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투수가 여름의 초입인 6월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파워피처로 이름을 날렸던 박명환(33, LG)과 현역 최고의 에이스 중 한 명인 김광현(22, SK), 이들이 반복되는 판정 시비로 거칠어져 있었던 팬들의 가슴을 오랜만에 ‘기대’와 ‘설렘’으로 두근거리게 만들어주는군요.
현역 프로야구 투수들 가운데 퍼펙트를 기록할 확률이 가장 높은 선수를 꼽으라면 꽤나 많은 전문가들이 윤석민을 꼽습니다. 하지만 노히트 노런을 달성할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를 꼽으라면 그건 역시 김광현이겠죠. 사실 류현진은 “안타 따윈 맞아주겠다”는 식이기 때문에 그런 대기록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차이라는 뜻입니다.
9회 2아웃 상황에서 깨진 통한의 노히트 노런. 비록 완봉승도 완투승도 모두 놓쳐버렸지만, 탈삼진 10개를 잡아내며 노히트를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는 김광현의 피칭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는 10년 만의 대기록이 탄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안타를 허용하기 직전의 2구째 스트라이크가 바깥쪽 낮은 곳으로 거의 완벽히 제구가 된 공이었거든요. 그 상황에서 그런 코너에 위력적인 공을 던질 수 있다면, 대기록 달성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긴장감을 이기지 못했는지 3구째가 가운데로 몰렸고, 최형우가 그걸 놓치지 않고 잡아당겨 안타로 연결하더군요. 김광현의 피칭도 훌륭했지만, 그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도 실투를 놓치지 않고 때려낸 최형우도 너무나 대단했습니다.
최근 마음 고생이 누구보다 심했을 김광현.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라이벌 류현진이 너무 잘나가는 바람에 이유 없는 구설수와 비난에 시달려야 했었죠. 그런 와중에서도 이런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그의 피칭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경기는 김광현의 그런 응어리진 한을 모두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어떤 사람들은 아직은 김광현을 류현진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던데, 그건 지난 2년 동안의 결과를 너무 쉽게 본 것이 아닌가 싶네요. 앞선 2년 동안은 김광현의 성적이 류현진보다 분명 좋았으니까요. 비록 류현진이 보여준 ‘투수 3관왕’ 같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아직까지 보여주진 못했지만, 류현진을 칭찬하기 위해 굳이 3년 연속 2점대 방어율을 기록 중인 김광현의 능력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김광현의 통산 방어율(2.77)은 류현진(2.90)보다 뛰어나죠. 확실히 ‘완투형 선발투수’로서의 완성도는 류현진이 더 높지만, 김광현 역시 여타 능력치 면에서는 크게 뒤쳐질 것이 없습니다. ‘현역 최고의 라이벌’로 불리기에 합당한 두 선수라는 뜻입니다.)
또한, 노히트의 수모를 눈 앞에 둔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믿고 정면승부 해준 선동열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김광현의 노히트 도전이 더욱 빛났던 것은 바로 선 감독과 삼성 선수들의 정면승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좌완인 김광현을 상대로 좌타자인 최형우를 최후의 타자로 그대로 타석에 내보낸 선동열 감독의 뚝심과, 기어이 안타를 때려내며 기록을 깬 최형우. 김광현과 더불어 이날 경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봉승이 눈 앞에 있는 시점에서 교체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건 김성근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고 봅니다. 퍼펙트가 깨지고 노히트가 남은 상황이라면 모를까, 노히트가 깨지고 완봉이 남은 상황이라면 굳이 마지막까지 던지게 할 필요가 없죠. 특히 김광현은 최근의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을만한 최고의 피칭을 보여줬고, 그렇다면 좋은 기억을 남긴 채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것이 앞으로를 위해서 더 좋은 일이니까요. 굳이 완봉승 도전이 남았는데 교체했다고 김성근 감독을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광현이 문학에서 사고(?)를 치고 있을 때, 건너편 잠실에서는 박명환이 또 하나의 환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6회까지 58개의 투구수로 퍼펙트 행진! 사실 3이닝이나 남은 상황이었기에, 퍼펙트를 운운하긴 조금 이른 시점이긴 했지요. 결국 7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강동우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기록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7회 마운드에 오를 때부터 땀을 뻘뻘 흘리던 만 33세 베테랑 박명환의 모습. 올해로 프로 15년차가 된 그에게도 6이닝을 퍼펙트로 마치자 긴장이 되었던 것일까요. 투구수도 적었기에 2%의 가능성을 믿고 ‘혹시나’하는 기대를 했었는데요. 아쉽게도 퍼펙트는 물론 완봉이나 완투도 기록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로 오랜만에 8회까지 마운드에 서며 좋은 피칭을 보여준 그의 모습이 오랜만에 LG팬들에게 함박 웃음을 선물했을 것 같네요.
‘한 물 갔다’는 소리를 듣던 박명환이 6회까지 완벽한 투구를 보여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손민한-배영수와 더불어 국내 최고의 투수 3인방으로 이름을 날리던 박명환의 전성기 시절 투구를 다시 보는 듯한 추억을 일깨우는 그런 피칭이었습니다.
위의 두 경기를 동시에 보다가(제 방에는 TV가 두 대입니다) 잠시 다른 경기를 살펴보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채널을 돌리자 마자 제 눈에 들어온 장면은 투수가 공을 던진 직후, 두산의 어떤 타자가 번트를 대는 모습이었는데요. 순간 제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 타자의 얼굴이 김동주와 똑같이 생긴 겁니다.(오 마이 갓~)
‘두목곰’이 번트를 대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김광현이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면 그건 2000년의 송진우 이후 10년 만의 사건이 되었겠죠. 헌데 김동주의 번트는 그보다 1년 더 묵은 오랜 기록입니다. 프로 2년차였던 1999년 이후 무려 11년만의 번트죠. 두산은 물론 한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4번 타자로 번트 경험이 거의 없는 김동주의 번트라니, 순간적으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나중에 다시 살펴보면서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경기의 상황이 치열하긴 했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김동주에게 번트를 지시한 김경문 감독이나, 그걸 항상 대봤던 것처럼 너무나 완벽하게 굴리는 김동주의 모습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못된 작전이라기 보다는, 강호동이 여장을 했을 때나 느낄 수 있을만한 그런 생소함 때문이었지요.
메이저리그였다면, 아니 당장 롯데의 로이스터 감독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결코 번트를 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이대호나 가르시아의 경우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이후 번트를 댄 적이 없죠. 메이저리그에서도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최근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번트를 댄 적이 없습니다. 알버트 푸홀스도 신인시절에 한 번 기록한 이후 9년째 번트와는 거리가 멀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김경문 감독의 작전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김경문 감독 정도 되니까 김동주에게 번트를 지시할 수 있는 것이고, 스스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니 김동주도 번트를 댔던 것이었겠죠. 최근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고 있는 두산의 불펜을 고려했을 때, 반드시 추가점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결과적으로 작전은 성공했고, 두산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두목곰의 번트는 감독과 선수 간의 신뢰가 밑바탕 된 결과라고 보이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물론 10년이 넘게 번트를 대지 않았음에도 단 한 번의 시도에서 완벽하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 김동주의 평소 노력과 훈련에도 찬사를 보냅니다. 김광현의 노히트 도전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두목곰의 번트, 그 또한 팬들을 웃음짓게 만드는 나름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SK 와이번스,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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