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가 이번 시즌의 우승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그 프런트의 행보를 보면 곧바로 느낄 수가 있네요. 놀랍게도 브랜든 나이트(35)의 무릎 부상이 재발한지 4일 만에 새로운 외국인 우완 투수 팀 레딩(32)의 영입을 발표했습니다. 이미 나이트가 부상으로 미국을 들락거릴 때부터 준비해왔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이 영입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놀랍고, 또한 의외네요. 삼성이 레딩을 영입에 성공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레딩 스스로가 한국행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레딩 정도라면 맘만 먹으면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일본으로 진출하거나, 아니면 내년도 메이저리그 복귀를 노릴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죠. 적어도 그는 지금까지 한국 땅을 밟아온 투수들과는 입장이 전혀 다른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참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레딩보다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을 갖춘 투수는 단 두 명, 바로 전 메이저리그 20승 투수인 호세 리마와 메이저리그 최고의 셋업맨으로 다년간 활약했던 펠릭스 로드리게스 뿐입니다. 그 중 로드리게스가 구원투수임을 감안하면, 레딩은 역대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 선발 투수 가운데 리마 다음으로 네임벨류와 실력에서 인정받는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진출 시점에서의 실력을 감안하면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리마는 사실 20승 경력 자체가 상당한 운이 따라줬다는 평가를 받는 투수로,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그렇게 성공할 것이라곤 그 어떤 전문가도 예측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투수입니다. 또한, 72년생인 리마가 메이저리그급 기량을 보여준 것은 2004년이 사실상 마지막이었죠. 그리고 2008년 36세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네임벨류는 최상이었을지 몰라도, 이미 한국에 올 때부터 기량 자체에 대해선 의문이 많았던 투수입니다.
하지만 레딩은 다릅니다. 바로 작년만 해도 225만 불의 연봉을 받으면서 뉴욕 메츠의 선발투수로 뛰었던 선수입니다. 물론, 시즌 성적은 3승 6패 방어율 5.10으로 평범했고, 시즌 초반의 부진으로 한 때 불펜으로 강등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지난 시즌 막판 다시 선발로 복귀하여 등판한 마지막 8경기에서는 5번의 퀄리티스타트와 더불어 2.98의 수준급 방어율을 기록했었습니다.
당장 작년만 하더라도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통하는 구위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사실 그랬기에 레딩이 지난 FA 시장에서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하고 미아가 되어버린 것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충분한 기량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팀들이 그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레딩은 콜로라도를 거쳐 뉴욕 양키스와의 마이너 계약으로 시즌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이너계약이긴 했지만, 여차하면 박찬호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위치였죠. 실제로도 만약 양키스가 트레이드 마감 시점의 움직임으로 케리 우드를 얻지 못했다면, 박찬호를 방출시킨 후 레딩을 메이저리그로 불러 들였을 지도 모릅니다.
아마 레딩의 한국행 결심에는 이러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봅니다. 나름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우승 반지를 위해 ‘혹시나’하는 기대를 가지고 마이너리그에서 묵묵히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는데,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기회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그냥 마이너리그에서 올 시즌을 마감하느니, WBC에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인 한국이란 나라에서 올 시즌 우승후보의 하나인 삼성 소속으로 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것 아닐까 싶네요. 레딩도 우승하고는 거리가 먼 선수였기에, 삼성이 한국리그에서의 우승 가능권 팀이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 시즌 레딩의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우선 그가 마이너리그에서부터 메이저리그에 이르기까지 ‘선발투수’로 주로 활약해온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레딩은 올 시즌 양키스의 트리플A에서 13경기(선발12번)에 등판하여 7승 4패 방어율 2.46의 아주 좋은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경기당 평균 7이닝에 육박하는 이닝소화 능력을 과시했고, 84이닝 동안 68피안타(2홈런) 17볼넷 62탈삼진 등은 모두 준수한 기록이죠. 트리플A 수준이라면 제구와 구위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수준임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사실 레딩은 상당한 수준의 유망주 출신이죠. 그는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박찬호의 영향으로 인해 메이저리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팬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이름입니다. 특히, 당시 한국에는 저를 비롯한 휴스턴 에스트로스의 팬이 꽤 많았고, 레딩은 로이 오스왈트와 더불어 그 휴스턴을 대표하는 투수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었죠.
