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챔피언 KIA 타이거즈는 올 시즌 SK 와이번스의 독주를 저지할 유력한 대항마로 꼽히고 있다. 리그 최강을 자랑하는 두터운 선발마운드와 풍부한 단기전 우승 경험은 KIA에 기대를 걸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KIA의 최대 변수는 역시 타선에 있다. KIA는 지난해 선발진이 나름 제 몫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공으로 애를 먹었고, 결국 전년도 우승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실패하는 굴욕을 겪었다. 시즌 중반엔 팀 창단 이후 최다연패 기록을 경신하며 조범현 감독이 성난 팬들에게 붙들려 공개사과를 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KIA는 지난해 팀 블론세이브 1위(26개)을 기록했다. 불펜이 리드를 지켜주지 못한 것도 원인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 시작은 점수를 뽑아야 할 때 타선이 해결을 해주지 못했던 것이 더 컸다. 타선의 결정력을 믿지 못하는 투수들의 부담이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부작용을 드러냈던 것이다.
지난해 KIA 타선의 몰락은 바로 김상현의 부상에서부터 시작됐다. 우승을 차지했던 2009년 당시 트레이드로 친정팀에 돌아온 ‘김상현 효과’는 대단했다. 이적 당시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김상현은 신들린 듯한 활약을 펼치며 36홈런 127타점 타율 .315의 성적으로 일약 리그 MVP까지 수상했다. 김상현과 최희섭의 듀오를 일컫는 CK포는 69홈런 227타점, 175득점을 합작하며 그 해 팀 타율 꼴찌를 기록했던 KIA를 우승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그 CK포가 2010년에는 42홈런 137타점을 합작하는데 그쳤다. 홈런도 홈런이지만 타율과 타점에서의 하락폭이 너무나 컸다. 김상현이 2009시즌 무리했던 후유증으로 무릎에 탈이 나는 바람에 수술과 재활을 거치느라 79경기 출전에 그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김상현의 이탈은 곧 최희섭에 대한 집중견제로 이어지며 전체적인 타선의 약화로 이어졌다.
사실 선수 구성면으로 보면 최근 몇 년째 지적되고 있는 KIA 타선의 빈공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리그 정상급으로 꼽히는 이용규라는 걸출한 톱타자가 있고, 나지완-김원섭-안치홍-이현곤-이종범 등 하위타선에도 재능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KIA 타선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소수정예’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꾸준히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고 있는 SK나 삼성, 두산은 유망주 육성과 신구조화에 있어 상당히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매년 핵심선수들이 부상을 당해도 벤치멤버들이 어느 정도는 공백을 메워줄 수 있다. 하지만 KIA는 다르다. 주전과 2진간의 격차가 커서 한번 베스트멤버들이 부상이나 슬럼프로 전열에서 이탈하면 대안이 없다.
KIA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성적의 롤러코스터가 심했다. 2005년에 꼴찌를 기록한 이후 이듬해에는 4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랐으나, 2007년은 다시 꼴찌로 추락했다. 2008년 6위에 이어 2009시즌 우승으로 급격히 위상이 상승했으나, 지난해 다시 5위로 떨어지며 말 그대로 갈지자 행보를 이어왔다. 그만큼 매년 기복이 심하고 전력의 안정감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2009시즌의 우승도 사실은 ‘깜짝 이변’에 가까웠지만, 정작 우승 이후로의 제대로 된 전력보강에 소홀하며 상승세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김상현과 최희섭의 활약은 대단했지만 그들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탈피하지 못한 것이 2010년에는 독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그런 면에서 올 시즌 이범호의 가세가 주는 기대감은 크다. 이범호의 영입은 최근 몇 년간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고 KIA가 외부영입을 위하여 가장 적극적인 투자를 한 케이스다. 계약기간 1년, 계약금 8억원에 연봉 4억원 등 총 12억원의 거액을 들여 이범호를 영입한 것은 KIA가 다음 시즌 우승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범호의 가세는 단지 선수 1명의 영입차원이 아니라 전체적인 팀 타선과 내야진의 업그레이드를 기대할 수 있다. 이범호는 한화에서 활약한 10년 동안 통산 타율은 0.265에 그쳤지만 5차례나 20홈런 이상을 기록했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4년 연속 20홈런을 터뜨리기도 했다. 타율에 비하면 타점 생산과 장타력이 빼어난 편이고, 특히 승부처에서 강한 모습을 여러 번 과시했다. 자기관리에 철저해서 잔부상도 별로 없었던 편이다.
이범호의 존재는 최희섭과 김상현에 대한 집중견제를 분산시켜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가치가 있다. 당장 이범호가 수비에서 3루를 맡게 되면 김상현은 외야나 지명타자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수비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내야진에 전체적으로 경험 많은 리더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으며 보이지 않는 실수가 많았던 KIA로서도 수비력의 안정감을 더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KIA 타선의 부활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야구는 ‘1+1=2’라는 공식대로 돌아가는 스포츠가 아니다. 2009년처럼 최상의 시나리오대로만 흐르면 좋겠지만, 타선에서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성적을 올린 선수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여전히 불안요소다.
일단 김상현만 하더라도 2009시즌과 같은 위압감을 회복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김상현은 지난해 79경기에서 21홈런을 쏘아 올리며 2009년의 성적이 반짝 활약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하지만 적어도 팀의 중심타자로 믿음을 주기 위해선 3할에 근접한 타율과 건강함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이범호 역시 일본 진출 실패로 인한 국내 복귀와 KIA 이적에 따른 심리적 부담감을 극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단계를 뛰어 넘는다면 이범호는 KIA에게 부족했던 것을 채워줄 수 있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도 있다. 2009년에 ‘김상현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우승을 차지했던 KIA가 올해는 ‘이범호 효과’를 통해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할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은 올 시즌 프로야구 최대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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