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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추신수가 황금장갑을 수상하지 못한 이유?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1. 10.



월드시리즈가 끝난 메이저리그도 이제 굵직한 개인 타이틀 수상 내역이 하나씩 발표되기 시작했다
. 그 첫 번째로 아메리칸리그 골드 글러브 수상자가 발표되었고, 이치로가 10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메이저리그의 골드 글러브는 우리나라의 골든 글러브와는 달리 오직 수비력으로 수상자가 결정된다. 외야수로서 10번 이상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 것은 이치로가 역대 6번째이며, 10년 연속은 켄 그리피 주니어, 앤드류 존스 등과 더불어 로베르토 클레멘테(12년 연속)에 이은 역대 2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대를 모았던 추신수의 이름은 수상자 명단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올 시즌 14개의 어시스트(외야 송구 아웃)을 기록하며 이 부문에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기록한 추신수였지만, 황금장갑과는 인연이 없었다. 외야수 부문의 나머지 두 자리는 추신수의 옛 동료였던 프랭클린 구티에레즈와 칼 크로포드의 차지였다.(외야수는 포지션 구분 없이 투표 결과 상위 3명이 수상한다)

 

더욱이 공식 홈페이지인 MLB.com에서 전날 수상자를 전망해보는 기사에서 유력한 후보 6명을 꼽을 때도 추신수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그리고 국내의 한 언론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국내 팬들이 잠시 흥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추신수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과연 그토록 억울한 일일까? 이름값이 모자라서, 혹은 차별에 의한 이유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지금부터 한 번 살펴보자.

 

유명한 선수’에게 유리한 골드 글러브

 

꼭 추신수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매년 골드 글러브의 발표 후에는 뒷말이 무성하다. 그것은 골드 글러브 선정 과정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그 문제점 때문에 뽑히지 않아야 할 선수가 수상자로 결정되는가 하면, 꼭 뽑혀야 하는 선수가 제외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같은 지구 소속의 팀과는 1년에 16~20경기를 치르지만, 다른 지구의 팀들과는 3~8경기 정도를 치른다. 그만큼 팀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팀 선수들의 플레이를 자세히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과 코치들의 투표로 선정자를 가리다 보니, 선정 결과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골드 글러브는 수비력만으로 평가한다고 하지만, 실상 타격 능력이 뛰어나고 유명한스타급 선수들이 훨씬 유리하다. 각 팀의 코칭스태프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존의 통념과 주워들은 풍문에 따라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에 표를 던지기 때문이다.(자신이 속한 팀의 선수들에게는 투표를 할 수 없다)

 

다른 상에 비해 유독 골드 글러브의 수상자만 세대교체가 더디고, 몇 년 동안 연속해서 수상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상이 제정된 지 50년이 넘었지만, 신인 선수가 수상자로 선정된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상이 바로 골드 글러브다.

 

이제는 한국의 메이저리그 팬들도 이러한 부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추신수가 유력한 후보를 전망하는 글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이 이름값에서 밀렸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이다. 과연 추신수가 그 정도로 이름값이 부족한 선수였을까?

 

▲ 빌 제이스의필딩 바이블 어워드

 

많은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골드 글러브의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해왔고,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는 오랜 고심과 연구 끝에 그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필딩 바이블 어워드(Fielding Bible Award)’. 이름에서부터리그 최고의 수비수를 뽑는다는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다.

 

필딩 바이블 어워드는 10명의 전문가들이 리그의 구분 없이 각 포지션별 최고의 수비수들을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매겨 투표한 후, 그 것을 합산하여 수상자를 결정한다. 1~10위까지는 각각 10~1점이 부과되며, 10명의 전문가들로부터 1위 표를 싹쓸이 한다면 만점인 100점을 얻게 된다.

 

그 투표에는 제임스를 비롯해 존 레이팅(ZR)의 고안자인 존 드완 등의 유능한 세이버매트리션들, 그리고 랍 네이어와 피터 개먼스 등 저명한 야구 칼럼리스트들이 패널로 참여한다. 오히려 제3자의 입장이기에 더욱 냉정하게 선수들의 플레이를 바라볼 수 있으며, 각종 세이버매트릭스 항목으로 선수들의 수비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최고의 수비수를 가리는 것이다.

