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제 시리즈를 1승 1패로 만든 두산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경기이긴 했지만, 분명 승리를 거뒀으니까요. 덕분에 3차전에서는 김선우를 내세워 역전을 노릴 수도 있게 되었죠. 한글날인 단 하루의 휴식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두산의 이번 PO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 히메네스, ‘에이스’의 의미를 가르쳐주다!
이번 포스트시즌 내내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에이스급 투수가 경기를 지배하며 승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준PO 2차전에서 사도스키(6이닝 무실점)와 김선우(7이닝 1실점 비자책)가 좋은 맞대결을 펼친 것이 유일했는데, 둘 다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죠. 사도스키의 피칭이 그다지 압도적이지도 않았고요.
헌데 드디어 이번 PO 2차전에서 두산의 에이스 히메네스가 ‘에이스란 이런 것이다’를 확실하게 보여주는군요. 7이닝 동안 삼성의 만만찮은 타선을 상대로 5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승리! 비로 인해 경기 시작부터 지연이 되는 등 리듬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보여준 그야말로 환상적인 피칭이었습니다.
1회 시작과 더불어 위기를 맞았지만, 그건 오재원의 호수비로 잘 넘겼지요. 그 때부터 5회 1아웃까지 무려 12명의 타자를 연속해서 범타처리하는 멋진 모습으로 삼성 타자들을 압박했습니다. 구위, 컨트롤, 로케이션 등이 거의 완벽에 가까웠죠. 정말 오랜만에 눈이 정화되는 멋진 피칭으로 야구팬들에게 멋진 경기를 선물했습니다.
히메네스가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동안 두산 역시 직구 스피드가 올라간 배영수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3회초의 1점은 볼넷-안타-희생번트-희생플라이라는 너무나 손쉬운 과정을 통해 얻은 1점이었죠. 반대로 삼성의 입장에서는 너무 허무하게 내준 1점이었을 겁니다.
두산은 6회에도 ‘그들다운 야구’로 3점을 더 얻었습니다. 호쾌한 홈런포로 점수를 내는 것은 두산의 득점 공식 중 하나일 뿐, 정말 두산만이 할 수 있는 야구는 스피드를 바탕으로 하여 여러 가지 작전이 가능한 ‘센스있는 야구’니까요.
‘아기곰’ 정수빈의 센스 넘치는 푸시 번트 안타와 오재원의 좌전 안타, 권혁으로 투수가 교체된 후 얻은 이종욱의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인한 무사 만루의 찬스. 그리고 거기서 터지는 김동주의 2타점 적시타! 야구센스와 타격기술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2점은 그 과정이 너무나 매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성열의 ‘유격수 희생플라이’ 때 홈으로 파고든 이종욱의 재치와 과감성, 그리고 스피드는 그야말로 이날 경기의 백미였습니다.
사실 그 플레이는 삼성의 유격수 김상수나 중견수 이영욱이 잘못했다기 보단 이종욱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좀 더 엄격하게 보자면 이영욱이 미리부터 콜을 하며 빨리 달여와야겠지만, 이미 김상수 역시 자리를 잡고 있던 상황이었죠. 무엇보다 그 상황에서 홈으로 뛸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겠습니까? 센스와 스피드,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이종욱이니까 가능한 플레이였습니다.
탄성을 자아내는 오재원의 그림 같은 호수비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등, 히메네스는 야수들의 적절한 도움 속에 7회까지 마운드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아래에서 언급하겠지만, 히메네스가 이런 좋은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이날 두산이 승리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 삼성의 벤치가 롯데와 달랐던 점
이 경기에서 삼성 타선이 롯데와 다른 점 하나가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니, 타자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코칭스태프의 차이라고 봐야겠지요. 삼성 타자들은 이날 두산 투수진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아주 단순한 것이며, 삼성은 그것을 실행했지만 롯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히메네스는 7회까지 총 24명의 타자를 상대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습니다. 안타는 5개밖에 맞지 않았고 볼넷도 1개밖에 없었죠. 심지어 삼진도 2개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 맞춰 잡았다는 뜻이죠. 그런데도 투구수가 110개나 됐습니다. 적정수준이라는 이닝당 평균 15구 이상을 던진 셈이죠. 왜 그랬을까요?
삼성 타자들이 저 24번의 타석에서 초구에 방망이를 휘두른 것은 딱 2번뿐이었습니다. 그 2번을 포함해 2구 이내에 스윙을 한 것 역시 9번에 불과했죠. 초구를 쳐서 안타를 만든 선수도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초구에 섣불리 손을 대서 허무하게 아웃이 되는 선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끈질기게 기다리는 야구를 했고, 그 결과 히메네스의 투구수가 점점 많아졌죠.
만약 삼성 타자들이 롯데 선수들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타석에 들어서서 초구부터 방망이를 휘둘렀다면, 3차전 경기는 히메네스의 100구 이내 완봉승으로 끝났을 겁니다. 그만큼 이날 히메네스의 피칭은 훌륭했고, 컨디션도 좋았으니까요.
