운 지저분한 직구(일명 ‘업슛’)와 슬라이더는 거의 마구에 가깝다.


이것은 김병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선발 등판해서 타순이 한번 돌아가고 난 후에는, 상대 타자를 상대하는 것이 한층 껄끄러워지기 마련이다. 쉽게 생각하고 힘으로 누르려고 하다가는 장타를 얻어맞기 십상인 곳이 메이저리그다. 하지만 ‘구원투수’ 김병현은 그럴 필요가 없다. 투구 스타일이 너무 다르기에 상황 자체가 유리할뿐더러 상대를 압도할 만한 공도 가지고 있다. 한 이닝 정도라면 그 특유의 자신감과 구위로 상대방을 윽박지르면서 힘으로 제압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경기

이닝

안타

홈런

볼넷

삼진

피안타율

피출루율

피장타율

방어율

선발

87

476

512

64

206

380

.277

.358

.456

5.07

1.51

릴리프

307

365

269

30

170

426

.204

.311

.310

3.58

1.20



김병현의 지난 9년간 성적을 선발과 릴리프로 구분한 성적이다. 굳이 방어율과 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피홈런과 삼진만 보더라도 김병현이 구원투수로서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것도 05시즌 로키스에서의 (태업성으로 보이는) 셋업맨으로서의 부진한 성적을 포함한 결과인데도 말이다. 구원투수로서 기록하고 있는 저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은 상대 타자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김병현의 대표 구질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53킬로까지 나오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투심과 체인지업, 커브 등을 간간히 구사하기는 하지만 빅리그 타자들을 압도할 만한 수준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즉 상대방이 주의해서 신경 써야 하는 구질은 그 두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닝이 지날수록 그의 공이 공략당하기 쉬워진다는 약점으로 드러난다.



피안타율

피출루율

피장타율

첫 번째 이닝

.233

.322

.354

두 번째 이닝

.277

.360

.446

세 번째 이닝 이상

.299

.376

.490



아마츄어 시절에도 오랫동안 선발로 뛰어왔던 김병현이기에 주위에서 흔히들 말하는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원인은 그의 구질 간파밖에 없지 않을까? 신경 써야 할 구질이 두 개 뿐이라면, 타순이 한차례 돌고난 후의 메이저리그 타자가 그것을 때려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투구 수가 75개가 넘어가면 피안타율은 .307 피장타율도 5할이 넘어간다.


마무리라면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오버스로우 투수들의 공이 눈에 익어버린 상황에서는, 김병현의 구질이 두 가지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 눈에 익지 않은 상황에서 한 이닝이라면 김병현은 그 두 개의 구질만으로도 무적인 것이다.


메이저리거를 꿈꾸던 한국 선수들이 줄줄이 귀국을 했고, 박찬호까지 초청선수 신분인 현재 한국에서의 메이저리그 인기는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그러한 때에 김병현이 다시 마무리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이틀에 한번 꼴로 등판해 스포츠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이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선발 투수를 고집했던 김병현. 아직 충분치 못했다 하더라도 분명 도전을 해보았고,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지도 스스로가 겪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팬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되지 않을까? 지난해 모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김병현의 보직에 대한 투표결과를 보면 무려 75%가 넘는 팬들이 그가 클로저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 선발을 원하는 팬들은 15%도 채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김병현은 당장 한 팀의 주전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선발투수 김병현’은 몰라도 ‘구원투수 김병현’을 탐내는 팀은 많다. 잠시 웅크리고 기다린다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충분히 잘해낼 능력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병현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얼마 전에 전해졌던 소식에서는 ‘선발이든 구원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인 지는 확신할 수 없다. 선발을 원한다며 노골적인 태업성 플레이를 하기도 했던 김병현이다. 진심으로 ‘한 팀의 주전 마무리’라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뛰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작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5년 동안의 선발 투수로서의 도전. 결코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장된 길을 버리고 사나이답게 자신의 꿈을 걸고 거친 길에 도전한 그는 역시나 우리가 익히 보아온 김병현 다운 모습이었다. 다만 이제는 팬들을 위해서, 자신의 고집을 꺾고 최고의 마무리로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선발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를 응원하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을 테지만, 마무리로 멋진 성공을 거두는 김병현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의 선택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