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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전날의 '엘롯기'동맹, 이제는 경쟁자로!

by 카이져 김홍석 2010. 7. 17.

2000년대 이후 프로야구에는 한동안 '엘롯기 동맹'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세 팀은 공교롭게도 모두 2000년대 들어 극심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8년간 리그 꼴찌를 이 3팀이 양분했고, 팀 명의 첫 글자를 따서 '-------'이라는 꼴찌 계보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팬들 사이에서는엘롯기 동맹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동병상련의 시기를 보내던 세 팀의 팬들은 서로의 처지를 깊이 공감하며 연대감을 형성했다. 2006시즌 KIA가 두산과 치열한 4강 싸움을 치르고 있을 당시에는, 포스트시즌진출이 좌절된 롯데가 두산의 덜미를 잡자 열광한 KIA 팬들이 롯데의 응원가를 불러주는 놀라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역정서가 강한 야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롯기 동맹이라는 영호남의 대화합이 야구장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내던 LG까지 새롭게 가세하며 트리오로 재편된 엘롯기 동맹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전례 없는 꼴찌 팀 팬들 간의 연대를 이루게 된다. 엘롯기 팬들은 가수 송대관의 '유행가'를 개사하여 비공식적인 주제가로 삼아 "엘롯기~ 엘롯기~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를 외치며 만년 꼴찌 팀의 설움과 희망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가을에 엘롯기 3팀이 함께 야구하자."는 것은 암흑기를 보내던 엘롯기 팬들의 공통된 소망이었다.

 

2008시즌 들어 롯데가 오랜 암흑기를 청산하고 8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2009년에는 KIA 타이거즈가 무려 12년만의 우승을 차지하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거기에 한화라는 꼴찌계의 새로운 다크호스가 급부상하여 9년 만에 엘롯기가 아닌 다른 팀에서 꼴찌가 탄생하면서, 엘롯기 동맹의 수난사는 이제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2010시즌 7월 현재, 한때 만년 꼴찌의 아픔을 함께 나누던 엘롯기는 이제 더 이상 동맹이 아닌 4강을 놓고 다투는 라이벌로 새롭게 변모했다.

 

시즌이 60% 이상의 진행율을 보이면서 올해 '가을잔치'의 주인공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1위에서 3위까지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3위와 7.5게임차이로 벌어져있는 4위 자리는 아직 미정이다.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롯데가 5할에 근접한 승률로 유리한 고지에 있기는 하지만, LG KIA도 충분히 반전을 노릴만하다. 7-8위에 처져있는 넥센과 한화가 최근 연패의 늪에 빠지는 바람에 분위기 반전이 어렵다고 봤을 때, 4강 싸움은 사실상 엘롯기 3팀의 대결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3팀은 모두 나름대로 4강이 절실하다. 가을잔치에 가장 굶주려있는 팀은 바로 LG.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끝으로 LG는 지난 7년간 우승은 고사하고 포스트시즌 한번 나가지 못하고 '김성근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올 시즌 박종훈 감독 체제로 첫 해를 맞이하고 있는 LG는 전력은 충분히 4강에 도전할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부상선수들의 속출과 마운드의 수적 한계로 베스트 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KIA '우승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우승팀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올 시즌 창단 이후 최다인 16연패의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한화를 상대로 악몽 같은 연패사슬을 끊으며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조범현 감독과 KIA 선수단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 편이다. 디펜딩 챔피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4강 진출은 자존심의 마지노선이다.

 

롯데는 올 시즌 역대 최강의 화력을 앞세워 화끈한 공격야구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가르시아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타격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노리는 홍성흔-이대호의 쌍포는 연일 불을 뿜고 있다.

 

어쩌면 롯데는 LG KIA보다 더 높은 팬들의 기대치와 싸워야 한다. KIA는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LG는 올 시즌엔 4강만 가도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롯데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로 가을잔치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했지만, 그만큼 우승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롯데는 1992년 팀 역사상 2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이후 무려 17년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오랜 시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불명예 기록이다. 특히 2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에서 맥 없이 패배한 터라, 올해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3년 연속 4강행을 이루더라도 로이스터 감독의 성과는 빛이 바랠 가능성이 크다.

 

4강 싸움에서는 여름에 강한 팀이 가을잔치 티켓을 거머쥘 확률이 높다. 지난해 우승팀 KIA 7~8월에 눈부신 고공비행을 보여주었던 것이 SK를 제치고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거머쥐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올해도 누가 이 여름을(Hot)’하게 보내느냐에 따라 4강 티켓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어제의 동지에서 이제는 4강을 놓고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쳐야 하는 엘롯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동맹관계였던 세 팀이 함께 웃을 수 없다는 현실이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하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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