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대표팀은 5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4년 전의 아쉬움을 말끔히 날려버렸다. 선수들은 환호와 박수 속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모두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선수들과 팬들을 모두 만족시킨 아시안게임이라는 축제는 이제 끝이 났다. 하지만 잔치가 끝난 뒤에도 할 일은 남아 있다. 축제의 과정을 돌이켜 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반성을 하며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찾아보는 것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몇몇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몇 가지 과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즐겁게 해준 이 축제가 오래도록 계속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 반드시 필요한 아시아권의 야구 저변 확산
이번 아시안게임의 야구 종목에는 총 8개 국가가 참여했다. 하지만 그 중 진정으로 ‘야구’를 하는 팀은 자국 내에서 프로리그(세미프로 포함)가 활성화되어 있는 한국과 일본, 대만 그리고 중국까지 4개국이 전부였다. 나머지 4개국인 홍콩, 파키스탄, 몽골, 태국의 야구 수준은 심각할 정도로 뒤쳐져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일개 고교팀이 상대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그런 수준에 불과했다.
이번 대회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점점 아시안게임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3개 나라만의 축제가 되어가고 있다. 총 45개국이 참가했지만, 열흘이 경과한 21일 현재까지 총 992개의 메달 가운데 60%인 594개, 금메달만 따지면 전체 300개 중 77%인 231개를 한-중-일 3국이 독식하고 있다.
경제 수준에 비례해 스포츠의 전반적인 발전 수준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나다 보니 다른 나라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아시안게임이 아시아에 속한 모든 나라가 함께 동참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야구라는 스포츠를 제대로 하는 나라는 4개뿐이고, 실상 그 경쟁에서 이긴 팀이 금메달을 가져가게 된다. 중국이 아직은 아시아 3강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결국 3개국이 돌아가며 메달을 독식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양상이라면 올림픽에 이어 아시안게임에서도 야구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가 단순히 우승을 차지했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북아시아는 북아메리카와 더불어 세계에서 야구가 가장 활성화되어 있고, 또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의 야구 열기를 점점 주변으로 넓혀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야구의 수준과 경제력에서 앞서 있는 일본과 한국이 앞장 서야 하는 과제다. 프로와 아마연맹이 힘을 합쳐서 아시아에 야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에 대한 지원을 모색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아시아 야구연맹의 의장국이며, 일본은 아시아 야구의 종주국으로서의 책임이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그래서 그런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 야구의 강함이 진정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면, 일단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저변 확산에 앞장서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만의 축제는 이제 지겹다.
▲ 일본의 AG 무시, 언제까지 용납할 것인가?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차지할 가능성은 98%였다. 4년 전에 그 2%의 확률이 현실화된 바 있어 조심하고 또 경계했을 뿐, 실상 프로 1진으로 탄탄한 대표팀을 꾸린 우리나라의 앞을 가로막을 만한 팀은 이번 대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 일본이 프로 선수들을 배제한 채 사회인 야구(실업 야구)와 대학 선수들을 위주로 선발한 대표팀을 파견했기 때문이다.
WBC에서는 그토록 최정예 멤버를 선발하기 위해 고심하는 일본이 아시안게임은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일본이 아시안게임에서의 야구에 크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년 부산 대회에서도 일본은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편성했고, 프로 출신은 각 구단별로 1명씩 총 10명의 신예급 선수만 포함시켰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도하 대회부터는 아예 프로 선수들을 배제하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상황은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렇잖아도 낮은 대회의 수준이 더욱 낮아지고 있다. 적어도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대표팀과 어울릴 만한 ‘맞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4년 전의 아픔이 있긴 했지만, 어지간해선 거의 벌어지지 않을 일이기에 ‘이변’이라 부르고 ‘참사’라 평가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국이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면, 그것 자체가 ‘이변’이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는 우승을 했으면서도 그걸 어디 나가서 자랑하기가 참 애매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단지 금메달 하나를 더하고, 대표 선수들 중 일부가 병역혜택을 받게 되어 모두가 축하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 뒷맛이 그리 깔끔하지는 않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했지만, 그걸 내세워서 ‘아시아 최강’이라는 수식어는 붙이기가 좀 뭣한 짜증나는 상황이다.
아시안게임을 무시하는 일본의 처사는 아시아권에서 야구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와는 달리 프로 선수들이 참여해봤자 별로 얻어먹을 것이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아시안게임에 프로 선수들의 참가를 허용한 근본 취지를 생각했을 때 일본의 이러한 행태는 환영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더불어 아시아권 야구 저변의 확산에 가장 앞장서야 할 나라가 일본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시안게임에서의 야구를 아예 프로선수들의 참가를 배제한 채 순수한 아마추어 야구의 제전으로 만들던, 아니면 적어도 프로가 있는 나라들은 모두 1진급 대표팀이 참가해 실력을 겨루며 높은 수준의 대회로 만들던,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곤란하다.
