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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위대한 조연, 잊을 수 없는 2인자의 추억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2. 27.

흔히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고들 한다. 매일 경쟁을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기 마련이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승자에게만 향하고 패자는 쉽게 잊히기 일쑤다. 그러나 참다운 스포츠의 의미는 단지 1인자라는결과를 가리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1인자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숱한 경쟁자들이 함께 땀을 흘리고 멋진 승부를 연출해내는 과정에 있다.

 

우승의 열매를 따내기 위한 그에 걸맞는 치열한 과정이 없다면 1인자의 가치도 그만큼 떨어진다. 승패라는 결과를 떠나 그런 멋진 과정을 함께 연출해준 2인자들이 있었기에 1인자들의 업적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패자는 그 과정만으로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흔히 스포츠를 전쟁이라고도 표현하지만, 전쟁과 스포츠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상대와 과정에 대한 존중에 있지 않을까?

 

▲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 준우승 팀은 삼성

 

두산의 김경문 감독은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기도 한 명장이지만, 정작 소속팀에서는 지휘봉을 잡은 2004년 이후 한국시리즈에 세 번이나 진출하고도 모두 준우승에 그친 한이 있다. 평소에도 ‘2등 감독이라는 말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김경문 감독은 차라리 3위가 낫지, 결승까지 올라가고 나서 지면 상실감이 더 크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물론, SK와 삼성에 덜미를 잡혀 소원대로(?) 3위에 그친 최근 2년 간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는 의문이지만, 김경문 감독의 어록 속에서는 늘 정상문턱에서 주저앉아야 했던 2인자의 설움과 박탈감이 진하게 묻어난다.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흔히 ‘2인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단연 삼성 라이온즈다. 창단 이후 2001년까지 무려 7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고 모두 준우승에 그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1985년의 우승은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인해 한국시리즈 없이 차지한 것이었다.(삼성은 이후 2004년과 2010년에도 준우승에 그치며 그 회수를 9번으로 늘렸다)

 

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박철순과 김유동이 버틴 OB 베어스에 첫 우승을 내주면서 시작된 삼성의 불운은, 84년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뒤 시즌 막판 고의 패배라는 무리수를 감수하며 조금 더 만만하게 생각했던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고르면서 시작됐다. 무리한 잔머리의 대가는,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지금도 전설로 기억되는 롯데 최동원의 ‘4승 신화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처절한 응징을 당했다.

 

이때부터 삼성과 함께한 한국시리즈의 저주는 계속해서 인구에 회자되었는데, 지난 2001년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9회 우승을 이끌었던 명장 김응룡 감독을 영입하고 역대 최강의 초호화군단을 구축하며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깨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던 삼성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결승 파트너는 당시 5할이 갓 넘는 승률로 3위를 차지하여 준PO와 플레이오프를 거치고 올라온 김인식 감독의 두산.

 

삼성은 1차전을 잡으며 기세를 올렸으나 이후 2,3,4차전을 내리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다. 2001년은 지금도 역대 한국시리즈 사상 최고의 타격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4차전에서는 3회초 삼성이 먼저 8점을 뽑아내고 승리를 가져가는 듯 했으나, 이어진 3회말 공격에서 두산이 김동주-안경현의 연속타자 홈런을 포함해 역대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득점인 12점을 기록하며 전세를 뒤집어버렸다. 두산으로서는 절정의 웅담포를 자랑한 경기였지만, 삼성팬들에게는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두산은 시리즈의 분수령이었던 4차전을 18-11로 승리했고 기세를 몰아 4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은 역대 9번의 준우승중 84년과 2001년을 포함하여 무려 4차례나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한국시리즈에서는 낮은 승률을 기록한 팀들에게 업셋(Upset)’을 당한 진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삼성의 질기고도 질긴 한국시리즈 징크스는 2002 LG를 상대로 겨우 끝을 맺었는데, 이후 삼성은 2005년과 2006년에도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와의 오랜 악연을 간신히 청산할 수 있었다.

 

2인자를 둘러싼 추억들

 

삼성에 이어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준우승 2위는 한화 이글스다. 한화는 전신인 빙그레 시절을 포함하여 총 5번이나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특히, 빙그레 시절이던 88년부터 92년까지 5시즌 중 4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번번이 준우승에 머무는 극심한 징크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세 번은 해태, 한 번은 롯데에게 당한 패배였다. 이글스는 한화로 인수된 99년에야 비로소 첫 우승을 차지하며 오랜 한을 풀었다.