하지만 삼성의 벤치는 알고 있었던 것이죠. 두산의 불펜이 완전히 붕괴되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2차전 경기에서 까다로운 투수는 상대 에이스인 히메네스 뿐이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히메네스만 마운드에서 내려가게 만들면 경기 후반에 얼마든지 역전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삼성 타자들은 8~9회에만 3점을 뽑았고, 아쉽게 역전에는 실패했지만 정말 최후의 순간까지 그 누구 하나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딱 하나의 계산착오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히메네스의 컨디션이었죠. 히메네스의 투구가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끝내 무너지지 않고 7이닝을 버텨줬으니까요. 하지만 히메네스가 1이닝만 일찍 마운드에서 내려갔다면, 이 경기의 승자는 삼성이 되었을 겁니다.
이런 삼성 타자들의 타격에 임하는 자세는 벤치의 지시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렇게까지 초구를 건드리지 않을 리가 없지요. 실제로 홍상삼을 상대한 1차전에서는 3회까지만 놓고 봐도 6명이나 되는 타자들이 초구부터 적극적인 공략에 나섰으니까요. 이번 경기만 유독 초구 스윙이 없었다는 건, 지시가 있었다는 뜻이죠.
삼성의 벤치는 두산에게 승리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선수들에게 실행하게끔 만들어 승기를 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8~9회에 확실하게 드러났지요. 히메네스의 컨디션이 유난히 좋지만 않았더라도, 이 작전은 성공했을 겁니다. 경기 후반 두산 불펜의 붕괴와 더불어서 말이지요.
롯데가 준PO 3~4차전에서 동일한 작전을 들고 나왔다면, 지금 삼성의 상대는 두산이 아닌 롯데였겠을 겁니다. 딱히 어려운 작전도 아닙니다. 감독이나 타격코치 둘 중 한 명이 “초구는 절대 치지 말고, 기왕이면 2구까지는 기다리는 타격을 해라”라는 지시만 내리면 그걸로 충분하지요. 그 아주 사소한 지시 하나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시합이 바로 준PO 3~4차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롯데 벤치는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고, 타자들은 상대 투수를 얕보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덤비는 타격으로 일관하다가 자멸하고 말았죠. 이것이 삼성과 롯데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타자들의 차이라기 보다는 벤치의 능력 차이죠. 선동열과 로이스터의 차이라는 뜻입니다.
이번 PO 1차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얻은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이 그냥 역전극에 성공한 것이 아니죠. 두산의 불펜을 계속해서 끌어내다 보면 그 밑바닥이 보인다는 것을 삼성의 코칭 스태프는 읽고 있었던 겁니다. 만만했던 홍상삼이 마운드에서 내려가자 오히려 삼성 타자들은 초구 공략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불펜진의 투구수를 계속 늘려가며, 기회를 기다렸죠. 그리고 그것은 성공했습니다.
아마도 삼성은 김선우가 등판하는 3차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김선우를 두들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김선우만 끌어 내리면 경기 후반은 자신들이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두산이 3차전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3차전 이후의 전망은?
두산이 2차전에서 이기긴 했지만, 지금 현재 상황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김선우가 히메네스 같은 피칭을 보여줄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또 다시 삼성의 저런 작전 앞에서 경기 후반에 불펜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자칫하면 잠실의 3~4차전에서 그대로 시리즈가 끝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삼성의 입장에선 원래 4선발 격이었던 배영수를 히메네스와 상대하게 하여 장원삼과 레딩을 아껴둔 결과가 되었죠. 3~4차전은 선발 매치업에서부터 삼성이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경기 중반 이전에 반드시 리드를 잡고 있어야 하는 두산으로선 매우 불리한 상황에 이른 것이죠.
결국 이번 PO는 타격보다는 투수력에 초점이 맞춰지는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당초 예상대로 삼성의 투수력이 아닌 두산의 투수력이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지요. 그만큼 두산의 불펜이 불안하고, 현재로선 딱히 대안도 없습니다. 인해전술조차 쓸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2차전 9회말에 내준 2점은 물론 투수들의 잘못보다는 야수들의 실책으로 인한 원인이 더 큽니다. 하지만 수비 잘하기로 소문난 고영민과 손시헌이 실책과 오판을 할 정도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상황이라는 점이 문제지요. 그 압박감은 두산 불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러한 수비 실책을 덮어줄 수 있을 만큼의 힘이 불펜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요.(그래도 임태훈이 보여준 마지막의 삼진 2개는 정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멋있었습니다!)
두산으로선 어떻게든 김선우가 등판하는 3차전에서 장원삼을 꺾고 승리해 경기를 5차전으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다시 한 번 히메네스를 마운드에 세울 수 있으니까요. 비로 인해 연기되는 경기가 나온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과연 그러한 ‘천운’이 두산을 따라줄 진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시리즈는 4차전에서 끝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미러클’ 두산이 다시 한 번 모두의 예상을 깨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주길 기대해 봅니다. 그것이 두산이라는 팀과 김경문 감독의 매력이니까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