 

올해도 골드 글러브에 앞서필딩 바이블 어워드의 수상자들이 발표되었다. 골드 글러브와는 달리 양대 리그를 통합하여 포지션별 한 명씩 수상자를 가리지만, 투표결과와 점수가 함께 공개되기 때문에 각 리그별 최고 수비수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은 클릭)

 

▲ 골드 글러브 vs 필딩 바이블 어워드

 

필딩 바이블 어워드가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딩 바이블의 수상자와 골드 글러브의 수상자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고, 팬들이 점점 필딩 바이블의 예를 들어 골드 글러브의 공신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필딩 바이블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결과가 골드 글러브 수상자 선정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올해의 결과에서 그러한 경향을 눈에 띄게 느낄 수 있었다.

 

예전부터 최대의 화두였던 유격수 부문의 데릭 지터를 제외하면 올 시즌 수상자 가운데 말도 안 된다는 말을 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수상자는 없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필딩 바이블 투표 결과에서도 리그 3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던 선수들이며, 그 정도의 차이라면 현장 코칭 스태프들의 느낌이 반영된 결과를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지터만은 예외다. 지터는 필딩 바이블 어워드의 투표권을 가진 10명의 선정 위원들 중 지터의 이름을 10위권 내에 포함시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의 경우 이치로와 더불어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은 칼 크로포드와 프랭클린 구티에레즈였다. 둘 다 이번이 첫 수상이다. 무엇보다 이치로와 더불어 작년까지 9년 연속 수상 기록을 이어오고 있었던 토리 헌터를 제친 결과라는 점이 중요하다. ‘실력이름값을 누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MLB.com의 예상을 인용한 기사에 국내 팬들이 분노했던 것도 이치로와 헌터의 동시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예측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름값 높던 헌터는 수상에 실패했고, 새로운 두 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올 시즌 FA 대박이 예상되고 있는 크로포드는 몰라도, 구티에레즈는 추신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름값이 미미한 선수다. 이름값만으로 수상자가 결정되지는 않았다는 증거다.

 

MLB.com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한 6명의 선수는 브렛 가드너(필딩 바이블 평가 96), 이치로(92), 크로포드(86), 구티에레즈(75), 오스틴 잭슨(54), 토리 헌터(5)였고, 헌터를 제외한 5명은 필딩 바이블 투표 결과로 아메리칸리그 외야수들 가운데 상위 5명의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 2~4위가 수상자로 결정됐다.

 

1위인 가드너는 외야의 포지션 가운데 가장 수비하기 편한 좌익수라는 점, 그리고 같은 좌익수인 크로포드가 오래 전부터 최고의 좌익수 수비수로 이름 높았던 선수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헌터는 리그 최고의 펜스 수비로 이름이 높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예전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골드 글러브도 수상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의 수상자 3명은 지난해 필딩 바이블 어워드에서 각 포지션별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랐던 선수들이다. 작년에 좌익수 부문은 크로포드(99), 중견수는 구티에레즈(97), 우익수는 이치로(93)가 각각 전문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최고의 외야 수비수로 뽑혔었다. 그들이 올 시즌의 수상자가 되었다는 것은 현장 지도자들 역시 필딩 바이블의 결과를 상당히 주목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전체 1위를 차지한 가드너의 내년도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추신수,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추신수는 필딩 바이블 어워드에서 32점을 얻어 메이저리그 전체 우익수들 가운데 6위(AL 3위), 아메리칸리그만 따지면 전체 외야수들 가운데 10위였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수준이다. 추신수 역시 이번 골드 글러브의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고, 정확한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을 뿐, 상당한 수의 표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고의 3명에게만 주어지는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기에는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어시스트가 많다고 하여 최고의 외야수인 것은 아니다. 가르시아가 우리나라 프로야구 최고의 외야 수비수가 아니듯, 추신수 역시 다른 수비 능력에서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또한, 정말 어깨가 좋은 선수들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어시스트 개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주자들이 그의 어깨를 두려워하여 아예 진루 자체를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추신수 역시 그러한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다면, 그때는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수상에 실패했지만, 추신수는 당장 내년에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선수다. 그는 이미 한 팀을 대표하는 최고의 타자답게 전국구 스타로 성장하고 있으며, 더 이상은 전문가들이나 각 팀의 코칭 스태프 가운데 추신수란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년이나 내후년이라면 좀 더 원숙한 기량을 과시할 추신수가 리그 최고의 우익수 수비수로 거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필딩 바이블 어워드 선정 위원들의 인정을 받고, 이후 각 팀의 코칭스태프에게 눈도장을 찍은 후, 모든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당당한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되길 기대해 본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MLB.com 캡쳐, 홍순국의 순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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