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 오네요. KIA 타이거즈의 윤석민이 ‘공황장애’ 증세로 인해 입원했다는 소식입니다. 24일 사직 롯데전을 마치고 광주로 돌아간 윤석민이 심한 두통을 호소했고, 그에 따라 25일 광주 한국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세가 있어 오늘(26일)은 심리치료 전문인 대전선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을 예정이라고 하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올 시즌 이대호와 더불어 리그 최고타자 경쟁을 벌이던 홍성흔은 지난 15일 광주 경기에서 윤석민의 투구에 손등을 맞아 현재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2로 동점인 상황의 1사 2루인 상황에서 나온 몸에 맞는 공이었기에 고의성은 전혀 없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그 결과 롯데는 리그 최고수준의 타자를 잃어야만 했고, 상대적으로 그 경기를 통해 롯데와의 승차를 2.0게임으로 좁힌 KIA의 4강 진출 가능성이 상당히 올라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24일 사직에서는 또 한 번 난리가 났습니다.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윤석민이 던진 공이 조성환의 관자놀이 부근을 강타했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헬멧 위에 맞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다간 지난해의 악몽이 되풀이될 뻔 했습니다. 15일 경기에서의 몸에 맞는 공은 스윙을 하다 미쳐 피하지 못한 홍성은의 실수도 있었다면, 24일 조성환에게 던진 공은 명백한 윤석민의 실투였습니다.
9일만에 두 명의 타자, 그것도 둘 다 롯데의 3번 타자이며, 타율 2위와 3위에 올라 있는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를 맞춰버린 겁니다. 조성환이 머리에 공을 맞은 순간 롯데 팬들의 머리 속에는 2가지 장면이 동시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지요. 지난해 채병용의 투구에 광대뼈를 맞았던 조성환의 모습과, 불과 9일전 손등을 맞고 괴로워하던 홍성흔의 모습 말입니다.
사직구장은 그 순간 난장판이 됐고, 롯데팬들은 또 한번의 추태를 보여주며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동일한 상황이라면 우리나라 7개 구장의 상황은 모두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는 가는 상황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용납될 수 있는 행동은 절대 아닙니다. 아무리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더라도 개개인의 사사로운 복수가 법에 저촉되듯, 그날 각종 오물을 던지며 발광하던 군상들은 공공장소에서 난동을 벌인 ‘범죄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기분 나쁘다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그게 사람입니까, 짐승이지!!
결국 그 경기에서 KIA가 이겼고, 팬들의 비난은 롯데팬과 윤석민 양쪽을 향했습니다. 롯데팬들의 달갑지 않은 행동에 강한 비난을 하는 반면, 윤석민을 향한 의혹의 시선도 상당수 존재했습니다. 9일 만에 한 팀의 3번 타자를 두 번이나 공에 맞춰서, 그것도 적지 않은 부상을 입혔으니 당연할 수밖에요. 일부 롯데팬들은 고의일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윤석민이 일부러 그랬다’며 근거도 없는 음모론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과거 윤길현에게 그토록 분노했던 KIA팬들은 윤석민의 웃음까지도 옹호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각자의 팔은 안쪽으로 굽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양쪽 모두 다소 비틀려서 접히고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네요.
사실 사태가 이토록 커진 것은 윤석민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조성환이 공에 맞은 상황에서 그 사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3가지는 있었으니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심판이 윤석민을 퇴장시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그것을 곧장 실행하지 않은 당시의 이영재 주심이야 말로 사건을 이렇게까지 키운 장본인 중 한 명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규정에는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머리에 맞았을 때는 고의성 여부와 관계없이 즉각 퇴장을 명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맞은 부위가 머리였다면 일단 퇴장을 명하는 것이 이후의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며, 이 블로그를 통해 여태껏 꾸준히 주장해왔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주심의 퇴장 명령은 선수들 간의 감정은 물론 관중들의 지나친 흥분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미 윤석민은 9일 전에 홍성흔을 맞춘 전력이 있지요. 그렇다면 아무리 고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곧바로 퇴장을 명했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심판들은 저런 경우에 사태를 방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사건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건 직후 곧바로 윤석민을 퇴장시켰다면, 롯데팬들의 분노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겁니다.
