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굳이 만들려고 노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하늘이 멍석을 깔아주자 그것을 피하지는 않았습니다. 김성근 SK 감독과 한대화 한화 감독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많은 야구팬들이 2008년부터 그토록 바래왔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온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드디어 류현진과 김광현, 김광현과 류현진의 사상 첫 맞대결이 결정되었습니다. 아직 ‘성사’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은 났습니다. 또 다른 변수가 방해하지 않는 한, 두 선수는 2010년 5월 23일 오후 5시, 대전 구장에서 벌어지는 한화-SK의 시즌 7차전에서 나란히 선발 등판하여 맞대결을 펼칩니다. 비가 오지 않는 한 말입니다.
두 사람은 원래라면 22일(토) 경기에서 맞붙을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8일에 비가 오는 바람에 일이 틀어질 뻔했지요.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을 22일에 그대로 등판시킬 계획을 밝혔지만, 한대화 감독은 류현진을 23일로 하루 미루었기 때문입니다. 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비가 도와주었습니다. 22일 경기가 또 다시 비로 취소되고 만 것이지요. 한대화 감독이 5선발 양승진의 등판을 취소하고 류현진을 23일 경기에 그대로 등판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두 사람의 맞대결은 마침내 결정됐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프로야구 투톱의 역사적인 첫 맞대결이 되는 것이지요.
윤석민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2008년 이후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최고 투수 자리는 류현진과 김광현의 투톱 체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선수의 기량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지요. 1년 선배인 류현진이 2년 일찍 최고의 투수로 군림해왔기에 그의 손을 들어주는 야구팬들이 더 많지만, 정작 지난 2년 동안의 성적은 김광현이 더 좋았습니다. 모든 면을 통틀어 봤을 때, 두 선수 가운데 누가 더 낫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윤석민을 가장 좋아하지만, 일단 개인 감정은 최대한 배제하겠습니다. 현재의 윤석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현역 시절의 김시진 감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선동열-최동원에 비해 그다지 부족함이 없는 실력으로 3강을 형성했지만, 결국 투톱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던 그 당시의 김시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80년대의 저 3인방 중에서도 김시진을 가장 좋아하는군요.^^;)
1위 SK와 꼴찌 한화의 대결이다 보니, 두 투수의 기량과는 별개로 류현진이 불리한 입장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야구는 원래부터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종목이죠. 똑 같은 타구를 날려도 수비수에 의해 안타가 될 수도 있고, 아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9이닝 1실점을 했다 해도 완투승의 영광을 안을 수도 있지만, 완투패를 당하게 될 수도 있지요.
따라서 이 경기를 지켜보는 우리들은 단지 경기의 결과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과정과 맞대결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매치업이라면 두 선수 스스로가 의욕을 가지고 임할 것이기에 팬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엄청난 투수전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류현진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이겼을 경우의 보상도 그만큼 크지요. 김광현이 유리하긴 해도 졌을 때를 감안하면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은 류현진의 그것보다 클 것입니다. 게다가 야구라는 스포츠는 적어도 1판 승부라면, 팀의 전력이나 분위기 등이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편입니다. 특히 팀의 에이스가 등판하는 경기라면 더욱 그렇지요.
최동원과 선동열이 야구팬들에게 선물한 3번의 맞대결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그럴 법도 하지요. 정말 영화 각본처럼 잘 짜여진 완벽한 기록을 남겼으니까요. 그들이 맞대결을 펼친 3번의 경기는 프로야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회자될 것이 분명합니다.
첫 번째는 해태 1-0 롯데, 선동열 완봉승, 최동원 완투패
두 번째는 롯데 2-0 해태, 최동원 완봉승, 선동열 완투패
세 번째는 해태 2-2 롯데, 최동원-선동열 나란히 15회 완투 무승부
1승 1무 1패의 결과, 게다가 1승씩을 나눠가진 후 마지막 최후의 결전에서의 연장 15회 무승부. 이건 뭐 영화로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한 완벽한 시나리오에 가깝습니다. 결과적으로 둘의 승부는 무승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두 팀의 전력을 고려하면 최동원의 판정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당시 선동열은 지금의 김광현과 입장이 같고, 최동원은 류현진과 비슷한 입장이었으니까요. 그러한 불리함을 극복하고 저런 결과를 보여주었기에 최동원이 선동열의 유일한 라이벌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꼴찌팀의 에이스인 류현진이 1위 SK의 에이스 김광현을 꺾고 승리를 거둔다면, 그의 승리에는 더 많은 찬사가 쏟아질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광현이 승리했을 경우, 그 가치를 깎아 내리는 일도 절대 없어야겠지요. 그 승리는 ‘꼴찌 한화’가 아닌 ‘류현진이 등판한 한화’를 상대로 거둔 것이니까요. 누구에게 승리의 영광이 돌아가든,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이긴 선수를 축하해주는 분위기였으면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남아 있는 변수가 있으니, 그건 바로 날씨입니다. 양 팀 감독의 결정에 의해 맞대결이 ‘예정’되어있긴 하지만, 아직 하늘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기에 ‘성사’가 될 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지요.
지금 한창 내리고 있는 이 비가 언제 그치느냐가 문제입니다. 현재 일기 예보에 의하면 이 경기가 열리는 대전 지방의 경우 23일 12시를 기점으로 빗줄기가 약해진다고 합니다. 기상청이 예보하고 있는 비올 확률은 오후 3시는 60%, 6시에는 30%라고 하더군요. 즉 경기가 시작되기 전쯤에 비가 그칠 확률이 높다는 듯입니다. 설령 비가 온다고 하더라도 예상 강수량이 5mm 이하이기 때문에 경기가 성사될 가능성이 매우 크죠.
만약 경기가 벌어진다면, 그 비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라운드가 너무 젖어서 야수들의 수비에 방해가 되는 일이 없어야겠고, 가랑비가 내려 투수들의 어깨가 식게 만드는 일도 없었으면 합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말끔하게 비가 그친 가운데, 시원한 날씨 속에 최고의 피칭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지요.
하늘이 두 번의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간신히 둘의 매치업이 결정되었습니다. 과연 하늘은 마지막까지 방해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야구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까요? 어떻게든 하늘을 달래서 저 눈물 좀 그치게 했으면 좋겠네요.^.^
(참고) 윤석민은 각각 류현진-김광현과 한차례씩 맞붙은 적이 있습니다. 2007년 5월 13일 광주에서 9이닝 2실점으로 완투한 윤석민은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김광현의 SK에게 0-2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해 7월 21일에는 류현진과 또 다시 광주에서 붙었지요. 그리고 7이닝 1실점의 좋은 투구를 보여준 류현진이 7이닝 3실점의 윤석민에게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단, 경기 자체는 이후 벌어진 안영명과 구대성의 불쇼로 인해 KIA가 5-4로 이겼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