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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윤석민 사태, 만약 당신이 대만 감독이었다면?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1. 15.



지난 주말 대만과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첫 경기가 열렸다
. 8년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탈환을 노리는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는 가장 중요한 빅매치였지만, 정작 경기가 끝난 이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추신수의 연타석 홈런도, 한국의 승전보도 아닌, 바로 윤석민의 엔트리 누락 해프닝이었다.

 

이날 경기는 4년전 도하 대회의 복수전이었다. 만일 7회 류현진에 이은 두 번째 교체투수로 등판한 윤석민의 기용을 둘러싼 웃지 못할 해프닝만 아니었더라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한 경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민의 이름은 엔트리에 없었고, 이를 눈치챈 대만 대표팀은 당연한 항의를 시작했다. 이는 선수명단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한국측 기록원의 착오로 밝혀졌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중대한 실수였다.

 

다행히 대만 측이 항의 이상의 적극적인 제스쳐를 취하지 않았고, 심판과 운영위원회 측도 투수를 다른 선수로 교체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라 한국 측은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만일 자칫했다간 이날 경기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한번의 어이없는 실수로 대표팀은 이날 이기고도 찝찝한 뒷맛을 남기며 팬들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만일 이 상황이 중요한 박빙의 흐름이었고, 여기서 윤석민이 등판하여 단 1구라도 던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국제대회의 경우, 부정선수의 출전같이 대회요강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재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다행히 이런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규정은 대회 요강에 명시되어있지 않지만, 만일 상대팀 측에서 국제대회와 아마추어 룰의 관례를 들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거론하려 들었다면 한국으로서는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몰수패로 처리되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만일 입장을 바꾸어 한국 측이 이러한 상황을 맞이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격렬한 항의를 했을 것이다. 혹은 예즈쉬엔 대만 감독이 조금 더 지능적이었거나,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의도가 있었다면 윤석민이 등판하여 최소한 한 타자라도 상대하게 한 뒤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좀더 강경하게 대만이 IBAF(국제야구연맹)에 제소라고 하겠다고 나섰다면, 사태가 훨씬 복잡하게 꼬일 수도 있었다. 설사 경기결과가 바뀌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한국 입장에서는 이미 두고두고 공개적인 국제망신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만 측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우리 대표팀은 실력으로 경기를 이겨놓고도 오히려 대만 측의 아량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대만 감독이 순진했던지 혹은 대인배였든지 간에, 설사 좀더 집요하게 나지고 들었다고 할지라도 어차피 한국 입장에서는 '치사하다'고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니까.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 받고 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대부분이 프로 출신으로 구성되어있고, 해외파까지 총망라된 한국대표팀의 전력은 자타공인 이번 대회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같은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대만이나 사회인 야구선수 위주로 구성된 일본보다도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미 올림픽과 WBC 등을 통하여 한국야구의 위상은 이제 국제적으로 알아주는 수준에 도달했으며, 한국의 프로선수들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그 일거수일투족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그만한 수준의 팀이라면 단지 이기는 데만 전력을 기울이는 것을 넘어, 경기장 안팎에서도 다른 팀들의 모범이 될만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회 첫날부터 한국은 실력보다는 어이없는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번 엔트리 누락사건은 작은 액땜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못한 잘못에서 비롯됐다. 4년전 도하 대회에서 한국야구가 치욕을 당했을 때도 위기는 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큰 실패는 알고 보면 작은 실수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야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최고의 자리를 꿈꾸는 팀이다. 그러나 기본을 지키지 않는 최고란 존재할 수 없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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