두 번째 방법은 조범현 감독이 윤석민을 교체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싸이코가 아닌 이상 그런 상황에 처한 윤석민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관중들은 분노하여 그를 향해 욕을 퍼붓고 있었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경기는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9일만에 같은 팀의 주축 선수를 또 다시 맞췄으니, 윤석민 스스로도 그러한 공교로움에 크게 당황했을 겁니다.
하지만 조범현 감독은 윤석민을 배려하기 보단 ‘승리’를 선택했습니다. 이미 윤석민이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간 상황이라,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선수도 없었죠. 9회말 7-5로 2점 앞선 상황에서 2사 1루의 이대호 타석, 몸을 풀지 않은 투수가 올라가면 경기가 뒤집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KIA가 4강을 완전히 포기했다면 패배를 각오하고서라도 교체를 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조범현 감독은 윤석민을 끝까지 밀고 나갔고, 게다가 이대호에게는 실질적인 고의4구까지 던져가며 경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결국 승리를 따내긴 했지만, 글쎄요… 사실 익사이팅 존의 관중들이 그나마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서 다행이지, 그들 중 누군가가 악한 맘을 먹었다면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윤석민을 습격할 수도 있을 만큼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과연 그 시점에서의 1승이 윤석민이란 미래가 창창한 투수를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했을까요?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아주 원초적이고 무식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효과적이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롯데측에서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의아해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로 벤치 클리어링입니다. 조성환이 공에 맞은 순간 대기타석에 있던 이대호를 필두로 롯데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갔어야 했다고 전 봅니다.
고의성 여부는 이미 사건의 핵심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9일 만에 두 명의 주력 타자가 같은 투수의 공에 맞았다’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한 번 그라운드로 몰려 나가 드잡이질을 벌이는 편이 낫습니다. 축구에서의 반칙이 일종의 작전이듯, 야구에서의 벤치 클리어링도 그런 작전처럼 활용할 수가 있지요.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롯데에서 벤치 클리어링을 시도했다면, 윤석민은 자동으로 퇴장당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마도 그 경기에서 롯데가 승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랬다면 롯데팬들의 분노가 저토록 심해지진 않았겠지요. 벤치 클리어링을 한다고 하여 선수들끼리 심각한 몸싸움이 오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번처럼 고의가 아님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적당한 수준에서의 연출로도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의 3가지 방법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윤석민은 마운드를 지켜야만 했고, 그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만 것이지요. 윤석민은 6월말 라커를 가격하기 전에도 자신의 미니 홈피에 스스로 힘든 심경을 밝힌바 있고, 그 결과가 자해로 나타났었습니다. 아직은 심적으로 완전히 성숙한 선수는 아닙니다. 이제 만 24세의 선수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윤석민이 던진 두 개의 사구(死球)가 고의일 리는 결코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고의로 상대 선수를 맞추려는 정신 나간 선수는 없지요. 그것이 윤석민처럼 여린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구요. 오히려 그런 여린 성격이 9일 전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 몸 쪽 공의 제구를 흐트러뜨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작 공에 맞은 홍성흔과 조성환도 그러한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윤석민의 행동에 고의성이 없다며 옹호하고 나섰지요. 그들이 좋은 선배임을 느낄 수 있는 아주 훈훈한 모습이지요.
이유야 어떻든, 단단한 공을 도구로 사용하는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사람의 머리를 향해 공이 날아간다는 건 쉽게 용납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실력이 없는 선수는 함부로 마운드에 세울 수도 없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실수’임이 분명한 상황에서 ‘고의’로 몰아가며 사건을 더욱 키울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윤석민이 잘못 한 것은 분명 맞습니다. 실수라 하더라도 교통사고가 나면 운전자는 책임을 지게 되어 있죠.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두 선배를 경기에 뛰지도 못할 정도의 부상을 입혔다는 것은 그에 대한 책임을 윤석민이 느껴야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죽을 죄’는 아니지요. 그리고 그 미안함은 당사자들끼리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홍성흔과 조성환은 이미 용서를 한 상황이고, 이제 남은 것은 윤석민이 스스로의 미안한 감정을 털어버리고 선배들의 용서에 감사함으로 보답하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혹시나 이 일로 인해 윤석민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같은 몹쓸 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가 무사히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는 KIA의 에이스임과 동시에 한국 프로야구의 보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니까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야구팬들의 크나큰 손해일 테니까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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