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너무나 재미있네요. 한 마디로 그냥 ‘짱’입니다. 더 이상의 표현이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이번 PO는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모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 두산이나 삼성의 팬만이 아닌, 한국의 야구팬 모두가 재미를 느끼고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시합이 매번 펼쳐지고 있습니다. 양 팀의 선수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네요.
하긴, 그럴 만도 하지요. 이 경기가 있기 전까지 양 팀의 포스트시즌 총 상대전적은 16승 1무 16패로 완벽한 동률. 김경문 감독과 선동열 감독이 양 팀의 지휘봉을 잡은 2005년 이후 정규시즌에서의 상대전적도 54승 3무 53패로 두산이 고작 1승 앞서 있을 뿐이지요. 한국 프로야구에서 곰과 사자의 대결은 언제나 막상막하였고, 그 결과가 이번 PO에서 이토록 재미있는 경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3경기 연속 불펜을 총동원한 1점차 박빙의 승부, 보는 내내 가슴 졸이는 명경기가 펼쳐졌지요. 이로써 두산은 모두가 불리하다고 했던 이번 시리즈에서 2승을 선취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4차전에서 시리즈를 마무리 짓고, SK와 싸울 준비를 하는 것뿐입니다. 두산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그런 경기였습니다.
▲ 김선우 vs 장원삼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
3차전 최대의 이슈는 다른 무엇보다도 올해 정규시즌 동안 서로에게 강했던 좌우완 국내파 에이스들의 맞대결이었습니다. 두산 선발 김선우는 삼성을 생대로 3승 1패 방어율 3.86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삼성 선발 장원삼은 두산을 상대로 4승 무패 방어율 3.04의 더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이들 두 선발의 호투와 어우러지는 멋진 투수전을 기대했었죠.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오히려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요? 에이스들끼리의 맞대결은 아주 싱겁고, 실망스럽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삼성은 이번에도 1,2차전과 마찬가지로 ‘지공’을 들고 나왔습니다. 농구나 축구만 지공이 가능한 것이 아니죠. 야구도 가능합니다. 어지간하면 초구를 치지 않고 상대 투수의 투구수를 늘리며 천천히 공략하여 경기 후반을 노리는 것인데요. 이번에는 단순히 투구수를 늘리는데 그치지 않고, 김선우를 두들기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김선우의 컨디션이 딱히 나빠 보이진 않았습니다. 구위 자체는 준PO 당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삼성 타자들이 철저히 기다리는 자세를 취하며 유인구에 전혀 속지 않았고, 결국 제구가 흐트러진 김선우가 버티질 못했죠. 1회부터 3점을 허용하며 불안한 출발을 하더니 끝내 2회를 채우지 못하고 1.1이닝 동안 5피안타 3사사구 4실점이란 최악의 피칭을 한 후 마운드에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준PO 5차전의 승리투수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장원삼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간신히 무실점으로 넘기긴 했지만, 1회에만 25구를 던지는 등 출발이 불안했죠. 결국 2회 손시헌의 2루타와 양의지의 적시타로 1점을 내주더니, 3회의 시작과 동시에 3연속 안타로 1점을 더 허용한 후 권오준으로 교체되었습니다. 부진한 김현수가 1회와 3회의 찬스를 모두 무산시키는 바람에 실점이 많지 않았을 뿐, 2이닝 동안 7피안타 1볼넷 2실점의 상당히 불만스런 기록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팬들이 기대했던 투수전은 없었습니다. 특히 삼성은 1~3차전을 모두 합해 선발 투수 3명이 총 11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삼성이 불펜의 깊이에서 우위에 있다곤 해도, 선발이 이렇게까지 버텨주지 못한다면 여유가 사라질 수밖에 없죠. 이번처럼 불펜이 두산의 강타선을 상대로 7이닝 이상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두산에 비해 상황이 딱히 낫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 펄펄 나는 정수빈, 부진한 김현수
포스트시즌에서 ‘경험’이란 요소가 얼마나 불확실한 요소인지를 보여주는 선수가 두 명 있습니다. 준PO에 이어 이번 PO에서까지 그 명암이 확실하게 갈리고 있는 ‘아기곰’ 정수빈과 ‘타격기계’ 김현수가 바로 그들입니다.
