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치로(37)는 당대 최고의 교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데뷔 이후 올해까지 10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이 .333(현역 1위)에 이르니 ‘맞추는 능력 하나만큼은 단연 최고’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지요. 그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2할2푼을 쳐도 좋다면 30홈런을 때릴 수 있다”
이치로의 연평균 홈런수는 10개 미만입니다. 162경기 기준으로 9.2개 정도 되지요. 일부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은 이치로가 홈런도 평균 이상으로 때리는 걸로 오해하고 계시던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치로의 홈런파워는 메이저리그 평균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홈런을 때릴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경기 전 프리배팅을 할 때면 가장 많은 비율로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긴다고 하더군요. 그런 이치로를 향해 일부 팬들이 “그는 마음만 먹으면 30홈런을 때릴 수 있는 선수다”라고 평가했고, 그에 관련된 질문을 받자 한 이치로의 대답이 바로 위의 말입니다.
즉, 이치로가 지금의 3배 수준의 홈런을 때리려면 타율이 1할 이상 떨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죠. 다름아닌 본인 스스로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기도 하지요. 갑작스럽게 스타일을 변화시키면서 파워를 늘린다면 저 정도의 타율 감소는 각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시즌이 시작되기 전, 한 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올해는 20홈런 이상이 목표입니다. 차츰차츰 홈런수를 늘려서 연간 3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2008년에 9홈런을 기록했었던 그 선수는 실제로 지난해 23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자신의 말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의 타율이 전혀 하락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팬들은 그런 그를 향해 ‘타격천재’ 혹은 ‘타격기계’라는 별명을 붙어주었습니다. 바로 두산의 김현수(22)가 그 주인공입니다.
2008년에 .357/.454/.508이었던 배팅라인을 타율은 그대로 유지한 채 .357/.448/.589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그의 능력은 놀랍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무리 한창 성장할 시기라고 해도, 저 정도의 놀라운 타율을 유지하며 파워만 끌어올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가 한국 프로야구의 차세대 최고 타자가 될 것이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또 한 명의 선수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타율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많은 홈런과 타점을 올리고 싶다. 거포로의 변신이 올 시즌 목표다”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33)이 올 1월에 한 말입니다. 2년 연속 타율 2위에 오르며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그의 갑작스런 ‘거포 변신 선언’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그리고 매우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요. 그는 김현수처럼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이치로처럼 단순히 가능성만 말한 것도 아니었죠.
홍성흔은 실제로 작년에 3할7푼을 때리게 해주었던 그의 갈매기 타법에 수정을 가합니다. 타석에서 양 발의 간격을 좁히고 스윙의 궤적을 더욱 크게 한 것이죠. 작년까지 물 흐르듯이 갖다 맞추는 식의 타격이 주를 이루었다면, 올해는 기본적으로 홈런을 노리는 어퍼스윙 형태의 타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변신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범경기 내내 제대로 된 타이밍을 잡지 못해 고전하던 홍성흔은 정규시즌 개막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꾸준히 홈런포를 쏘아 올리고 있습니다. 63경기를 치른 현재 15홈런 69타점을 기록, 이미 지난해의 12홈런 64타점은 훌쩍 넘어섰고, 자신의 개인 통산 최고 기록인 18홈런과 86타점의 경신도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실질적으로 이제 홍성흔의 목표는 거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30홈런-120타점으로 잡아야 할 정도지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올 시즌 그의 타율이 .343(4위)라는 점입니다. 지난해보다 소폭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차피 3할3푼 이상의 타율이라면 상승과 하락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지요. 현재 홍성흔은 최고 수준의 타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작년보다 훨씬 많은 홈런과 타점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포수로서 퇴물 취급을 받던 그가 2008년 지명타자로 변신하면서 갑자기 .331/.370/.442의 성적을 기록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홍성흔의 ‘커리어 하이’일 것이라 여겼었습니다. 저도 그랬지요. 하지만 그는 지난해 .371/.435/.533로 한 단계 진화하면서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함과 동시에 전문가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더니 올해는 한술 더 떠서 거포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그것을 실행시키고 있네요. 작년을 능가하는 .343/.434/.607의 화려한 배팅라인. 이건 상식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대단하고 엄청나서 뭐라 표현할 말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어쩌면 홍성흔이야말로 타격에 있어서 김현수와 대등, 혹은 그 이상의 재능을 지닌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니까요.
그가 처음부터 수비 부담이 큰 포수가 아니라 1루수나 외야수로 프로에 뛰어들었다면 어땠을까요? 혹시 지금쯤은 김동주와 비교될 만한 화려한 커리어를 쌓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 제가 결코 오버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30대 중반의 나이에 ‘우연찮게’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변신을 선언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여준 선수에게 그 어떤 찬사가 아깝겠습니까.
이치로가 10년만 젊었더라면 단계를 거쳐 거포로의 변신을 시도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처음 1~2년 정도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2~3년 후에는 3할과 30홈런을 동시에 기록하는 타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럴만한 재능을 충분히 갖춘 선수이니까요. 하지만 실패할 확률도 매우 높기 때문에, 이치로는 쓸데 없는 모험을 하기보단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김현수는 그 젊음을 무기로 일찌감치 자신이 목표를 재설정하고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작년의 성적이 그 잠재력의 맥시멈은 아닐 겁니다. 올해는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그 또한 성장통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요. 내년쯤, 아니면 당장 올 후반기만 되더라도 더욱 무서워진 김현수를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변신의 위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 적응 기간도 최소화하며 곧바로 팬들 앞에 자신의 능력을 120% 과시하고 있는 주인공이 지금의 홍성흔입니다. 원래부터 그런 재능을 충분히 보여왔던 이대호의 올 시즌 성적(15홈런 53타점 .363)은 특별히 놀라울 것도 않지만, 홍성흔의 기록은 마냥 신기할 뿐입니다.
홍성흔의 변신은 김현수의 변신보다 놀랍고, 이치로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야구의 상식을 파괴하는 대단한 결과입니다. 2년 동안 3할5푼을 때렸던 타자의 거포 변신 선언과 그 성공.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지난해의 김상현에 이어 역대 7번째로 3할-30홈런-120타점을 달성한 후 시즌 MVP에 선정되는 홍성흔의 모습을 일찍부터 상상해 봅니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 홍순국의 순 스포츠,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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