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진의 꽃 보다 야구

‘현해탄을 건너온’ 재일동포 야구선수 이야기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2. 13.



‘국보급 투수
’ 선동열(당시 주니치)을 시작으로 최근의 김태균(지바 롯데)까지 한국 프로야구의 스타들이 계속해서 일본무대에 진출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일본 프로야구 출신인 카도쿠라 켄(SK) 등이 맹활약하면서 일본야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또한, 케이블 채널을 통하여 일본 프로야구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많은 야구팬들에게 일본 야구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여기에 SK가 올 시즌 직후 재일동포 야구선수인 김대유(일본명 : 가네무라 다이유)를 영입한 것을 비롯, 삼성이 제일동포 출신인 가네무라 사토루와 계약한 것도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일본 프로야구 출신의 선수가 국내무대에서 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됐다. 국내 선수가 FA 자격을 취득한 이후 일본무대에 진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일본에서 야구를 했던 선수가 국내무대를 찾았던 사례는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 역시 고교시절 재일동포 야구단의 일원으로 당시 한국을 찾았었고,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는 재일동포 선수들이 국내의 고교 선수들과 함께 자웅을 겨루기도 했다.

 

또한, 프로야구 출범 이후에는 선수 부족에 허덕이던 구단들이 일본 프로야구에서 임의 탈퇴로 풀린 재일동포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재일동포 선수들은 국내 야구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한국 야구사에 큰 획을 긋기도 했다.

 

▲ 국내무대를 밟았던 재일동포 선수들

 

재일동포 선수들 중 가장 유명한 이는 한 시즌에 30승을 거두며 한국 프로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장명부(전 삼미). 1983, 한국 야구계에 등장했던 장명부는 그 해에만 427 1/3이닝을 소화하며 30 16, 평균자책점 2.34를 기록했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86년까지 55 79 18세이브, 평균자책점 3.55의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데뷔 년도의 업적에 비하면 다소 초라해 보이는 통산 성적이지만, 아직까지도 너구리장명부의 이름은 프로야구를 빛낸 주역 중 한 명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장명부와 함께 1983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이끌었던 재일동포 타자 이영구 역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는 삼미/청보 시절의 3년 동안 통산 타율 0.270, 13홈런 104타점의 성적을 기록했다.

 

재일동포 선수들과 가장 인연이 깊은 구단 중 하나가 바로 삼성이다. 삼성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일본무대에서의 재기에 성공한 김일융(3년 통산 5420, 평균자책점 2.53)은 물론, ‘부시맨김성길(7년 통산 54 46, 평균자책점 3.38) 1980년대의 삼성 마운드를 책임진 에이스들 중에는 현해탄을 건너온 선수들이 제법 있었다. 이후 고지행(2003~05)을 비롯하여 내년 시즌부터 뛰게 될 가네무라 등 적지 않은 재일동포 선수들이 삼성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었다.

 

이들 외에 홍문종(전 롯데/태평양), 최일언( OB), 주동식(전 해태), 김신부(전 청보/LG), 이일의( LG), 김행희(전 롯데), 강병수(전 한화) 등 적지 않은 재일동포 선수들이 국내무대를 거쳐 갔다. 이들은 국내 프로야구가세미프로수준에 불과했을 때 활약하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 수준이 양적-질적으로 팽창하면서 현재에는 예전과 같이 재일동포 선수를 영입하는 사례가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 일본 프로야구의스타 플레이어도 국내무대를 밟았었다

 

이들에 앞서 재일동포 고교야구 선수단의 일원으로 한국땅을 밟은 이들도 있었다.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를 통하여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바다를 건너와 국내 고교야구 선수들과 자웅을 겨루었다. 그리고 이들 중 적지 않은 선수들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모국땅을 밟았던 재일동포 야구 선수단 중 가장 유명한 이는 한신 타이거즈의 4번 타자 가네모토 도모아키(한국명 : 김박성). 대한야구협회에서 제공하는 봉황대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참가 선수 명단을 살펴보면, 1986년에 열린 제16회 대회에서 가네모토가 참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고교시절 통산 20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소속교의 성적이 신통치 않아 고시엔 진출에는 실패했다. 가네모토가 재일동포 야구단 일원으로 국내무대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 입단 이후 올 시즌까지 무려 2,330경기에 출장한 가네모토는 1,492경기 연속 무교체 출장기록을 세우며, 세계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까지 통산 2,371안타 458홈런 1,460타점, 타율 0.289를 기록 중이다.

 

한신 타이거즈의 또 다른 4번 타자 히야마 신지로(한국명 : 황진환) 역시 한국땅을 밟았던 재일동포 3세 선수다. 17회 봉황대기 선수권대회에 재일동포 대표로 참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재일동포 선수들 중에는 드물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동열 삼성 감독이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있던 현역 시절, 히야마가 먼저 다가와서 나도 한국사람이다.”라고 인사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지난해까지 통산 1,206안타 157안타 668타점, 타율 0.261를 기록했다.

 

90년대의 한일 슈퍼게임에 참가했던 포수 나카무라 다케시(한국명 : 강무지) 역시 1984년 봉황대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재일학생 대표로 출전했었다. 훗날 주니치 드래건즈에서 선동열과 함께 배터리로 뛰기도 했던 나카무라는 현재 주니치의 배터리 코치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 그들이 우리의 고향은 현해탄이라고 말하는 이유

 

이들 외에도 일본에서 활약하는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 중 일부가 한국계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의 맹활약으로 이치로 이후 최고의 교타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마쓰이 가즈오를 비롯하여 아라이 타카히로(한국명 : 박귀홍) 등이 그러한 선수들이다.

 

지금은 그 정도가 심하지 않지만, 예전까지만 해도 재일동포 선수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자신의 저서 <프로야구 10배 즐기기>에서 표현한 것처럼, 그들은 “우리의 고향은 현해탄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설움을 겪어야만 했다.

 

김성근 감독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김 감독은 최근 K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국에 정착하기로 한 후에도 반쪽바리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상했었다고 회상했다. 일본에서는조센징이라는 말에 가슴 아파하고, 고국에서는 일본인처럼 취급하는 것이 재일교포들의 냉엄한 현실이었다.

 

곧바로 다음 시즌부터 국내 무대에는 두 명의 재일동포 출신 투수(김대유, 가네무라)들이 마운드에 설 예정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눈은국적이 아니라야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유진 김현희[사진제공=SK 와이번스, 뉴스뱅크F, 기록제공=Statiz.co.kr]


[다음글] - 2인자의 관점에서 본 2010년 골든글러브

 

공감하신다면 추천 한 방(아래 손 모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