준PO 4차전에서 9회 3점 홈런을 터뜨리며 시리즈의 분위기를 두산 쪽으로 확실하게 가져온 1등 공신 정수빈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팀의 주력 멤버로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습니다. 준PO에서 6타수 2안타(1홈런) 4타점의 좋은 타격감으로 눈도장을 찍더니, PO에서는 아예 팀의 주전 1번 타자로 고정되어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1,2차전에서 기록한 안타는 1개에 불과했지만, 4개나 되는 4사구를 얻어 총 10번의 타석에서 무려 5번이나 출루하며 5할의 출루율을 기록했습니다. 1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100%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지요. 바로 이런 정수빈이 있기 때문에, 김경문 감독은 이종욱을 3번으로 기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수빈의 활약은 이번 3차전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1회의 시작과 더불어 안타를 뺏어내며 장원삼의 기를 꺾었고, 2회의 투수 직선타도 사실 매우 잘 맞은 타구였죠. 그리고 찾아온 운명의 4회말, 정수빈은 2점차로 뒤지고 있던 1사 1,2루의 찬스 상황에서 삼성의 바뀐 투수 정현욱의 5구째를 통타해 좌중간을 가르는 싹쓸이 2타점 3루타를 기록했고, 이후 이종욱의 내야안타 때 홈을 밟아 역전 득점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선두타자로 타석에 섰던 6회에도 볼네으로 출루한 후 고영민의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았고요. 7회에는 채태인의 잘 맞은 타구를 멋지게 슬라이딩 캐치하는 좋은 수비까지 보여주었지요. 만약 그대로 경기가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면, 이 경기의 MVP는 분명 정수빈이었을 겁니다. 정수빈으로선 8회에 경기가 동점이 된 것이 참 아쉬웠겠죠.
반면 두산 최고의 타자랄 수 있는 김현수는 이번이 4번째 경험하는 포스트시즌임에도 ‘가을 울렁증’을 떨쳐내지 못하고 고개 숙인 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롯데와의 준PO에서는 17타수 2안타, 무엇보다 팀의 중심타자로서 단 하나의 타점도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였지요.
그 결과 이번 PO 1차전에서는 아예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고, 대타로 들어선 9회초의 타석에서도 1루 땅볼로 물러났습니다. 2차전에서도 볼넷 2개를 얻었지만, 병살타 하나를 포함해 2타수 무안타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3차전, 6번으로 강등된 김현수는 1회초 2사 만루에서는 2루 땅볼, 3회초 1사 1,3루 찬스에서는 유격수 앞 병살로 물러나며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두산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된 4회가 시작되기 전, 그는 고영민으로 교체되어 벤치로 물러났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좌타자인 그가 조금만 기대에 부응해줬더라도, 두산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경기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 김경문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 미련? 믿음? 신뢰?
김선우가 최악의 피칭을 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지만, 이후 이현승(2이닝)과 왈론드(3.2이닝)가 합쳐서 5.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죠. 그 사이 두산은 6-4로 역전에 성공했고, 그렇게 7회가 끝날 때만 하더라도 승기는 두산 쪽에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영이 경기를 미궁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죠.
이걸 고집이나 미련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선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올 시즌 1점대 방어율로 홀드 1위를 차지한 정재훈은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이용찬이 불미스런 사고로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마무리의 중책을 맡게 되었죠. 그러나 정재훈의 올 가을은 가혹하기만 했습니다. 준PO와 PO에서 경기 막판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3개의 홈런을 허용하며 팀이 패한 3경기에서 모두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상황이 그렇다면 포기할 만도 한데, 김경문 감독은 그렇지 않더군요. 이현승과 왈론드가 기대 이상으로 잘 던져준 덕분에 8회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두산 불펜은 믿을 수 있는 두 명의 선수를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정재훈 말고도 고창성과 임태훈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도 당연히 고창성이 8회, 임태훈이 9회를 막고 경기를 끝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마운드에 올라온 것은 정재훈이습니다. 정재훈을 믿었다기 보다는 이후의 싸움에서 두산이 이겨나가기 위해선 정재훈의 부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준 것이겠죠. 