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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전율의 SK, 새로운 ‘왕조 시대’를 열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0. 20.

1987년과 1990년의 삼성, 1991년 빙그레, 1994년 태평양, 2005년 두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그 해 열린 한국시리즈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4연패로 무너진 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준 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에서 전력을 소진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한국시리즈에서는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던 뼈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올해 한국시리즈도 비슷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이 두산을 상대로 5차전까지 치르는 접전을 펼쳤던 것이 이번 한국시리즈의 변수였다. 혈전 끝에 승리한 삼성의 팀 사기는 분명 높았지만, 그 여파로 인해 투입할 수 있는 투수가 제한되어 있다는 최대의 아킬레스건을 약점으로 지니고 있었다. 결국 삼성은 SK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4연패로 물러나며, 2010시즌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4전 전승으로 끝난 역대 여섯 번의 한국시리즈에서 세 번이나 4연패를 당한 팀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한국시리즈 4차전은 양 팀 모두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SK가 대구에서 한국시리즈를 끝내겠다는 각오를 다진 모습이 역력했던 반면, 삼성은 끝까지 조급증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타와 4사구 개수를 합친 숫자만 놓고 보면, 양 팀 모두 12개로 동일했다. 그러나 성급한 모습을 보인 삼성은 번번이 찬스를 살리지 못했고, SK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역대 한국시리즈를 살펴보아도 3연패에 빠진 팀이 4차전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번 한국시리즈는 이미 3차전의 결과로 모든 것이 갈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준우승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부족했던' 삼성

 

3차전도 그러했듯이, 한국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서는어느 팀이 보이지 않는 실수를 적게 하느냐가 승패와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실수를 줄여야 적시타도 나오고, 투수들의 호투가 이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삼성은 끝까지 조급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성에게는 두 번의 득점 찬스가 있었다. 6회 말 공격서 신명철의 안타와 김상수의 몸에 맞는 볼로 맞은 무사 1,2루 찬스가 바로 그것이다. 0-4로 리드 당한 상황에서 경기 중반에서의 한 점 추격은 삼성에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후속 타자로 나온 이영욱은 정우람의 유인구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대타 채태인 역시 삼진으로 물러나며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후 등장한 박한이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그마저 2루 땅볼로 물러나며 끝내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범타로 물러난 세 타자들의 모습에선자신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라는 조급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최소한 이영욱의 타석에서 진루타라도 나왔어야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 한 점이 아쉬운 상황에서 선동열 감독이 왜 보내기 번트 사인을 보내지 않았는지도 다소 의문이다. 4차점차라서 강공을 택했다면 그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일단 삼성으로선 1점을 뽑아서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을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삼성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온 것은 이어진 7회말이었다. 최형우의 2루타와 박석민의 몸에 맞는 볼로 만든 무사 1,2루 찬스가 또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한 조영훈이 또 다시 성급한 타격을 선보였다. 볼 카운트가 불리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2구만에 방망이가 나갔다. 결국 그는 3루수 파울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나며 주자를 진루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뒤이어 등장한 박진만과 신명철마저 각각 포수 파울플라이와 삼진으로 물러나며 또 다시 득점 찬스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선동열 감독은 이번에도 번트 지시를 하지 않았고, 결국 이 두 번의 공격 찬스에서 단 한 점도 내지 못한 것이 삼성의 직접적인 패인이었다.

 

작전 구사에서도 선동열 감독은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6, 7회 두 번의 결정적인 공격 찬스에서 한 번이라도 보내기 번트 사인을 지시했다면, 경기는 어떠한 방향으로 흐를지 모를 일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6, 7회의 강공 지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8회 말 2사 만루서 박석민의 밀어내기 몸에 맞는 볼로 1점을 따라 붙은 후 좌타자인 조영훈을 그대로 내보낼 것이 아니라 우타자인 강봉규를 대타로 투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상대가 좌완 김광현임을 감안할 때 그것이 더 상식적인 선수 운용이었을 텐데 선동열 감독은 그러지 않았고, 결국 조영훈은 3구 삼진으로 물러났다. 결국 강봉규는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김광현을 상대로 뒤늦은 1타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강봉규의 한 타이밍 빠른 기용이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조급증은 큰 경기에서건 정규 시즌에서건 선수들이 피해야 할 최대의 적이다. 3차전부터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은 삼성 선수들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그라운드 안에서 나타났다. 삼성이 플레이오프와 같은끈끈한 타력을 보여줄 수 없었던 요인이기도 했다.

