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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재미 없었던 한국시리즈, SK만의 탓인가?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0. 20.

한국시리즈가 SK 와이번스의 4연승 스윕으로 마감되면서 2010년의 프로야구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저 역시 한 사람의 야구 블로거로서 지난 7개월 동안 거의 쉴 틈 없이 달려왔는데요. 여름 휴가도 없이 힘들게 지나온 시간이었지만, 막상 또 이렇게 끝나고 보니 아쉬움이 진하게 남네요.

 

하지만 이번 한국시리즈를 두고 팬들 사이에선 이런 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승리해서 기분 좋은 SK팬과 패해서 상심한 삼성팬을 제외한 나머지 6개 구단의 팬을 비롯한 많은 야구팬들은 이번 한국시리즈는 너무 재미가 없었다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SK의 압도적인 전력과 힘, 그리고 김성근 감독의 판짜기 능력이 여지 없이 드러난 수준 높은 경기가 매번 펼쳐졌지만, 야구라는 스포츠가 지닌 재미의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10경기를 모두 흥미진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봤던 저조차 이번 한국시리즈를 보면서는 4경기 중 2번은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준PO PO에 비해서 재미없는 경기였다는 점에는 십분 동감합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SK의 경기였기 때문에 재미없었다혹은 “SK가 이겼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졌다는 말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기 자체의 재미와 SK라는 팀의 상관관계는 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으니까요.

 

▲ 재미 없는 한국시리즈, SK 때문인가?

 

재미있는 야구 경기의 조건이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선수들의 인상적인 플레이로 인한 재미, 다른 하나는 경기의 흐름이 가져다 주는 재미가 야구를 재미있는 관전 스포츠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대호나 김상현 같은 선수가 4연타석 홈런 같은 무지막지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경기의 내용을 떠나 모든 야구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대호가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진행하고 있을 당시, 그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했죠.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기만 해도 관중들이 들썩였고, TV로 시청하는 팬들도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류현진의 연속 경기 퀄리티스타트도 마찬가집니다. 단순히 승패를 떠나 혹시나 류현진이 실점을 하거나 일찍 강판당해 기록이 깨질까 걱정하는 마음이 경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더 큰 재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 특별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맹활약이 가미된 경기라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 야구 시합은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스타 플레이어의 활약이 미미하더라도 경기의 흐름 자체가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며 재미있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흥미를 주는 경우가 있죠. 바로 이번 플레이오프가 딱 그랬습니다. 5경기 연속 1점차 승부, 기력 대 기력의 싸움으로 도무지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그런 시리즈였죠. 팬들이 이 경기를 보고 흥분한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준플레이오프 역시 2연패 후 3연승이라는, 이건 시리즈 자체의 흐름이 또 하나의 흥미를 유발한 케이스죠.

 

그에 비하면 이번 한국시리즈는 참 재미 없는 시합이었습니다. 김광현이나 카도쿠라가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주며 에이스의 건재함을 과시한 것도 아니었고, 연일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불꽃 같은 방망이를 뽐낸 선수도 없었지요. 툭하면 번트가 나오고, 잔루만 산더미처럼 쌓이다 보니 당사자인 2팀의 팬들을 제외한 나머지 6개 구단의 팬은 한국시리즈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전적으로 SK의 탓으로 돌리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경기를 치른 당사자로서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이 모든 건 다 SK와 김성근 감독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몰아 붙일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들 지난해의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기억하실 겁니다. 재미 없었나요? 개인적으로 작년의 경우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를 보고 난 후 SK와 두산의 플레이오프를 보면서 비로소 눈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경기의 수준 자체가 높고 수비가 안정되어 있어서, 그제서야 제대로 된 야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시리즈 자체도 SK 2연패 후 3연승으로 끝나며 많은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야구였습니다.

 

한국시리즈는 더 했죠. 플레이오프를 5차전까지 치르고 올라온 SK였지만, 기다리고 있던 정규시즌 1위인 KIA와 맞붙어 한치도 밀리지 않는 접전을 펼치며 7차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매 경기가 명승부였고, 양 팀의 사력을 다한 치열한 대결을 볼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 2009년 한국시리즈는 올해의 플레이오프 못지 않은 역대급 명승부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최후의 순간에 나지완의 홈런으로 KIA가 승리했을 뿐, SK가 이겼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리즈였죠.

