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2009년의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by 카이져 김홍석 2010. 7. 24.

거의 4개월 동안 정신 없이 달려왔던 2010시즌 프로야구도 전반기를 마치고 올스타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 그리고 흥미로운 기록들로 인해 팬들을 웃게도, 울게도 했던 올 시즌 프로야구. 그런 프로야구 전반기 판도에서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바로 지난해 리그를 평정했던 일부 '타이틀 홀더'들의 몰락이다.

 

타이틀을 차지했을 정도로 뛰어난 기록을 남긴 선수가 이듬해에도 비슷한 수준의 활약을 이어간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일정 수준 이상은 유지하는 편이다. 타이틀을 따냈던 선수가 1년만에 완전히 바닥권으로 추락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올 시즌 현재 지난해 홈런, 타점, 다승, 타율, 최다안타 등 각 부문 수상자 중에서 올해도 지난 시즌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선수가 급격한 성적 하락을 보이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김상현(KIA)이다.

 

지난해 홈런(36)-타점왕(127)을 동시에 석권하며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했던 김상현의 올 시즌 성적은 고작 36게임 출장에 타율 .202, 8홈런 24타점에 불과하다. 고질적인 왼 무릎의 반월판 연골 손상이 악화되면서 결국 수술대까지 올랐고, 들쭉날쭉한 컨디션으로 정상적인 복귀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2009시즌 타격왕 박용택도 초라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타율 .372로 타격왕에 올랐고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박용택은, 올 시즌 67게임에 출장해 타율 .260에 그치며 다시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로 회귀한 모습이다. 지금 기록 중인 성적은 2008년 당시(.258)와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투수들 중에는 지난해 공동 다승왕 3인방의 동반 몰락이 팬들에게 아쉬움만 안겨주고 있다. 2009시즌 14승으로 나란히 공동 다승왕을 수상했던 3명의 투수 중, KIA 로페즈는 17경기에서 나와서 5.63의 평균자책점으로 단 1(8)에 그치는 치욕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 조정훈은 5 3패 평균자책 4.94, 삼성 윤성환도 3 4패 평균자책 5.53에 불과해, 셋 모두 올 시즌 성적이 형편없다. 계속된 부상과 슬럼프로 2군을 들락거리거나 선발 로테이션에서도 제외되기 일쑤다.

 

2년 연속 프로야구 최다안타왕에 빛나는 김현수(두산)도 작년보다 못하다. 홈런-타점 페이스는 지난해와 비슷한데 2년 연속 .357를 기록했던 타율은 올 시즌 3할 근처에서 더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4번 타자 전향 계획이 일단 실패로 드러나면서, 타순이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교타자로서의 본능과 거포 변신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아직 균형을 찾지 못했다.

 

지금 현재로서도 충분히 훌륭한 성적(16홈런 63타점 .301)이지만, ‘무한 성장을 기대했던 만큼 정체되어 있는 올 시즌 성적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7월 들어 장타력에서 다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터라, 후반기에는 거포로서 좀 더 성장한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지난해 타이틀 수상자 중에서는 탈삼진 부문의 류현진(한화)과 도루왕 이대형(LG), 평균자책점의 김광현(SK) 정도가 꾸준히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경우다. 류현진은 생애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목표로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으며, 김광현은 류현진이 1위를 달리고 있는 대부분의 항목에서 2위에 올라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대형은 정수근에 이어 역대 2번째로 4년 연속 40도루를 기록하며 올 시즌도 이 부문에서 단독 선두를 질주 중이다.

 

지난해 세이브 부문 1위였던 이용찬 역시 올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타이틀 홀더 중 한 명이다. 지난해의 부족함을 잘 다듬어, 올해는 한층 나아진 모습으로 팬들 곁을 찾아왔다. 하지만 실질적인 구원왕이라 할 수 있는 유동훈의 경우는 힘든 올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선동열과 정대현 이후 규정이닝의 50% 이상을 소화하면서 0점대 방어율(0.54)을 기록한 역대 3번째 투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유동훈은 올 시즌 불안한 마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올해도 2점대의 수준급 방어율(2.46)을 기록하곤 있지만, 18번의 세이브 찬스에서 무려 6번이나 팀의 승리를 지켜내지 못했고, 넘겨 받은 주자의 실점율도 42.3%나 된다. 이제는 조범현 감독의 신뢰도 상당부분 잃어버렸고, 그와 관련된 투수 교체가 문제가 되면서 끔찍한 16연패가 시작되기도 했다.

 

개인타이틀이 아니라 골든글러브 수상자 명단을 기준으로 살펴봐도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에도 꾸준히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선수는 지명타자 부문의 수상자인 홍성흔(롯데) 정도에 불과하다. 유격수 부문 수상자였던 손시헌(두산)은 평균 수준이고, 1루수 최희섭(KIA) 2루수 정근우(SK)도 자기 몫은 그럭저럭 하고 있지만 지난해만큼의 활약은 아니다.

 

지난해는 김상현 정도를 제외하면 각 부문 타이틀 수상자들이 대거 분산되었던 것과 달리, 류현진-이대호-홍성흔, 이들 세 명이 투타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비롯해 개인 타이틀의 상당수를 가져갈 정도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야구전문가들은 2009시즌에 강세를 보였던 선수들이 대거 몰락한 것에 대하여 오히려 지난해 활약의 후유증이 독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김상현의 경우, 지난해 생애 최초로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팀 내 비중이 높아졌고, 그러한 팀 사정상 잔부상을 안고 강행군을 거듭한 게 결국 탈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조정훈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을 위해 어깨 통증을 참고 무리한 등판을 강행했던 것이 큰 문제로 번지고 말았다.

 

갑자기 성적이 크게 향상되는 '몬스터 시즌'을 보낸 선수들이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많은 야구인들은 이것을 경험 부족이라고 지적한다. "갑자기 성적이 좋아지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욕심이 생긴다. 무리하다 보면 스스로 본인의 페이스를 조절하는데 실패하고, 부상이나 슬럼프에 빠질 위험도 높아진다. 매 시즌 꾸준히 잘하는 선수와 한두 해 반짝하고 마는 선수의 차이는 여기서 갈린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타이틀 홀더 중에는 생애 처음으로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거나, 이전에는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깜짝 스타'들이 많았다. 진정한 A급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를 구분 짓는 것은 바로 꾸준함이다. 홈런왕을 한 번도 못한 채 통산 홈런 1위에 오른 양준혁(삼성)이나 한국 프로야구의 투수관련 기록을 죄다 갈아치운 송진우(전 한화), 그리고 10년 넘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김동주(두산) 같은 선수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1~2시즌 반짝하는 것보다 오랜 시간 기복 없이 꾸준히 활약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또한 더 어렵다.

 

실제로 류현진이나 이대호, 홍성흔 같이 올 시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선수들의 경우, 어느 날 갑자기 반짝 나타난 스타들이 아니며, 벌써 몇 년째 철저한 자기관리와 부단한 노력으로 매 시즌 꾸준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케이스다. 진정한 A급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클래스 차이를 가늠하는 기준은 화려함이 아니라 꾸준함에 있음을 되새기게 되는 대목이다.

 

// 구사일생 이준목, 카이져 김홍석[사진=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기록제공=Statiz.co.kr]

 


추천
(손가락 모양) 글쓴이에게 힘이 됩니다! 로그인 없이도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