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B조 예선 첫 경기에서 추신수의 연타석 홈런과 류현진의 호투에 힘 입어 대만에 6-1로 승리,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그 동안 팀 전력 노출을 극도로 꺼려왔던 대만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을 때 첫 경기는 팽팽한 접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대표팀은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 대만에 9-0 승리를 거둔 이후 또 다시 대만전에서 여유 있는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 조 1위를 확정지었다. 대만으로서는 ‘팀 전력 노출’을 막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 패배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첫 경기 승리의 원동력은 단연 ‘코리언 메이저리거’ 추신수에 있었다. 선발로 나선 류현진이 1회 초 수비서 대만 타선을 삼자 범퇴로 깔끔하게 막자 추신수가 곧바로 이에 화답했다. 정근우가 중전 안타를 치고 나간 후 맞은 1사 1루 찬스서 대만 선발 린이하오(요미우리)의 실투를 밀어 쳐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투런 홈런을 작렬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추신수는 3회 말 공격에서도 또 다시 린이하오를 울리는 연타석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리며, 정상급 메이저리거다운 모습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팀의 6점 중 혼자 4점을 책임진 추신수의 활약은 이 날 경기의 백미였다.
■ 베일이 벗겨진 대만 야구, 그 실체는?
추신수 외에도 대표팀 타선은 10안타를 합작하며, 대만 마운드를 비교적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아시안게임 전부터 극도로 전력 노출을 꺼리는 등, 베일에 싸여진 대만 야구 대표팀을 상대로 5점 차 승리를 거두었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전이기도 했다.
대표팀이 예상 외로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지만, 대만 대표팀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갖춘 팀이었다. 특히, 4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철저하게 눌린 류현진을 상대로 5회 초에 3안타를 몰아치며 1점을 따라붙는 등 빈틈을 놓치지 않았던 타선은 나름 위협적이었다.
또한 그동안 유난히 우리나라 대표팀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3루수 린즈성은 이날 팀의 유일한 타점을 기록하는 등 혼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그는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우리나라를 상대로 3타수 2안타를 기록하는 등 팀의 우승을 이끈 바 있다.
한편 마운드에서는 양야오쉰(소프트뱅크)이 빼어난 모습을 보였다. 선발 린이하오를 구원 등판한 좌완 양야오쉰은 2와 2/3이닝 동안 우리나라 대표팀 타선을 상대로 무려 5개의 탈삼진을 솎아낼 만큼 위력적인 구위를 자랑했다.
최고 구속 150km에 이르는 빠른 볼도 인상적이었지만, 110~130km를 넘나드는 체인지업과 커브에 대표팀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만약에 린이하오가 아닌 양야오쉰이 선발로 나왔다면,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특히 그는 올해 일본 프로야구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4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했을 정도로 일본 무대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투수다.
이렇듯 대만 대표팀은 예상대로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표팀이 대만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대만이 지난 아킬레스건이 생각 외로 컸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드러난 아킬레스건은 대만 예즈시엔 감독의 용병술이었다.
한국이나 대만, 두 나라 모두 준결승을 수월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1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만은 B조에서 유일한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총력전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대만 예즈시엔 감독은 양야오쉰과 청홍원(시카고 컵스) 등 주축 선발 투수를 제치고 린이하오라는, 다소 의외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예즈시엔 감독으로서는 ‘깜짝 선발 투수’를 투입하여 준결승 이후를 대비한다는 계산이었겠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자충수에 가까웠다.
결국 대만은 준결승 진출이 확정된다 해도 A조 1위가 유력한 일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서 펼쳐진 시합에서 일본은 태국을 상대로 1회에만 10득점 하는 등,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고 18-0, 5회 콜드게임 승을 거뒀다. 실업야구 격인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이지만, 그 전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2009년 WBC에서도 대만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 팀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대표팀과 준결승전에서 만난 베네수엘라였다. 베네수엘라는 결승전을 대비하여 메이저리그에서도 특급 에이스로 통하는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준결승에 투입하지 않는 실수를 범한 바 있다. 그러나 에이스를 아껴 둔 대가는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나라 대표팀 타선이 폭발하며 베네수엘라를 10-2로 격침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대만이 비슷한 실수를 범했다.
린이하오에 이어 등판한 양야오쉰 역시 불안 요소가 많았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는 듯한 마인드를 노출했기 때문이다. 2와 2/3이닝 동안 대표팀 타자들에 탈삼진 5개를 솎아냈다고는 하지만, 한 순간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6회 말 수비서 정근우에게 적시타를 맞자마자 추신수와 김태균을 모두 사사구로 내보내는 등 자신의 공을 컨트롤하는데 실패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타선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꼽혔던 1번 후진롱(LA 다저스)과 4번 펑정민(슝디)이 나란히 4타수 무안타로 물러나며,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류현진-봉중근-안지만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필승조에 대만 타자들이 속절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처럼 경기 전까지 베일에 싸였던 대만은 조별예선 1차전을 통하여 ‘만만치 않은 모습’과 ‘약점’을 모두 드러냈다. 대만은 결승전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상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첫 경기의 결과로 우리는 대만과 다시 만나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일말의 두려움이 있었을 뿐, 베일이 벗겨진 이상 ‘역대 최강’이라 평가받는 우리나라 야구대표팀의 상대는 되지 않을 것이다.
// 유진[사진=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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