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려진 대로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었던 SK 와이번스의 김광현이 안면마비 증상으로 인해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일각에선 그의 사퇴를 선수를 아끼기 위한 SK의 고의적인 제스쳐로 보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욕 먹을 걸 뻔히 알면서 굳이 그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표 사퇴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소집일 당일이 되어서야 참가가 어렵다는 뜻을 알린 SK 구단의 행동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언론에는 철저히 함구하더라도 기술위원회와 조범현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는 미리 귀띔을 해줬어야 했다. 불참 가능성에 대한 언질도 없이, ‘참가할 수 있다’는 말을 하루 아침에 바꿔버린 SK 구단의 행태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결국 기술위원회는 부리나케 새로운 멤버를 선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김광현의 대체 선수로는 두산 베어스의 임태훈이 뽑혔다. 임태훈에게는 축하할 만한 일이나, 일반 팬들이 보기엔 다소 의외의 발탁이며, 또한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대체 왜 임태훈이 선발된 것일까?
일단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기 위해선 사전에 뽑아 놓은 62명의 예비 엔트리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같은 좌완으로 대체 후보 1순위로 꼽혔던 올 시즌 승률왕인 차우찬(10승 2패 2.14)이 선발되지 못한 것도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수들 가운데 이미 선발된 선수들과 임태훈을 제외한 나머지 17명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예비 엔트리 투수 – 정현욱, 오승환(이상 삼성), 손승락, 금민철(넥센), 김선우, 이용찬(두산), 손영민, 곽정철(KIA), 송승준, 장원준, 조정훈(이상 롯데), 양훈, 유원상(이상 한화), 임준혁(상무), 이승호, 정우람(SK), 나성범(연세대)
이들 중 대표팀에 뽑힐만한 레벨의 선수를 추리자면 정현욱과 손승락, 김선우, 이용찬, 이승호, 정우람 정도다. 엄밀히 올 시즌 성적을 토대로 대표를 선발했다면 5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임태훈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선발로서도, 불펜으로서도 올 시즌의 임태훈은 기대 이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 반짝하긴 했지만, 그걸로 기량점검을 마쳤다고 보기엔 무리다.
김선우는 몸 상태가 100%가 아니라고 하고, 이용찬은 불미스런 사태로 인해 합류가 불가능하다. 이승호와 정우람의 경우는 김광현의 불참에 따른 ‘괘씸죄’가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SK가 김광현 대신 군미필인 정우람을 밀어주려고 했을 가능성이 아예 제로라고 할 순 없으니, 이 또한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김광현을 대체할 좌완을 선발 할 수 없어서 그냥 오른손 투수를 뽑았다면, 왜 정현욱이나 손승락이 아닌 임태훈이었을까? 아래에서도 알 수 있듯, 올 시즌 성적에서 임태훈은 나머지 두 명과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정현욱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천후 우완 셋업맨 중 한 명이고, 손승락은 2010시즌 최고의 마무리다.
정현욱 : 70.1이닝 9승 1패 11홀드 12세이브 방어율 3.20
손승락 : 63.1이닝 2승 3패 1홀드 26세이브 방어율 2.56
임태훈 : 130.2이닝 9승 11패 1홀드 1세이브 방어율 5.30
임태훈이 이들 두 명에 비해 유리한 점은 딱 한가지, 바로 군미필 선수로서 금메달을 향한 의욕과 열정이 남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동정의 여지는 있다. 임태훈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로 뽑혔다가 대회를 코앞에 두고 태극마크를 반납한 아픈 기억이 있다. 지난해 WBC에도 참가해 우리나라의 준우승에 한팔 거들었지만, 병역혜택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기술위원회는 이미 예비 엔트리의 구성 당시부터 ‘같은 조건이라면 WBC에 참가했던 선수들을 우선 선발하겠다’는 뜻을 밝힌바 있다. 하지만 과연 같은 조건인지가 문제다.
임태훈은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허용한 투수다. 구원투수로 나선 16경기에서의 방어율이 5.76으로 매우 높으며, 4번의 세이브 찬스 가운데 3번이나 팀의 승리를 날린 전적이 있다. 그런 임태훈을 손승락-정현욱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실력을 우선시했다면 올 시즌 구원왕인 손승락을, 국제대회에서의 경험을 중시한다면 ‘국노’ 정현욱을 선발했어야 했다.
결국 기술위원회가 송승락과 정현욱이 아닌 임태훈을 선발한 것은 앞선 두 명이 이미 병역 문제를 해결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란 결론이 나온다. 실력보다 군미필 선수를 뽑아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였다는 뜻이다.
물론, 임태훈이 정작 아시안게임에서는 좋은 피칭을 보여주며 한국의 우승에 일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태극기를 달고 출장하는 국가대표는 대회에서의 결과만이 아니라, 선발 과정에서도 부끄럼 없이 투명해야 한다. 한국 쇼트트랙이 올림픽에서 그토록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선발 과정에서의 잡음 때문에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것은 그만큼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책임과 권리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간절히 바라고 또 응원한다. 하지만 결과가 좋다 하더라도 과정상에서의 잡음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임태훈의 선발이 최악의 결과로 치닫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선발이 떳떳하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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