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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장성호가 한 물 갔다고? 천만의 말씀!!

by 카이져 김홍석 2010. 5. 27.

KIA스나이퍼로 이름을 날리던 장성호의 거취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화로의 트레이드설이 나돌았고, 거의 성사 직전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후의 결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장성호의 영입설 때문에 바싹 긴장한 한화 선수들이 갑자기 잘하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까지 떠돌고 있을 정도지요. 실제로 성적이 좋아지면서 한화가 더욱 최후의 선택을 망설이고 있는 듯합니다.

 

정말 어쩌다가 장성호 같은 대타자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세상 참 요지경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장성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2000년대를 논함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타자 가운데 한 명이죠. 1997년 해태의 마지막 우승에 조연으로 동참했고, 그 후로 오래도록 이어진 KIA의 암흑기 시절 유일한 빛이 되어주었던 선수였습니다. 타이거즈 팬들이 어디서든 맘껏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선수였지요.

 

A급 거포의 상징이라는 3할 타율, 4할 출루율, 5할 장타율을 거의 매년 꾸준하게 기록하며 20개 안팎의 홈런을 때려내던 장성호는 스나이퍼라는 별명이 정말로 잘 어울리는 선수였습니다. 양준혁과 그만이 가지고 있는 ‘9년 연속 3의 대기록은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만한 대단한 성과입니다. 정교함과 선구안, 그리고 파워까지 두루 갖춘 최고의 클러치 히터가 이런 신세가 될 줄이야...

 

며칠 전에 아주 흥미로운 포스팅을 하나 읽었습니다. 타격이론 전문 블로거이신 윤석구님께서 쓰신 <KIA 장성호, 아직도 충분한 실력이 있다> 라는 제목의 포스팅이었는데요. 저 또한 같은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글로 풀어낼 생각이었기에 같은 생각을 가진 석구님의 글을 아주 즐거운 맘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윤석구님은 그분 스타일답게 장성호의 타격 자체를 두고 글을 풀어나가셨더군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가 제 스타일대로 장성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결론은 똑같습니다. 장성호의 실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단언컨대, 지금 장성호를 잡지 않으면 한화는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될 겁니다.

 

야구에는 선수의 기량 말고도 기록과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똑 같은 타구를 달리더라도 그 곳의 수비수가 누구냐에 따라 아웃이 되기도 하고, 안타가 되기도 하죠. 선발 투수가 7이닝 1실점을 했다면 대부분은 승리를 챙길 수 있겠지만, 운이 억세게 나쁘면 패전을 뒤집어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 외에 구장이라는 환경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요인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제가 봤을 때 장성호는 그러한 구장의 피해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지난해 KIA 타자들은 홈에서는 55홈런 274타점 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원정에서는 101홈런 397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최희섭의 경우 홈(12홈런 38타점 .255)과 원정(21홈런 62타점 .353)의 성적편차가 어마어마하게 컸죠. 거의 두 배에 이르는 홈런 개수의 차이에서 KIA 타자들이 홈경기에서 느꼈을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KIA 투수들은 지난해 홈에서 44개의 피홈런을 허용했고 3.74의 팀 방어율을 기록했습니다. 원정에서는 64개의 홈런을 내줬고 4.11의 팀 방어율을 기록했습니다. 알고 계시나요? 지난해 철벽 수호신 역할을 했던 유동훈이 홈경기에서는 단 하나의 자책점도 기록하지 않아 홈방어율 제로(0.00)’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로페즈와 구톰슨도 홈경기에서 더 좋은 방어율을 기록했고, 특히 양현종의 경우 홈(2.24)과 원정(4.01)의 차이가 꽤 컸습니다.

 

위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결론 하나. 광주 구장이 투수들에게 매우 유리하고, 반대로 타자들에게는 매우 불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선수들의 기록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마다의 편차는 있지만, 팀 전체의 기록을 놓고 봤을 때 이와 같은 사실은 아주 명확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원래의 광주구장은 가운데 113m에 좌우 펜스 97m의 작은 구장이었습니다. 헌데 2006년에 펜스를 뒤로 물리면서 가운데 120m에 좌우 펜스 99m의 잠실 구장 다음 가는 넓은 그라운드를 가진 구장으로 변신했지요. -우중간도 115m나 되며, 3.1m에 달하는 높이의 펜스까지 새롭게 설치했습니다. 거기에 센터 한가운데에는 그린 몬스터라 불리는 황당한 이 하나 더해져버렸죠.

