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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안티-악플과의 전쟁, 선수들도 인간이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2. 30.

지난 시즌 중반, 프로야구의 한 신인급 선수는 평소처럼 휴식시간에 자신의 미니홈피에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험한 욕설이 방명록과 게시판을 가득 덮고 있었기 때문. 며칠 전 경기에 나섰다가 실책성 플레이를 연이어 저질렀던 것이 발단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 가족과 지인들에까지 저주를 퍼붓는 인신공격성 단어들에 선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곧장 미니홈피를 비공개로 바꾼 데 이어, 결국은 얼마 가지 않아 폐쇄해버렸다. 그 이후로도 더 이상 미니홈피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악플이구나 싶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겪어보니 기분이 달랐다. 과연 이런 것도 프로로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때 상처가 너무 커서 지금도 댓글이나 게시판은 아예 들어가 보지 않는다.”

 

이 선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최근 들어 선수들이 악플이나 홈피 테러 등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 세대의 선수들은 찬사를 받건 비난을 받건 대개는 경기장에서 접하는 반응이 끝이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선수들은 SNS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통하여 팬들과 소통한다. 꼭 자신을 홍보하거나 팬들과 교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 또래의 여느 젊은이들처럼 친구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하여 미니홈피나 트위터를 하는 선수들도 많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되고, 프로 선수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수들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언어폭력과 테러라는, 경기장에서와는 또 다른 정신적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미니홈피를 즐겨 하기로 알려진 두산 투수 임태훈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엔트리에 처음 발탁됐을 당시, 리그 성적이 더 좋던 KIA 투수 윤석민을 제쳤다는 이유로 갖은 악플 세례에 시달렸었다. 결국 임태훈은 평가전에서의 부진으로 윤석민에게 대표팀 자리를 내줘야 했지만, 당시의 경험은 큰 상처가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윤석민 역시 올 시즌의 부상과 부진, 롯데전에서의 빈볼 등이 발단이 되어 사이버상에서 십자포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윤석민과 같은 KIA 소속의 투수 양현종은 최근 미니홈피에서 지인의 이름을 도용한 닉네임으로 욕설이 담긴 장난성 글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악플의 수준은 선수의 사생활에 대한 비난에서 지인들에 대한 욕까지 그 정도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야구선수 김태균과 결혼한 김석류 전 스포츠 아나운서는야구선수와 연애 안 한다더니 결혼은 하냐?”, “돈보고 결혼한 게 아니냐.”며 안티팬들의 노골적인 악플 세례에 결국 미니홈피를 폐쇄해야만 했다.

 

80~90년대만 하더라도 경기장에서 팬들이 거칠고 즉각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 중에 물병을 던지고 먹다 남은 사발면 그릇이 날아오는 등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점은 그때만 그렇지뒤끝은 없었다는 점이다.” 한 구단 관계자의 말이다.

 

“경기장에서 당하는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새는 어떤 선수가 부진하다거나, 한번 잘못 꼬투리를 잡히면 사이버 공간에서 두고두고 난도질의 대상이 된다. 글이란 게 말과는 또 달라서, 인터넷에 한번 남기면 일부러 삭제하지 않는 이상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이버상에서 잘못된 소문이나 음해비방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다 보면 그게 또 루머나 스캔들로 굳어지기도 한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무시하거나 아예 웃어넘기는 것이지만 그게 혈기왕성한 선수들에게 말처럼 쉬운가? 선수들로 사람인데 인신공격적인 욕설이나 가족까지 비방하는 글에는 분을 참지 못하기 마련이다.

 

또한 운동선수라고 해도 은근히 여린 부분이 많다. 인터넷을 많이 접하는 어린 선수들의 경우에는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기사를 일일이 확인해보기도 하는데, 한두 경기 부진하다 보면 곧바로 엄청난 악플 세례가 달리고, 그걸 신경쓰다 보면 다음 경기에서 더욱 위축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되도록 자신의 기사나 홈피에 달린 댓글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그래도 호기심에 확인해보고는 속으로 전전긍긍하는 선수들이 많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적인 공간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구분도 지적했다. 트위터를 즐겨 하기로 알려진 양준혁은 올 시즌 은퇴를 선언하고 지난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특정팀이나 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했는데, 이것이 일부 팬들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선수들은 미니홈피를 자신의 사적인 공간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데, 이게 팬들 사이에서 확산되거나 기사로 재생산되어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프로선수들의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책임감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말을 해야겠지만, 그런 것에 자꾸 꼬투리를 잡고 이슈로 악용하려다 보면 부작용이 커진다. 운동선수에게 너무 많은 기준을 요구하기 전에 네티즌이나 언론도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프로 선수이니만큼 대중의 관심과 비판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켜져야 할 수위는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선수들도 단지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일 뿐, 일부 팬이나 미디어의 무분별한 사생활 들추기 혹은 가십의 소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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