 

선수들은 찬스가 찾아와도 그것을 살리지 못했고, 감독 역시 납득할만한 대타 기용이나 작전 지시를 하지 못해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래서야 빈틈이 거의 없는 SK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 전율의 SK, 왕조 시대를 열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SK 와이번스는 너무나 강했고, 누가 보아도 올 시즌 통합 챔피언의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경기력을 통해 스스로 증명했다. 1차전부터 4차전까지 전부 김성근 감독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됐고, 간간히 나타난 오차 역시 모두 수정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상황에 맞춘 투수 기용과 선수 구성이 매번 기가 막히게 잘 맞아 떨어졌다. 4차전의 선발 라인업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가장 컨디션이 좋은 팀의 중심타자인 박정권이 8번으로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상대 선발이 좌완인 장원삼이라 하더라도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라인업이었다. 헌데, 8번 타자 박정권이 4회의 찬스에서 2타점 2루타를 날리며 사실상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것이 우연이든, 아니면 필연이든, 어쨌든 그 밑그림과 결과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1차전을 제외한 2~4차전은 점수차도 그리 크지 않았다. SK가 낸 점수는 매 경기마다 4점에 불과했고, 그 정도는 잘만하면 한 번의 찬스로 따라잡을 수 있는 점수였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찬스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점수차는 2~3점에 불과했지만,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에게도 그 차이가 너무나 크게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분위기가 경기장을 지배했다. 그만큼 SK의 수비진은 탄탄했고, 그들이 자랑하는 좌완 불펜요원들은 하나 같이 막강했다.

 

더 이상 이번 한국시리즈에 대해 이런 저런 평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지 모른다. SK는 보는 이들에게 전율이 느껴질 정도의 막강함을 과시했고, 그 결과 승리했다. 그것이 전부다. 더 이상의 평가는 필요 없다. 스코어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간극이 양 팀간에 존재했고, 그것을 지켜보던 모든 팬들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2010시즌의 한국시리즈 최종 우승팀은 SK 와이번스로 결정되었다. 지난해 아쉽게 KIA 타이거즈에게 넘겨준 우승 트로피를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최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그리고 그 중 3번은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다. 이만하면 지금의 프로야구를 ‘SK 왕조시대라고 표현해도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프로 스포츠에서는 한 팀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우승을 차지하거나 우승권에 근접한 전력으로 리그를 지배하면 그것을 두고 ‘~~ 왕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메이저리그의 양키스 왕조 NBA레이커스-셀틱스 왕조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 표현은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도 건너왔고,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팬들에게 그 표현의 주인공으로 인정받은 것은 8~90년대의 해태 왕조가 유일했다.

 

현대가 98년과 2000, 그리고 2003~4년까지 4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위용을 떨쳤지만, ‘왕조라 표현하기엔 조금 부족했다. 분명 그 시절의 현대는 강했고, 좋은 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두산과 삼성이라는 훌륭한 라이벌이 2001년과 2002년 챔피언에 오르며 현대의 진격을 가로막은바 있다. 현대가 강하긴 했지만 과거의 해태나 지금의 SK처럼 라이벌이 없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반면 지금의 SK는 라이벌이 없어 보인다. 준우승을 차지한 작년에도 김광현과 박경완이 빠진 상황에서 정규시즌 막판 19연승의 신화를 창조하더니,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가는 혈전, 그것도 2연패 후 3연승이라는 극적인 시나리오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리고 모두가 SK의 체력적인 열세를 논하던 그 한국시리즈에서 매 경기마다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시리즈를 7차전까지 몰고 갔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SK의 징글징글한 전력을 느낄 수 있었던 시리즈였다. 올해 삼성이 SK를 상대로 보여준 모습을 감안하면, 작년의 SK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2007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2연패 후 4연승으로 패권을 차지했고, 2008년에도 1차전에서 패한 후 4연승으로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작년에는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금 올해 이번에는 삼성을 상대로 단 한 경기도 놓치지 않고 4연승으로 세 번째 우승을 확정지으며 왕조 시대의 완성을 알렸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 SK 와이번스와 김성근 감독이다. 이미 SK가 나머지 7개 구단의 공통된 목표가 된 지 오래고, 이번의 우승을 통해 그들의 성은 더욱 견고해졌다. 적어도 개개인의 측면이 아닌 으로서의 강함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단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과연 내년에는 SK를 꺾을 수 있는 팀이 나올까? SK의 진정 무서운 점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점이다. 다른 팀이 SK를 꺾기 위해선 그 이상의 변화, 혹은 진화를 거듭해 한층 완성된 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현 시점에서 바라봤을 때, 이것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우승을 차지한 SK 선수단과 김성근 감독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내년에는 그들과 더욱 멋진 승부를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강적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 유진 & 카이져 김홍석[사진=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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