 

당시의 경기를 비롯해 이번 플레이오프가 재미있었던 것 맞붙은 양 팀의 전력이 엇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수준의 두 팀이 사력을 다한 맞대결을 펼쳤기에 매 경기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거죠. 그럼 이번 한국시리즈가 재미없었던 건 왜일까요? 단순한 이유죠. 삼성이 SK의 전력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차전부터 4차전까지 삼성은 경기 내용은 물론 분위기에서도 SK를 넘지 못했습니다. 2~4차전의 경우 점수차는 2~3점에 불과했지만, 경기 내용과 분위기 면에선 그 이상의 격차가 느껴졌었죠. 지난해 SK가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모습을 올 시즌의 삼성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SK가 너무 강하기도 했지만, 삼성이 그 맞수답게 어우러지는 경기력을 증명해 보이지 못했죠.

 

바꾸어 말하면 SK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이번 한국시리즈는 별 다른 드라마나 감동 없이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죠. 이미 SK 3년 전부터 그런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SK를 넘지 못하면 우승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SK의 강함이 야구를 재미없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는 건 곤란하죠. 탓하려면 삼성의 무기력한 경기력을 먼저 탓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김성근식 야구가 달갑지 않은 이유

 

물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김성근식 야구는 지양되어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와 미래의 한국 야구를 위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선발과 불펜의 구분이 없고, 4번 타자와 8번 타자의 구분이 없는 야구죠. 선발도 급하면 중간에 투입될 수 있고, 여차하면 4번 타자도 번트를 댑니다. 전날 홈런을 친 3번 타자가 다음날에는 상대 선발이 좌완이라는 이유로 8번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여차하면 아예 경기에서 빠지기도 하죠.

 

김성근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 방식으론 한 시즌에 20승을 거두는 투수도, 30홈런이나 100타점을 기록하는 타자도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이 방식이 한국 특유의 야구로 정착되어 일반화되기라도 하면, 더 이상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통산 200승이나 300홈런을 기록하는 선수는 나오지 않겠죠.

 

메이저리그에는 지난 백수십년의 시간 동안 은퇴한 선수들의 남겨 놓은 놀라운 기록이 존재하고, 그것이 그 엄청난 인기의 숨은 비결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경악하게 되는 그 숫자의 나열이 후대의 팬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과거가 현재와 연결되고, 또 현재가 미래와 연결되어 갑니다. 팬들은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경기에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쌓여온 기록과 역사를 통해 더 큰 재미를 느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김성근 감독식의 야구는 현재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선발 투수로 이름이 높았던 투수라 하더라도 필요에 의해 구원으로 보직이 바뀌고, 좋은 커리어를 쌓고 있던 홈런 타자라 하더라도 플래툰 시스템이 적용되어 홈런수가 줄어들게 됩니다. 당장은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기에 그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겐 최고의 인기를 누릴 지 모르나, 야구계 전체로 보면 달갑지 않은 방식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SK의 우승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제 개인적인 생각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SK의 우승을 폄하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올 시즌의 SK는 너무나 강했고, 매우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선수기용 방식과 투수 운용에는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너무나 많았지만, 정작 그 선수들은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었죠. 그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아니 그래선 안되지요.

 

단지, SK가 너무 강해서 재미없었다고 이번 한국시리즈를 폄하한다면 그건 SK 선수들에게 너무 상처가 되지 않을까요? 그들의 죄는 최선을 다한 것밖에 없습니다. 비겁한 수나 편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맞서 싸워서 이겨 우승 트로피를 쟁취했습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SK의 우승에 흠집을 내기보단, 박수를 쳐줄 때가 아닌가 싶네요.

 

우승이 확정된 후 기뻐 날뛰기 전에 자신을 묵묵히 이끌어준 선배 박경완에게 고개 숙여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는 김광현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지 않으시나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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