 

2000년대 이후만 놓고 보면 최다 준우승팀은 두산 베어스다. 두산은 2000년대 들어 총 5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2001시즌을 제외하면 나머지 4번은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두산하면 역대 한국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2000년 현대와의 대결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두산은 ‘18승 트리오정민태-김수경-임선동으로 이어지는 최강의 선발진을 자랑하던 현대에게 1~3차전을 맥없이 내주며 맥없이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두산은 이후 기적 같은 저력을 발휘하며 4~6차전을 내리 쓸어 담고 승부를 최종전까지 몰고 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3연패 뒤 3연승은 최초의 기록으로, 사상 초유의 시리즈 리버스 스윕에 가장 근접했던 시즌이기도 했다. 비록 7차전에서 홈런 2개를 터뜨리며 6타점을 쓸어 담은 외국인 선수 퀸란의 맹활약에 의해 최종전을 내주고 말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두산의 뚝심은 많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두산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먼저 2연승을 거두고도 SK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며, 2경기를 잡고도 우승을 놓치는 최초의 팀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09년 플레이오프까지 감안하면 같은 팀(SK)에게만 3년 연속 패배한 것이나, 모두 1차전 이상을 잡고도 내리 역전패를 당했다는 것도 한국 프로야구사에 보기 드문 진기록이다.

 

역대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아까운 준우승팀은 어디일까? 원년 이후 꾸준히 7 4선승제를 유지해온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 이상(무승부 포함) 치러진 승부는 총 7차례가 있었다. 84년의 삼성(상대팀 롯데) 95년의 롯데(OB)는 나란히 3승 고지를 먼저 밟고도 6~7차전을 내리 내주고 다잡은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2004년 현대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사상 최초로 9차전까지 치르는 진기명기를 연출했다. 이는 무승부 제도로 인하여 승패를 가리지 못한 경기가 3차례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대 7차전 승부에서는 대부분 선취점을 뽑은 팀들이 모두 승리를 가져갔었다. 그러나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SK 6회까지 5-1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KIA 나지완의 끝내기 포함 홈런포 3방에 분루를 삼키며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극적인 역전드라마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 준우승 뒤에 가려진 안타까운 조연들

 

2인지라는 이름으로 인하여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도 아쉽게 빛을 발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기 마련이다. 삼성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였던 박충식은 1993년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5이닝 동안 총 181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하는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여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경기는 결국 2-2의 무승부로 끝났고, 박충식의 완투는 빛이 바랬다.

 

96년 현대의 정명원은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역대 유일의 노히트노런(1볼넷)을 달성하기도 했다. 구원 전문의 이미지가 강했던 정명원이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나서서 보여준 눈부신 역투는 찬사를 받기 충분했으나, 이후 해태 김응룡 감독이 심판 배정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현대는 정명원의 눈부신 역투에 힘입어 2 2패로 맞섰으나 5~6차전을 내리 내주며 창단 첫 우승의 꿈을 2년 뒤로 미뤄야 했다.

 

삼성의 배영수는 2004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나, 아쉽게도 이 기록은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0-0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한 상황에서 결국 배영수가 마운드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12회 연장 끝에 0-0 무승부로 끝난 이 경기는 지금도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완벽한 투수전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삼성은 9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현대에 2 3 4패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결정적인 끝내기의 순간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선수들의 눈물은 더욱 가슴이 아프다. 2008년 타격왕과 최다안타왕을 석권했던 타격천재김현수(두산)는 그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21타수 1안타라는 믿기 어려운 부진을 거듭하며 침몰했다. 특히 3차전에 이어 5차전에서도 9 1사 만루 상황에서 병살타로 물러나며 자신의 손으로 시리즈를 끝내고말았다.

 

끝내기 병살타의 주인공이 있다면, 끝내기 홈런의 피해자도 있다. 2008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김현수의 마지막 병살타를 유도하며 우승 세리머니의 주인공이 되었던 SK 채병용은 1년 뒤 KIA 나지완에게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하며 김현수와 닮은 꼴눈물을 쏟아야 했다.

 

끝내기 홈런 하면 2002년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이상훈(LG)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6으로 앞선 9회 마무리로 마운드에 올랐으나 이승엽에게 극적인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다 잡은 승리를 놓쳐야 했다. 이후 투입된 최원호마저 마해영에게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아 삼성의 20년 한국시리즈 한을 푸는 제물이 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한국시리즈 사상 단 두 차례밖에 없었던 최종전 끝내기 홈런의 피해자가 된 팀의 사령탑이 모두 김성근 감독이었다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다. 김성근 감독은 2002 LG 사령탑을 맡아 약체인 팀을 한국시리즈에 이끄는 저력을 발휘했고, 2009년에는 SK를 이끌고 시리즈 3연패에 도전했으나 모두 최종전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고 역전패와 끝내기 홈런의 희생양이 되며 데자뷰를 실감해야 했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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