레딩은 1997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20라운드로 휴스턴에 지명됩니다. 그리고 3년 후인 2000년도 싱글A+와 더블A에서 14승 5패 방어율 2.79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단숨에 주목을 받게 되죠. 그 결과 메이저리그의 유망주 전문 사이트인 <베이스볼 아메리카(BA)>는 2001년 프리시즌 ‘Top-100’ 랭킹에서 레딩을 당당히 49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의 유망주를 총 망라하는 랭킹에서 50위 안에 들었다는 것은 향후 메이저리그에서 일류 플레이어로 성공할 가능성이 꽤나 높다는 것을 뜻하지요. 참고 삼아 당시 레딩과 함께 탑100에 올랐던 주요 선수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최상위권을 제외한 근처만 살펴봐도 제이크 피비(40위), 알버트 푸홀스(42위), 브렛 마이어스(47위) 등이 있구요, 레딩의 아래로는 카를로스 잠브라노(68위),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71위), 칼 크로포드(72위), 조엘 피네이로(80위), 애드리언 곤잘레스(89위), 미겔 카브레라(91위), 아담 웨인라이트(97위) 등이 함께 탑100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이라면, 당시 레딩이 얼마나 큰 기대를 받았던 유망주인지를 위의 이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레딩은 2001년에도 더블A와 트리플A에서 20경기에 선발 등판해 14승 3패 방어율 2.88의 아주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그 해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50이닝 이상을 던지며 신인 기준을 넘겨버리는 바람에 2002년 프리시즌 탑100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만약 랭킹에 포함되었더라면 20위권도 노려볼 수 있었다는 평가였지요.(BA 탑100은 신인 자격이 있는 선수들만 가지고 평가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2001~02년의 성적은 평범했지만, 2003년 10승 14패 방어율 3.68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게 드러났지요. 마이너리그에서는 준수한 이닝이터였던 레딩이 메이저리그에서는 ‘5이닝 피처’에 불과했던 겁니다. 생각보다 많은 피안타와 피홈런이 문제였던 것이죠.
결국 레딩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채 그대로 정체되고 맙니다. 물론, 정체되었다 하더라도 메이리그에서 뛸 수 있을만한 수준은 되었지만, 구단과 팬들이 기대했던 에이스급 기량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지요. 그리고 그런 수준으로 2009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37승 57패 방어율 4.95라는 평범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96년 BA 랭킹 7위에 빛나는 롯데 가르시아, LG에서 뛰었던 페타지니, 그리고 최희섭, 봉중근, 송승준 등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AAAA급 선수였던 겁니다. 이미 마이너리그 수준을 탈피하여 그런 수준에서는 무적의 포스를 풍기지만, 이상하게도 메이저리그에만 올라가면 적응을 하지 못하는 특이한 선수들. 레딩도 그런 ‘비운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한국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봅니다. 그 동안의 전례로 봤을 때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의 선수보다는 AAAA급 선수들이 한국에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았으니까요. 게다가 32살이라는 적당한 나이, 충분한 메이저리그 경력, 그리고 올 시즌에도 트리플A에서 선발로 활약하면서 거둔 뛰어난 성적 등등. 한국이라는 생소한 나라의 문화에만 적응하는데 성공한다면, 레딩은 역대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뛰어난 피칭을 한국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긍정적인 요인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당장 삼성에 영입되기 직전까지도 트리플A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했다는 점이 특히 그렇지요. 한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경력의 선수들은 모두 구원투수 출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선발로 새로이 적응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또 걸렸죠. 하지만 레딩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이미 충분한 경험과 경력, 그리고 당장의 실적을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사실 레딩이 내년에도 삼성에서 뛸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어지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레딩은 다시 메이저리그행을 노리거나, 아니면 거액을 받고 일본으로의 진출을 타진할 확률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장은 삼성의 전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주는 확실한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시차에 적응이 덜 된 상황에서 등판하게 될 한두 경기 정도를 제외하면, 이후로는 매우 좋은 피칭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포스트시즌에까지 이어진다면, 삼성은 SK를 넘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레딩은 그 정도 평가를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선수라는 생각이 드네요. 적어도 히메네스나 사도스키 등과는 레벨이 다른 선수임이 분명합니다.
레딩의 한국 진출, 무척이나 신선하게 느껴지고, 또한 기대가 되는군요. 그 동안 메이저리그 출신의 선수들 중 일부가 실망을 안겨주는 바람에 이번에도 팬들의 의혹 어린 시선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레딩은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적어 보인다는 점에서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삼성의 발 빠른 행보 덕분에 프로야구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생겼군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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