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인 이 시기에 할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국내 프로스포츠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종목은 프로야구입니다. 연간 5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관중, 올해는 600만 이상이 무난해 보이는 페이스로 인기 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박지성과 이청용이 뛰고 있는 프리미어리그의 인기가 높을지 몰라도, 전 계층을 아우르는 대중적인 인기에서는 역시 프로야구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팬들은 단 한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항상 축구팬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때로는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를 느끼기도 합니다. 어떻게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를 이런 식으로 대우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향한 분노가 느껴지기도 하지요.
야구팬들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월드컵 경기장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수원, 울산, 인천, 전주, 제주에 10개나 되는 현대식 축구 경기장을 지었죠. 하나 같이 좋은 시설을 자랑하는 최고급 구장들입니다. 물론, 그 경기장에도 나름의 문제들이 존재하긴 하겠지만, 야구팬들이 보기에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22일 광주구장에서 벌어진 KIA-넥센 전에서 아주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월드컵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더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일이었죠. 고운 흙으로 덮여 있어야 할 마운드 아래 쪽에 벽돌이 고이고이 쌓여 있었던 겁니다. 결국 경기를 치르다 말고 마운드 아래에서 벽돌을 발굴(?)해 내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넥센 선발 고원준이 이상하게 발판 근처를 자주 건드리길래 좀 이상하다 싶더니, 8회에 바뀐 투수 송신영이 결국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심판에게 어필을 하더군요. 그래서 그 아래를 살짝 뒤집어 봤더니 무려 수십 장에 달하는 벽돌이 하나씩 출토되는 게 아니겠습니다.
그걸 직접 파내고 있는 ‘레전드급 투수’ 출신인 정민태 코치의 심경이 어땠을까요? 후배들이 이런 환경에서 야구를 한다는 사실에 속으로 착잡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걸 바라보고 있는 심판들의 어이없다는 시선, 그리고 중계를 하는 해설자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분노와 개탄.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과 TV를 통해 시청하던 팬들 역시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였지요.
군대에서 딱 한 번 시가지 행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내를 가로지르며 총 40km 가운데 30km 이상을 아스팔트 위로 걸었지요. 5~6시간쯤 지나니까 무릎이 부서질 듯 아프더군요. 흙을 밟으며 산 속을 걸으며 하는 행군이 얼마나 쉽고 편한 것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딱딱한 바닥은 그만큼 무릎과 관절에 부담을 주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투수는 투구를 할 때 마운드 위에서 힘찬 한 발을 내딛어야만 하죠. 그런데 그런 마운드 아래에 벽돌이 깔려 있다니요. 투수를 망가뜨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요?
마운드에는 고운 마사토 흙을 까는 것이 기본 상식입니다. 대체 왜 벽돌을 깐 걸까요? 예산이 부족해서? 아니면 그냥 그래도 상관 없는 줄 알고? 어쨌든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야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틀림 없습니다. 그 벽돌이 언제 깔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지역을 대표하는 야구장을 관리하고 개보수를 하는 사람이 야구에 대한 문외한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서글프군요.
롯데의 제2구장인 마산 구장에는 외야 펜스와 관중석의 페인트 색깔이 똑같습니다. 따라서 홈런성 타구가 정확히 어느 부분을 맞혔는지의 판별이 무척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펜스와 관중석의 색깔은 다른 색으로 칠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펜스 상단에 노란색 등으로 잘 보이는 선을 그어서 확실히 구분이 가도록 만들어주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산 구장에 새로운 페인트를 칠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야구 관계자의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래가지고 보수를 했다고 말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월드컵 축구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숱한 축구 관계자의 조언과 다양한 과학적 기능성 등이 고려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구장은 정말 처참한 수준으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현대식 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해 문학구장 하나입니다. 잠실과 사직도 지은 지 오래 되어서 ‘현대식’이라 부를 정도로 시설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나머지 구장들이야 더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입만 아프고 가슴이 시릴 뿐이지요.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마운드에서 벽돌이 출토되는 것이 국내 야구장의 실태입니다. 이것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나라의 실상이자, WBC 준우승 국가의 어처구니 없는 현실입니다. 수백 수천만 팬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스포츠가 벌어지는 구장의 절반 이상이 쌍팔년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번에 새로 당선된 광주 광역시장님, 알고 계십니까? 저 마운드에서 나온 벽돌이 당신의 얼굴에 X칠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더 이상 말로만 하는 ‘야구장 신축 약속’은 필요 없습니다. 이번에는 꼭(!) 현실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대전이나 대구도 마찬가집니다.
얼마 전에 K-리그에서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고 자축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야구팬으로써 최다 관중 기록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부러운 건 그 만한 관중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의 크기와 시설이었죠. 사실 프로야구는 여건만 된다면 단일 경기 10만 관중을 동원하는 것도 꿈이 아니니까요.
한국 축구계는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은 국내 K-리그가 크게 인기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월드컵의 선전으로 인해 부흥기를 맞이하기라도 한다면, 그 인기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구는 국제대회에서 그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시설이 따라주지 못해 흥행의 저해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지요.
좋은 야구장을 ‘못 가진’ 야구팬은 멋진 축구장을 ‘가진’ 축구팬이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언제쯤 야구팬들은 축구팬을 부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멋진 경기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어서 오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P.S. 한국 대표팀이 마침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군요. 확실히 8년 전과는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안방이 아닌 머나먼 이국 땅에서 이루어낸 값진 성과라 그런 것 같네요. 예전에도 글로 풀어낸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프로스포츠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야구와 축구가 함께 흥행 몰이에 나서야 합니다. 균형적이고 동시적인 발전만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이번 16강 진출을 계기로 K-리그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쏟아졌으면 좋겠네요. 이왕 만들어 놓은 월드컵 경기장이 가득 차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길 바랍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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