 

이처럼 구장의 스팩이 한 순간에 너무나 큰 차이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의 광주 구장은 대전-대구와 더불어 타자에게 유리하기로 이름난 구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라운드 확대 이후의 광주 구장은 X-존을 설치 하지 않은 잠실 구장 다음으로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수들의 성적에 직결되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일본에서 복귀한 후 다시금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며 펄펄 날던 이종범이 갑작스런 부진을 겪으며 93경기에 출장하고도 고작 1홈런에 그치고 .242의 초라한 타율을 기록했던 것이 2006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나요? 이종범의 본격적인 노쇠화는 바로 그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공교롭지요.

 

장성호는 2006년에도 3할 타율을 때려냅니다. 하지만 당시 그가 기록한 13홈런은 1997년 이후 9년 만에 기록한 최소 홈런이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2007, 9년 동안 유지하던 3할 타율이 깨지고 맙니다. 그 후로도 수준급 정교함을 보여주긴 했지만, 홈런 파워를 잃어버린 장성호는 최희섭에게 1루를 내줄 수밖에 없었지요. 급기야 조범현 감독의 신뢰를 잃고, 지금의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장성호가 변한 것일까요? 장성호 같은 타자의 실력이 한 순간에 곤두박질 친 것일까요? 그것도 이제서야 겨우 서른이 된 선수가? 여기에서 재미있는 기록을 하나 살펴봅시다. 바로 그의 홈-원정 성적입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장성호는 139번의 홈경기에서 고작 6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타율/출루율/장타율도 .260/.372/.357로 자신의 명성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150번의 원정경기에서는 19개의 홈런과 더불어 .315/.407/.491의 수준급 비율스탯을 기록했습니다. 3할 타율이 깨지던 2007년부터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한 2009년까지도 연간 원정경기 타율은 한 번도 3할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장타율도 원정에서는 5할을 넘겼습니다. 장성호의 원정경기 성적은 같은 기간 동안의 양준혁(.312/.429/.488)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지요.

 

누구나 환경에 대한 적응도의 편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콜로라도 소속의 투수들 중에는 투수들의 악몽이라 불리는 홈구장 쿠어스필드에서의 성적이 원정경기보다 더 좋은 이들이 존재합니다. 반대로 쿠어스필드에서의 성적이 더 나쁜 타자들도 존재하지요. 하지만 이처럼 영향을 적게 받는 선수가 있는 만큼, 그 영향을 남들보다 좀 더 많이 받는 선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장성호는 후자에 속한 선수인지도 모르지요.

 

장성호는 바로 작년에도 45번의 원정경기에서 .317/.406/.540의 아주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타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선수가 2군에서 뛰고 있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KIA가 이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 이유도, 한화가 장성호에 대한 선택을 망설이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원정에서 저렇게 펄펄 날아다니는 장성호가 대전구장을 홈으로 쓰는 한화에서 뛰면 대체 어떤 스탯을 찍게 될까요? 예전처럼 3할대의 타율과 15~20개의 홈런, 그리고 8~90타점은 거뜬히 해주지 않을까요? 물론 4할대의 출루율과 5할에 근접한 장타율은 덤이겠지요. 참고로 19경기밖에 되지 않지만, 지난 3년 동안 장성호는 대전구장에서 4홈런 12타점 .356/.435/.576의 환상적인 스탯을 찍었습니다.

 

장성호-김태완-최진행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의 파괴력이라면 김태균과 이범호의 공백은 전혀 느끼지 않아도 될 겁니다. 게다가 장성호의 연봉은 고작(?) 2억원 밖에 되지 않지요. 아직 만 33세에 불과해 앞으로 3~4년은 너끈히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이만하면 굳이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되리라 봅니다. 마지막을 질문을 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대체 왜 이 선수가 2군에 있는 것일까요? 그의 2군 행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KIA팬분들은 제발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장성호를 받아오는 건 오히려 손해라고 주장하시는 한화팬분들 역시 그에 합당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거든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KIA 타이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