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하지만 스포츠가 정치나 전쟁과 다른 점은, 보이는 결과 이면에 있는 과정과 노력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이 아닐까.
1등의 성과가 가장 돋보일지라도, 그들에 버금가는 열정을 발휘해준 위대한 2인자들이 있었기에 1등도 그만큼 더욱 빛이 날 수 있는 것이다. 올 시즌 1인자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는 놓쳤지만, 역시 박수를 받기에 아깝지 않았던 2인자들도 팬들은 기억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 김광현, “왜 하늘은 광현을 낳고 또 현진을 내리셨는가.”
‘괴물’ 류현진(한화)의 투수부문 수상은 당연했다. 올 시즌을 넘어 역대급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린 류현진이 골든글러브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상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김광현이 너무도 애석할 뿐이다.
의외로 김광현이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올해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생각해보자. 김광현은 다승(17승)과 탈삼진(183개), 평균자책점(2.37), 선발등판회수(30게임)와 투구이닝(193.2이닝) 등에서 모두 커리어 하이 기록을 경신했다.
다승은 단독 1위를 확정지었고,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퀄리티스타트 등에서는 모두 류현진(한화)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아깝게 중도하차 해야 했던 아쉬움을 만회하고도 남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고 자부할만하다.
하지만 류현진의 그림자는 올 시즌 내내 김광현을 따라다녔다. 뭘 해도 김광현은 류현진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었고, 호투한 다음날에도 김광현에 대한 찬사보다는 ‘그래도 류현진보다는 못하지’라는 억울한 상대평가를 당해야만 했다. 삼국지에서 주유가 “왜 하늘은 주유(김광현)를 낳고 왜 또 제갈량(류현진)을 낳았는가”하고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김광현에게는 가슴에 와 닿는 한 시즌이 아니었을까?
▲ 박경완, “2인자라서 행복해요(?)”
올 시즌 골든글러브의 최대 격전지이자 자격기준을 놓고 가장 논란이 되었던 자리가 바로 포수였다. 골든글러브가 중시하는 개인성적 면에서는 의심할 나위 없이 조인성이 최고였다. 포수 최초로 100타점을 돌파한 데 이어 전 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이뤄낸 조인성의 수상 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포수의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투수리드와 수비 능력에 있어서는 박경완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조인성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타격성적에도 불구하고 박경완이 올 시즌 골든글러브에서 단 2표 차이의 접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골든글러브의 자격 기준을 놓고 해묵은 논란거리인 ‘개인성적 vs 팀공헌도’의 우열 공방이 드러난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만하다.
사실 박경완으로서는 어차피 조인성을 제치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어도 논란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달리했을 때, 차라리 이렇게 아슬아슬한 패배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세운 결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정근우, “실책,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또 다른 격전지였던 2루수 골든글러브는 조성환(롯데)에게 돌아갔다. 조성환은 올 시즌 타격성적에서 정근우를 압도했고,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수비에서는 최소실책(3개)을 기록한 안정감이 돋보였다. 조성환 역시 골든글러브를 차지할 자격은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정근우가 조성환과 가장 뚜렷한 격차를 보인 부분은 의외로 실책이었다. 정근우는 무려 13개의 실책을 기록했는데, 사실 이것이 정근우의 수비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하기는 어렵다. 위험을 무릅쓰고도 과감하고도 적극적인 수비를 펼치다가 실책으로 기록된 경우가 많았고, 수비시프트나 내야지휘의 안정감에 있어서는 정근우가 리그 최고의 2루수라는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타격기록에서도 톱타자로서 활발한 주루플레이를 통하여 팀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했던 정근우의 공헌도는 '영양가'면에서 보이는 성적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 박한이, 이용규, 최진행, “우린 복불복의 피해자”
타격성적이 월등한 김현수, 다재다능한 김강민이 이미 외야 두 자리를 예약해놨다고 봤을 때 사실상 남은 한 자리를 놓고 박한이, 이용규, 이종욱의 3파전 예상되고 있었다. 실제로 세 선수간의 득표 격차는 10~20표 이내의 격전이었다. 절대적 기준이라기보다는, 그날 투표인단의 순간적인 판단에 의지한 ‘복불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종욱 역시 수상의 자격은 충분했으나, 문제는 다른 후보들이 이종욱보다 못할게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박한이는 출루율에서 앞섰고, 올해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강렬한 ‘임팩트’는 가장 두드러졌다. 이종욱과 비슷한 스타일의 이용규는 경기출전수와 득점에서 앞섰다. 비록 자격미달로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는 못했지만 최진행 역시 이번 골든글러브의 선정기준이 두고두고 아쉬웠을 1인이 아닐까.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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