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탄탄한 마운드와 안정된 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강한 타력을 갖추고도 우승하지 못하는 팀은 있어도, 튼튼한 방패 없이 우승하는 팀은 없다.
“확실한 에이스는 팀의 연패를 끊어주고, 탁월한 원투펀치는 단기전 시리즈에서의 승리를 보장하며, 3명 이상의 뛰어난 선발을 보유한 팀은 최강팀이 된다.”는 야구계의 속설이 있다.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팀을 돌아보고 싶다면, 곧 투수력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 역대 최강의 에이스는? 86년 해태 선동열!
한국 프로야구를 풍미한 숱한 레전드급 선수들 중에서도 역대 최강 에이스의 최고 시즌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82년의 박철순(24승 7패 7세이브 평균자책 1.84)이나 83년의 장명부(30승 16패 6세이브 2.34), 2010년의 류현진(16승 4패 1.82) 등도 훌륭했지만 역시 1986년의 선동열을 첫 손에 꼽는 이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선수생활 내내 0점대 평균자책점을 4번이나 기록했을 정도로 야구인생 전체가 ‘사기급’이였던 선동열이지만 데뷔 2년차이던 86년의 위용은 지금 다시 봐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39게임에 등판하여 무려 262⅔이닝을 소화하며 0.99의 평균자책점으로 24승 6패 6세이브, 탈삼진 214개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남겼다. 완투경기만 무려 19회에 그 중 완봉승이 8번 있었고, 아직까지도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3연속 완봉승 기록도 한 차례 포함되어있다.
평균자책점만 놓고 보면 1987년(162이닝 평균자책점 0.89)이 더 뛰어나지만, 86년과 무려 100이닝 이상의 격차가 나고, 93년(126⅓이닝 0.78)과 95년(109⅓이닝 0.49)은 전문 마무리 투수로 보직이 바뀐 후였다. 무엇보다 86년의 선동열은 국내 프로야구 최초로 투수 부문 트리플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을 달성했고, 팀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안기며 본격적인 해태 왕조(86-89년 4연패)의 시작을 알렸으니, 그야말로 ‘개인 성적으로서 팀 공헌도로나 가장 완벽했던 시즌’이라고 할만하다.
▲ 역대 최강의 원투펀치 – 85년 삼성, 김시진-김일융
2000년대 이전까지 한국시리즈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삼성이지만, 그렇다고 우승을 못해봤던 것은 아니다. 1985년 삼성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전-후기리그를 연속 제패하며 유일하게 한국시리즈를 건너뛰고 통합우승을 차지했는데, 무엇보다 김시진-김일융으로 이어지는 막강 원투펀치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두 선수가 합작한 승수만 무려 50승(11패), 나란히 25승씩을 기록하며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김시진은 47경기에 등판하여 25승 5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했으며, 269⅔이닝(1위) 동안 201개의 탈삼진(1위)을 잡아냈다. 완투 경기도 무려 10번(2완봉)이나 됐다. 재일교포 투수였던 김일융도 34경기에서 25승 6패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으며, 226이닝(3위) 동안 107개의 삼진(4위)과 11번의 완투(3완봉)를 기록했다.
삼성의 투타 전력이 워낙 막강하기도 했지만, 당시 경기수가 팀당 110경기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전후기를 합산하여 거둔 77승(1무 32패)의 2/3에 해당하는 승수를 원투펀치가 챙긴 것은 어마어마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2위 롯데가 거둔 승수(59승)와 비교해도 단 9승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 역대 최강의 선발 트리오 – 2000년 현대, 정민태-임선동-김수경
2000시즌의 현대는 단일시즌을 넘어 지금도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강팀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유력한 후보다. 특히 초유의 공동 다승왕 3명을 한꺼번에 배출한 현대의 선발진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정민태-임선동-김수경으로 이어지는 막강 선발진은 나란히 18승씩, 무려 54승을 합작하며 한국야구에 전대미문의 ‘트리플 펀치’를 구축했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투수’로 불리던 정민태가 29게임에서 207이닝을 소화하며 3.48의 평균자책점으로 18승 6패 153탈삼진을 기록했고, 임선동이 29경기(195⅓이닝)에서 18승 4패 평균자책점 3.36 탈삼진 174개(1위), 막내 김수경도 마찬가지로 29경기(195이닝)에 등판해 18승 8패 평균자책점 3.74, 172탈삼진(2위)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용호상박의 시즌을 보냈다.
이들 3인방이 합작한 54승은 당시 최하위 SK(44승)나 7위 한화(50승)의 팀 승리보다도 많았다. 이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 당시가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 시대였다는 점이다. 당시 리그 전체의 평균자책점은 4.61이었으나, 이들 3인방을 앞세운 현대의 평균 자책점은 3.64로 무려 1점 가까이 차이가 났다. 트리플 펀치를 앞세운 현대는 그 해 91승으로 정규리그 역대 최다승 기록을 세웠고, 한국시리즈까지 순조롭게 제패하며 최강의 위용을 과시했다.
▲ 역대 최강의 선발 로테이션은?
기록상 단일시즌 가장 뛰어난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팀은 1984년의 OB(현 두산)다. 당시 OB는 이렇다 할 특급 에이스가 없는 가운데도 팀 평균자책점 2.53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역대 1위의 기록이다. 하지만 당시는 프로야구 초창기로 투고타저 성향이 한창 강할 때였고, 당시 OB에 15승 이상을 기록한 대형 투수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과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 등 실질적인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OB는 1986년(2.61)과 1993년(2.89)에도 좋은 투수력을 선보였는데, 2점대의 팀 평균자책점을 3회나 기록한 유일한 팀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중 두 번이 김성근 현 SK 감독의 재임시절(84~88)에 나온 기록이었으니, 지금 ‘벌떼 마운드’의 원조격인 셈이다.
마운드의 분업화가 자리잡은 90년대 이후 가장 이상적인 투수력의 균형을 보여준 팀은 1993년의 해태와 1998년의 현대가 꼽힌다. 93년에 81승(시즌 전체 126경기)을 거둔 해태는 10승 투수만 무려 6명을 배출했는데, 조계현(17승)-이강철(10승)-김정수(10승)가 붙박이 선발로 활약하며 10승 이상을 거뒀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한 송유석(11승)과 이대진(10승), 그리고 마무리로 활약했던 선동열(10승 31세이브)도 두 자릿수 승리를 챙겼다.
98년의 현대는 에이스 정민태(28경기 200⅔이닝 17승 9패 평균자책점 2.83)를 필두로 정명원(14승)-위재영(13승)-김수경(12승)-최원호(10승)까지 선발로테이션 5인방이 전원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가장 고른 마운드의 높이를 보여줬다. 93년의 해태와 98년의 현대 역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니, ‘최고의 투수력=우승 보증수표’라는 공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DB]