하지만 결국 그것은 또 하나의 독이 되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첫 타자 박진만은 삼진으로 처리했지만, 끝내 ‘홈런의 악몽’을 이겨내지 못한 정재훈은 뒤이어 나온 대타 조영훈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고 맙니다. 1차전의 기억도 있고 하니, 경기장의 분위기가 한 순간 싸늘해진 것은 당연하지요. 구원 등판한 고창성 역시 그 요상한 분위기 속에서 뭐에 홀린 듯 쉽게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김경문 감독의 속내가 무엇인지 100% 알 수는 없지만, 때로는 오히려 그러한 ‘믿음’으로 인해 선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수를 향한 감독의 믿음이 무조건 약이 되는 것은 아니죠. 선수의 심리와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작정 기회만 준다면, 그건 오히려 그 선수를 재기불능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이 경기의 진정한 볼거리, 임태훈 vs 안지만
정재훈과 고창성이 1점씩을 허용하여 동점이 된 상황, 분위기 상 삼성팬들이 그토록 외치던 ‘약속의 8회’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두산에는 최후의 카드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2차전의 영웅 임태훈이었죠. 위기 상황에서 등판한 임태훈은 조동찬을 멋지게 삼진 처리하며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8회말, 선동열 감독도 주력 불펜을 대부분 소모한 상황에서 ‘마지막 카드’인 안지만을 올렸습니다. 안지만 역시 8개의 공으로 3명의 타자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처리하며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드디어 양 팀의 불펜 에이스들이 최후의 대결에 돌입한 것이죠. 이 싸움이야 말로 이번 플레이오프 3차전 경기의 최대 볼거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9회, 임태훈은 3번부터 시작되는 삼성 타선을 무실점으로 잘 막았습니다. 2사 후 채태인에게 안타를 허용하긴 했지만, 2차전부터 컨디션이 좋았던 박진만을 또 다시 삼진으로 잡아내며 9회를 마무리했습니다. 2차전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삼진 2개로 불식시키며 팀을 구했었는데, 그 경기의 결과가 임태훈에게 심리적인 안정감과 자신감을 안겨준 것 같더군요.
그리고 찾아온 9회말, 안지만은 큰 위기를 맞이합니다. 1사 후 타석에 들어선 ‘두목곰’ 김동주에게 큼지막한 타구를 맞았고, 외야수의 실책까지 겹치는 바람에 1사 3루의 위기 상황을 맞이했죠. 그러나 안지만의 구위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이어진 1사 만루의 끝내기 위기 상황에서 2타자를 연속 플라이 아웃으로 잡아내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는데 성공했습니다.
10회초까지 책임진 임태훈은 2.1이닝 동안 41개의 공으로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 안지만은 2이닝 동안 35개의 공을 던져서 2피안타 2볼넷 무실점. 이들이 마운드를 지키던 2이닝 동안이 이 경기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 드라마틱한 최종장
임태훈과 안지만은 팽팽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마운드에서 내려갔지만, 결국 그 후 양 팀의 불펜은 모두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삼성은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는 정인욱을 10회말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성공하는 듯 보였죠. 정인욱은 10회말의 세 타자를 고작 공 6개로 간단하게 처리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어진 11회초 ,김경문 감독은 투구수가 40개를 넘긴 임태훈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죠. 11회초에 등판한 성영훈-김창훈-김성배로 이어진 두산의 마지막 계투진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몸에 맞는 공 2개를 허용하는 등 맥없이 허물어지고 말았으니까요. 채상병의 몸에 맞는 공으로 역전에 성공한 상황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습번트로 내야안타를 만들어낸 김상수의 기지와 센스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독히도 극적인 반전드라마는 결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산이 6-8로 2점 뒤지고 있던 11회말, 패전투수가 될 뻔한 성영훈이 패전을 면하고, 실질적으로 2점을 허용한 장본인인 김성배가 승리투수가 되는 놀라운 시나리오가 두산 타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종욱의 중견수 앞 안타 이후 이어진 김동주와 고영민의 연속 볼넷으로 만들어진 무사 만루의 찬스. 타석에 들어선 임재철은 정인욱의 5구째를 통타해 좌익수 키를 넘기는 큼지막한 2루타로 8-8 동점을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석에 들어선 주인공은 바로 9회말의 결정적인 찬스 상황에서 태그업도 불가능한 얕은 플라이를 때려 끝내기 찬스를 무산시킨 손시헌이었지요.
그리고 손시헌은 두 번의 실수는 없다는 듯, 끝내기 안타를 작렬시키며 근 5시간 동안 이어진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정말 경기를 보고 있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 수 없었던 감탄만 나오는 멋진 승부였습니다. 승리한 두산 선수들에겐 축하의 박수를, 패한 삼성 선수들에겐 위로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고픈, 그야말로 최고의 경기였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