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락이라 쓰고, ‘勝-lock’이라고 읽는다." 팀의 승리를 꼭꼭 걸어 잠그는 믿음직한 승리 지킴이라는 뜻이다. 재기 넘치는 넥센 히어로즈 팬들이 새로운 소방수 손승락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다.
손승락은 올 시즌 생애 첫 풀타임 마무리로 나서서 구원왕까지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물론 최대 경쟁자인 두산 이용찬의 어이없는 중도하차라는 운이 따랐고, 30세이브에도 못 미치는 '미니 구원왕'이라는 쑥스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52게임에서 62이닝을 소화하면서 거둔 26세이브(블론세이브 2회)와 평균자책점 2.47의 호성적은 질적인 면에서 올 시즌 8개 구단 마무리 중 최고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손승락이 구원왕을 확정하던 날, 넥센 김시진 감독은 제자의 첫 타이틀 수상을 축하하며 특별한 찬사의 말을 전했다. "올 시즌 여기까지 오는데 손승락의 공헌이 가장 컸다."
김시진 감독은 올 시즌 개막 직전까지 마무리 후보를 결정하지 못해 속을 끓여야했다. 지난 2008년 현대의 뒤를 이어 창단한 이래 넥센은 늘 뒷문이 고민이었다. 부동의 마무리였던 조용준의 재활이 길어지며 공백기가 늘어났고, 한때는 일본인 투수 다카스 신고를 영입해 마무리 투수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집단 마무리체제를 가동한 넥센은 선발 투수들이 조기 강판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불펜에 부하가 걸렸다.
올 시즌 마운드의 전면적인 세대교체를 시도한 김시진 감독은 고심 끝에 경찰청에서 복귀한 손승락에게 마무리의 대임을 맡겼다. 많은 이들은 경험과 안정감이 필수인 마무리에 초짜투수를 기용한 김시진 감독의 결정에 우려를 금하지 못했다.
프로무대 데뷔 초기만 해도 손승락은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평범한 투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구위에 비해 다소 소심하고 수동적인 마인드가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손승락이지만, 경찰청 생활 이후 성격을 고치고 마운드 위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마인드로 변했다. 성적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늘어나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시진 감독은 이미 경찰청 시절부터 조용함 뒤에 가려진 손승락의 승부근성과 잠재력을 눈여겨봤다. 하지만 4년 만에 프로야구 1군 무대에 복귀하는 손승락으로서는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김시진 감독은 "손승락은 사실 선발로 던지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팀 사정상 마무리 역할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드러내지는 못해도 부담이 크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한 시즌동안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제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시즌 초중반에는 팀이 부진에 빠지면서 자주 등판하지 못하고 사실상 개점휴업상태로 보낸 것도 여러 날이었다. 선발과는 달리 들쭉날쭉한 등판일정을 감수해야하는 불펜 투수로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진한 팀 성적 속에 세이브를 올리고도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도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즌 내내 넥센 마운드에서 기복 없이 가장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투수는 바로 손승락뿐이었다. 금민철, 고원준, 김성현 등 많은 재능들이 올 시즌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장기레이스에서의 기복 없는 ‘꾸준함’과 ‘뒷심부족’을 늘 아쉬워했던 김시진 감독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보직을 가장 성실하게 수행해준 ‘조용한 에이스’ 손승락의 듬직한 활약에 고마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강정호와 황재균을 발굴해냈듯이 손승락의 성장은 올해도 7위라는 아쉬운 성적에도 넥센의 2010년이 결코 실패한 것만은 아니라는 작은 희망의 상징과도 같다. 내년에도 넥센의 승리는 손승락의 승낙을 받아야할 것이다. 단, 손승락을 현찰이나 상품으로 취급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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