▲ 프로 선수들의 병역 혜택, 과연 정당한가?
이번 대회의 우승으로 인해 우리나라 대표팀 중 11명(송은범, 안지만, 양현종, 임태훈, 고창성, 김명성, 최정, 강정호, 조동찬, 김강민, 추신수)이 병역혜택을 받게 되었다. 병역’특례’는 ‘면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들은 4주 간의 군사 훈련을 받게 되어 있으며, 현역병으로 복무하는 대신 자신이 종사하는 스포츠에서 계속 활약하는 것으로 병역의 의무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병역특례는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이름을 알리는 데 크게 일조한 일류 운동 선수들의 기량을 유지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것으로, 그 전반적인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일단, 아시안게임에서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프로 선수’가 출장할 수 있으며, 그 프로선수들이 ‘자신의 군 문제 해결’을 위해서 참가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 시즌 내내 일부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여부가 언론과 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 이유는 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큰 명예라서가 아니라, 대표로 선발되어 금메달을 따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가대표라는 타이틀과 금메달이라는 명예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일 뿐, 프로야구 선수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병역혜택’이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혜택을 받는 선수들이 ‘프로선수’라는 데 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대회의 성격이 짙으며, 야구와 축구 등의 구기종목을 제외한 대다수의 종목은 프로 선수들의 출장이 제한되어 있다. 프로선수들의 참가를 허용한 종목의 경우도 그를 통해 대회 전체의 인기를 좀 더 높이고자 하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종목의 경우, 대표로 선발된 선수는 비단 아시안게임만이 아닌 각종 국제대회에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참가하게 된다. 각 종목마다 숱한 국제대회가 있으며, 일단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그 대부분의 대회에 참가해 한국의 위상을 알리게 된다. 지금까지 그러한 국제대회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혜택을 받는 것이나,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앞으로도 국제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모두 충분히 납득하고 인정할만한 일이다.
당장 축구만 해도 일년에 수십 번씩 대표선수들을 소집해 A매치를 치른다. 수영, 배드민턴, 양궁 등 각종 개인 종목의 선수들은 일년 내내 외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을 대표해 각종 대회에 참석한다. 물론 그들 모두는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병역혜택을 받는 만큼, 충분히 한국이란 나라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대체복무’다.
그러나 야구는 다르다. 프로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는 고작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그리고 WBC가 전부다. 그마저도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되면서, 정식 대회는 2개만 남았다. 각각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대회이며, WBC는 이벤트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정식 국제대회라고 보기엔 아직 그 기반이 미약하다.
야구에도 수많은 국제급의 아마추어 대회가 있다. 세계선수권과 야구 월드컵이 있으며, 대륙간 컵 대회도 있다. 이 대부분은 대학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출장한다. 헌데, 정작 국제대회에서 수고하는 이들은 병역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에는 참가조차 하지 못한다. 반대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이유로 병역혜택을 받은 프로 선수들은 이런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아이러니 그 자체다.
대부분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서 병역혜택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냥 생업으로 복귀한다. 다시 태극마크를 다는 일은 3~4년마다 한번 있을까 말까다. 물론 그들이 그라운드에 남아줌으로 인해 국내의 수많은 야구팬들은 기뻐하겠지만, 국제 스포츠 대회를 통한 병역혜택의 근본취지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현실은 뭔가 이상하다. 순수한 아마추어 스포츠의 정신과 그 혜택이, 프로 선수들의 자본의 논리에 놀아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대충 넘겨버리기엔,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에 크게 어긋나고 있다.
따라서 프로 선수들이 이렇게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면, 그에 대한 대체 복무 방안을 좀 다각도로 만들어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령 혜택을 받은 선수들에게 향후 3~5년간은 비시즌 기간을 통해 일정 시간씩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에 봉사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 일은 아시아권에 야구를 전파하는 ‘야구 전도사’의 역할이 될 수도 있고, 사회인 야구의 활성화를 위한 임시 코치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의 불합리한 상황을 보조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일본이 사회인 야구 선수들로 대표를 꾸려도 우리 언론은 크게 화내지 않고, 선수들 역시 일본의 그런 태도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은, 금메달과 나라의 명예보다는 뒤따라오는 ‘병역혜택’이란 결과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달콤함에만 취한다면, 본래의 취지와 목적은 잃어버리게 된다. 적어도 아시안게임의 야구 종목이 ‘프로 야구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주기 위한 대회’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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